이영훈 교수님, 수탈론은 정말 신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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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교수님, 수탈론은 정말 신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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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 경제논리만으로 해석될 수는 없어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는 최근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에 대하여 이것이 수탈이라는 것은 만들어진 신화라는 주장을 하여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정말 받아들일만한 것일까?

먼저 토지조사사업에 대한 부분이다.

..(전략) 교수에 의하면 토지조사사업의 경우, 그것은 종래 전근대적 토지제도를 근대 적 제도로 원시(原始) 창출하는 과정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총독부나 일부 특권층의 토지수탈이 자행될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뿐 아니라 국유지를 둘러싼 분쟁에는 민유지(民有地)로 판정되어 조선 농민에 지급된 토지가 많으며, 다른 국유지는 1924년까지 일본회사나 일본이민자가 아니라 그 땅에 대한 연고가 있는 조선 농민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불하되었다는 것이다. ..

- 2004년 11월 18일 연합뉴스

이교수의 주장대로라면 토지조사사업으로 우리나라의 토지제도는 전근대적인 제도에서 근대적인 제도로 바뀌어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조선인 자작농이 증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했을까?

서기 1916년에는 자작농 비율이 20.1%, 자소작농(자작농이면서 소작농 - 옮긴이)이 40.6%, 소작농이 36.8%, 지주가 2.5% 였습니다. 소작농 비율이 36.8%인 데 비해 자작농과 자소작농을 합친 비율이 60.7%나 되어 농촌중간층이 그만큼 많았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16년 뒤인 서기 1932년에는 자작농 비율이 16.7%, 자소작농이 26%, 소작농이 54.2%, 지주가 3.7%로 변했습니다. 자작농과 자소작농을 합친 비율이 60.7%에서 42.7%로 감소한 데 비해 소작농이 36.8%에서 54.2%로 크게 증가하고, 지주도 2.5%에서 3.7%로 크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강만길 교수의 책 20세기 우리역사에서

오히려 자작농은 줄어들고 소작농은 증가하였다. 이 상황에서 토지제도가 근대적으로 변했는가? 식민지 당시의 토지제도는 지주-소작제로서 소작농은 지주에게 많은 곡식을 소작료로 수탈당하는 중세 유렵의 농노를 연상시키는 전근대적인 토지제도였다.

토지조사사업으로 이런 제도가 해체되기는 커녕 오히려 소작농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일제말기까지 지속되다가 해방 이후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야 비로소 사라진다. 이 문제는 해방 이후의 당면과제 중 하나였는데 이런 제도를 해결 못한 토지조사사업이 무슨 근대적 토지제도를 마련하였는가?

토지가 일본인이 아니 조선인에게 넘어가도 그건 농촌사회를 지배하던 지주층이다. 일제로서는 이들과 타협하여 조선을 보다 손쉽게 지배하고 지주층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관계이니 일반 농민들 고달픈 건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나마 인정되던 소작농의 수조권은 부정하고 오직 토지의 소유권만 인정하여 농민들은 더 힘들어질 뿐이었다.

그럼 산미증식 계획은 어떤가?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산미증산 계획 또한 이를 통해 증대된 쌀은 일본으로 '수 출'된 것이지, '수탈'일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총독부가 총칼로 쌀을 마구 빼앗아 일본으로 실어 가는 일은 원리적 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면서, 쌀이 일본으로 유출된 것은 것은 가격이 3할 정도 높은 시장을 찾아가는 과정, 즉, 수출이었다고 말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값싸고 질이 좋은 조선 쌀이 유입되자 일본 농민들의 원망은 그만큼 폭증했으나, 당시 조선과 일본은 관세가 폐지된 통합시장이었으므로 일본정부는 이를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 2004년 11월 18일 연합뉴스

그럼 일제는 왜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하였는가? 조선의 농가수익 증대를 위해서였나?

1차대전을 경험하면서 일본 자본주의는 급성장하여 도시인구가 급증한다. 하지만 농촌에서의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식량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1918년 쌀폭동이란 사태가 발생한다.

당시 일본은 저임금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고 이를 유지할려면 저곡가 정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내 살생산은 부족하고 수입을 하면 무역적자가 증가한다. 결국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조선에서의 산미증식계획이다. 즉, 식민지에서 값싼 쌀을 생산하여 일본의 도시 노동자들에게 급하여 식량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영훈 교수가 말하는 쌀 수출은 일본의 정책에 부합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주-소작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쌀 수출로 이득 보는 건 지주일 수밖에 없고 일반 농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리 만무하다. 일본은 식량문제 해결하고 지주들은 경제적으로 이득보고 대신 소작농들은 기껏 추수하면 소작료로 수확물을 다 내는 상황 그런데도 일본 경찰이나 군인이 총칼들고 돌아다니면서 빼앗은 게 아니면 수탈이 아닌 것일까?

결국토지조사사업이나 산미증식계획은 조선의 토지제도를 개혁하지도 못 하고 농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여봐야 총독부가 직접 수탈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뿐이지 지주층과 타협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조선 농민을 수탈해가며 일본 자본주의를 유지하려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영훈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일이 경제논리만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숫자상의 통계자료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한 시대를 볼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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