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6월 3일 양재동 시민의 숲에서 진행된 '칼 858기 위령탑 거부선언식'에서 참가자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화상을 불태우려 하자 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 뉴스타운 정민주^^^ | ||
제13대 대통령 선거일을 보름여 앞둔 1987년 11월 29일.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페르시아만의 도시 아부다비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던 칼 858 여객기가 이날 오후 2시 1분(한국 시각) 미얀마 남방의 안다만해 상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칼 858기 미스터리의 서곡이었다.
그 시간 서울 여의도에서는 100만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의 대규모 선거유세가 펼쳐지고 있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 나선 김영삼, 김대중, 노태우 후보는 연일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는 등 유세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후보의 이날 여의도 유세는 다음날 주요신문들의 1면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 엄청난 스피커 소리와 구름처럼 몰려든 군중 앞에서 열변을 토하며 흘리던 김대중의 눈물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며 여의도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행진을 하며 감격해하던 100만 군중의 함성도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헛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대선 하루 전 김현희 서울로 압송.. 의혹 키워
대선 중반부에 터진 칼 858기 사건은 당시 잇따른 대규모 유세전으로 한창 달아오르던 대선정국을 급속도로 냉각시켰다. 이 사건은 국민들을 또 다시 안보공포증으로 몰아넣는 빌미가 됐다.
이런 가운데 바레인에서 붙잡힌 하치야 마유미(김현희)는 선거일을 하루 앞둔 12월 15일 하얀 마스크를 쓰고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세 명의 안기부 요원에 이끌려 김포공항 트랩을 내려왔다.
다음날 아침신문을 펼쳐든 시민들은 '오늘 대선' '마유미 서울로 압송'이라는 두 기사와 동시에 마주쳐야 했다. 박빙의 승부로 점쳐지던 이날 대선은 결국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17년이 흘렀다. 실종자 가족들과 시민단체 등에선 그동안 국가를 상대로 수많은 의혹을 제기하며 전면적인 재수사를 촉구해왔다. 하지만 정권이 네번이나 바뀌는 동안 국가 차원의 공개적인 진실규명 노력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98년 10월 김대중 정부는 칼 858기 사건을 이른바 '판문점 무력시위 요청 사건'과 함께 북풍 의혹 사건으로 지목해 재조사 의지를 밝혔으나 국정원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사건을 수사했던 안기부(현 국정원)는 당시 수사발표를 뒷받침할만한 어떤 물증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바다 속에서 섭씨 1000도의 온도와 중력의 100배를 견디며 30일 동안 반경 2마일까지 발신음을 보낸다는 사건 원인의 결정적인 단서가 될 블랙박스에 대한 수색작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현지조사단은 사건 발생 열흘만에 수색작업을 중단하고 철수했다.
^^^▲ △ 칼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는 29일 낮 서울광장에서 17주기 추모대회를 열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 뉴스타운 정민주^^^ | ||
국정원 직원 "왜 거짓말 했는지는 김현희에게 물어봐라"
최근 기자와 만난 '칼 858기 사건 진상규명 가족회' 차옥정 회장(69)은 "모든 것이 각본에 의한 음모이고 조작이며 거대한 힘에 의해 이루어진 미증유의 항공기 실종사건"이라고 이 사건을 단정했다.
2001년 12월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시민단체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정원 관계자는 이들이 제기하는 여러가지 의혹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
이날 국정원 관계자는 '안기부가 내놓은 사진 속의 화동이 김현희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수없이 많다'는 의혹에 대해 "김현희가 사진 속의 화동이 자신이라고 해서 그 말을 믿었을 뿐이다. 왜 거짓말을 했는지는 김현희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말해 안기부 수사의 신뢰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가족회 "진실이 없으면 무덤도 없다" 진상규명 촉구
사건 발생 17년이 지나도록 진실이 드러나지 않고 있는 칼 858기 사건으로 실종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17주기 추모대회가 '칼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29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실종자 가족과 시민 등 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날 추모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사건의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을 공개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차옥정 가족회 회장은 "우리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 17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진상이 밝혀질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 하나만을 안고 살아왔는데 진상규명은 참으로 멀기만 하다"면서 "가족들은 진실을 알고 싶다. 관련자들을 즉각 공개하라"고 노무현 정부에 요구했다.
차 회장은 특히 △과거사 진상규명법 제정을 방해하고 있는 한나라당 △편파, 왜곡, 거짓보도를 일삼는 조중동 △사건관련 기록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검찰 △김현희의 소재를 모른다는 국정원 △사건 은폐에 동조하고 있는 대한항공을 '진상규명활동을 방해하는 5대 걸림돌'이라고 규정했다.
김병상 대책위 공동대표도 "아직까지 역사적 사실이 의혹으로만 남아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노무현 정부가 끝까지 칼 858기 가족들의 피맺힌 절규를 외면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이라며 "하루빨리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여 가족들의 한을 달래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언제가는 역사가 이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의혹을 풀어주고 가족의 아픔을 달래줄 것이라 믿는다"면서 "여기 오신 모든 분들도 한마음으로 힘을 합해 이 사건의 진상이 규명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 △ 이날 실종자 가족들은 연단 위에 마련된 제단에 분향ㆍ헌화하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 뉴스타운 정민주^^^ | ||
김혜경 대표 "칼 858기 사건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희한한 사건"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희한한 미스터리인 칼 858기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고 가족들을 중심으로 온 국민이 요구한지 벌써 17년이 되었다"면서 "이제 정부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남북화해시대에 맞게 진상규명에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석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칼 858기 사건은 지난 17년 동안 진실이 가려지고 은폐돼 온 최대 의혹사건"이라고 지적하고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정원은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공개하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칼 858기의 궤적을 따라 3년간의 현장 취재를 거쳐 김현희의 진술과 안기부의 수사발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한 사건 추적 리포터 <파괴공작>의 지은이 일본 저널리스트 노다 미네오(野田峯雄·59)씨는 이날 대책위 앞으로 메시지를 보내와 연대를 과시했다
그는 메시지에서 "추악하고 기괴한 칼 858기 사건의 진상을 남김없이 밝히기 위한 한국 국민들의 노력에 연대의 정을 전한다"며 "한국 정부의 입국 거부로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진상규명의 함성을 내지르지는 못하지만 국가의 모략으로 저질러진 범죄의 진상이 드러나는 그 날까지 연대의 발걸음을 늦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대회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민족춤패 '출'의 추모공연이 20분간 장중하게 펼쳐지자 곳곳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 △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 주변을 돌며 행진하고 있다 ⓒ 뉴스타운 정민주^^^ | ||
추모대회는 추모사와 추모공연에 이어 민중노래 '민들레처럼'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참가자들의 분향ㆍ헌화 순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대형 펼침막과 각종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울광장 주변을 돌며 행진을 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국정을 운영하겠다며 출범한 참여정부의 진실규명 노력은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진실은 진실한 행동에 의해서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이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그럼 모든 진실이 드러나고 가족들은 햇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추운 날씨속에 진행된 추모대회에 민주노동당 대표 말고는
아무도 안나왔나 보네. 힘내자 진상규명 아자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