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에 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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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에 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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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에서 자유로운 학위 논문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볼 일

논문 표절을 둘러싼 문제가 다시 일고 있다. 김혜수씨는 논문 표절을 인정하고 학위를 반납하겠다고 했고, 표절이 아니라고 항변했던 김미화씨는 자기가 맡고 있던 방송프로에서 하차했다. 그런가 하면 허태열 비서실장은 표절을 인정하고서도 학자가 아니니까 양해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학자가 아니기는 김혜수씨나 김미화씨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4-11 총선 때는 새누리당 문대성 후보의 학위논문이 표절이라고 했고, 작년 여름 들어선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의 논문이 표절이라고 해서 시끄러웠다. 두 사람의 논문은 아예 복사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내가 직접 보지를 않아서 무어라 말 할 수는 없다. 이 두 사람에게 학위를 수여한 대학도 표절 논문임을 인정했는데, 전에 없던 일이었다.

표절 시비는 학계에서는 오래된 일이다. 주로 외국 서적이나 교과서를 번안 수준으로 펴냈던 것인데, 법학계에선 일본 책을 베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일본 책과 논문을 읽고 그것을 번역해서 자기 논문이나 책으로 펴냈다면 상당한 노력이 들어간 셈이니, 요즘의 복사 표절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1970년대 들어서 독일 미국 등지에서 공부하고 들어 온 교수들이 대학에 자리 잡게 되자 일본 번역파 교수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무엇보다 독일과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논문 쓰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 1990년대 들어서 웬만한 대학에선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들이 다수를 점하게 되는 등 전반적으로 교수 수준이 향상되어 이제 교수가 남의 논문을 표절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문제는 이제 대학에서 수여하는 석사 박사 학위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상위급 대학을 제외한 대학에서 대학원 입학경쟁이 없어져 버렸다. 지방 사립대학에 학부정원을 못 채우는 현상이 생겼다면, 거의 모든 대학원에서 입학경쟁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우수한 학생들은 미국 등지로 박사학위를 하러가서 미국의 큰 대학에는 한 전공에 한국 대학원생이 버글버글한 실정이다. 2000년대 들어서 취직이 잘 안되니까 대학원 진학하는 현상이 심화되었다.

대학은 대학대로 대학원 과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을 유치해야 하고, 그런 이유에서 직장인들의 입학을 환영하게 됐다. 대학원 강의를 저녁에 하는 대학이 많아졌고, 직장인들을 위한 온갖 형태의 특수 대학원이 학생을 유치하고 나선 형편이다. 사실 직장인들을 위한 대학원은 권장해야 한다. 하지만 파트타임으로 공부하는 이들에게 논문을 쓰라고 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차라리 미국처럼 논문이 없는 ‘이그제큐티브 학위’(Executive Degree)를 주는 게 좋지만 우리나라 교육법은 석사학위도 논문을 쓰도록 하고 있으니 할 수 없이 논문을 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베끼고 조립해서 논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국 대학에서 주는 Executive Master 학위는 논문 요건이 없기 때문에, 이 학위로는 박사과정 진학이 불가능하다.)

석사는 그렇다 하더라도 박사 논문에 표절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 한국 대학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박사 학위는 “혼자 가르치고 혼자 연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대학이 박사학위를 남발한다면 그것은 ‘자기 부정’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문대성, 김재우 표절 같은 일이 일어나면 지도교수와 심사교수들은 옷을 벗어야 하고 최소한 대학원장이 사과하고 물러나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문대성씨와 김재우씨에게 학위를 수여한 대학은 표절을 인정하고도 아무런 말이 없으니, 한국 대학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복사 수준의 표절은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근래에 있었던 표절 시비에는 피해자가 없으니, 이 또한 희한한 일이다.

유럽과 달리 미국은 대학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중하위권 대학은 학부 과정만 있지 대학원 과정을 두고 있지 않다. 또한 미국에는 주로 학부만 가르치는 명문 학부 대학도 있다. 앰허스트, 칼튼, 그리넬, 다트머스 등 이른바 ‘리버랄 아트 칼리지’(Liberal Art College)가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대학이 석사 박사 과정을 두고 있고, 대학은 석사 박사 학위 배출을 교수 평가의 기준에 넣어 권장하는 형편이다. 사정이 이러니 매년 쏟아져 나오는 석사 박사가 얼마나 많겠으며, 그중에 표절에서 자유로운 학위 논문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학을 근본적으로 쇄신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가 표절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www.leesangdon.com 승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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