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도 20년후엔 보통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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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팰리스도 20년후엔 보통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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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의 필터링 이론에 따라 점차적인 고급화 단계로

 
   
  ^^^▲ 어느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의 분양 현장위화감 조성, 신 귀족 타운 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는 97년 11월 외환 위기를 맞는 직후였는데, 그 때 대형 설계사무소마다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것이 바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60층, 70층 높이에 100평에 가까운 아파트를 설계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이것이 완공되었을 5년 후의 미래였다.

생전 듣도보도 못한 초고층 높이의 초대형 아파트에 입주해서 살겠다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채 어쩌면 이것은 거대하고도 기괴한 실패작이 될 지도 모른다. 당시 우리는 아무도 5년 후에 이 아파트가 건물 높이 만큼이나 높은 인기를 누릴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한 채, 불안한 미래의 푸르스름한 청사진을 들여다보며 춥고 어두운 외환 위기의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었다.

발 빠른 건설회사들은 이에 대비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주거용 건물로는 너무 고층이라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건축물이 높다’ 라는 이미지를 ‘높은 사람 즉 상류 계층의 거주지’라는 이미지와 결부시키는 것이었다. 하이페리온(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 ‘높은 곳을 달리는 자’라는 뜻으로 해와 달의 아버지이다), 아크로 빌(‘아크로’는 높다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타워 팰리스(‘탑처럼 치솟은 궁전’ 쯤으로 해석할 수 있으려나) 등 이름 자체에서 이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었다.

그 다음으로는 최고급 마감재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고자 했다. 비행기를 타면 항상 여자 승무원이 기내식과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비행기가 처음으로 상용화되었을 때 사람들은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탑승을 꺼렸는데, 약삭빠른 항공회사들은 미모의 여자 승무원과 기내식을 제공함으로써 이 불안감을 누그러뜨렸다. 미녀와 음식을 앞에 두고 사람은 누구나 기분이 좋아지듯,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실내는 창문을 열면 100M도 넘는 절벽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한다.

이렇게 초고층 아파트가 인기가 많은 만큼 사회의 시선도 그리 곱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도심 한 복판에 우뚝 솟은 그 건물들은 우선 보기에도 위압감을 주며, 빈틈 없는 경비 시스템은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에게 위화감과 불쾌감을 준다. 주상 복합 아파트이기에 지하와 저층부에는 웬만한 가게들이 다 있다 보니, 그 건물 안에 사는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건물 밖으로 나올 일도 없고, 그러다보니 길 건너 동사무소에 전입 신고를 하러 가는 일 조차 번거로워 건물 내에 동사무소의 분소 설치를 요구했다가 눈총을 맞은 일도 있다.

▶▷ 관련기사: 귀족 타운, 주거혁명인가, 사회분열인가(한겨레신문)

5년 전 외국에서나 있음직한 초고층 아파트의 초기 설계에 불안한 마음으로 참가했고, 이제 그 아파트가 지어져 이래저래 좋은 소리, 싫은 소리를 듣는 양을 보는 신출내기 건축가의 마음은 낙관적이다. 지금은 그 것이 보통 사람이 꿈꾸어 볼 수 없는 상류층의 주거로 인식되고 있지만, 앞으로 10년 후에는 중산층 주거, 그리고 30년 후에는 그저 고만고만한 서민 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 경제학에는 ‘주택의 여과과정(filtering process) 이론’ 이 있다. 이는 간단히 말해 상류층을 위한 양질의 주택을 계속 공급하다보면 그 아래 중산층이 과거 상류층이 사용하던 주택으로 이주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이 계속 하향으로 지속되면 결국 전반적인 주택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주택의 양적 공급을 마친 후 질을 높여가는 선진국의 주택 시장에서 그 타당성이 검증된 바 있다.

 
   
  ^^^▲ 1962년 마포 아파트 준공 당시당시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한 6층 높이의 호화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는 눈총은 매우 따가왔다.^^^  
 

굳이 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보통 아파트의 수준은 2,30년 전만 해도 위화감을 조성하던 최고급 아파트였다.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마포 아파트(1962년 준공)도 처음에는 10층 높이의 고층에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고 엘리베이터를 둘 예정이었으나,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마실 물도 넉넉치 않는 나라에서 기름 보일러와 수세식 화장실이 무어냐, 엘리베이터는 또 무어냐, 거기 사는 사람들은 죄다 걷지도 못하는 앉은뱅이란 말이냐’라는 거센 반발을 받았다. 결국 마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필요 없는 6층 높이로 축소되고 기름 보일러 대신 연탄 보일러로 교체되었다. 그나마 수세식 화장실은 유지되었는데, 사실 아파트 구조상 재래식 화장실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엘리베이터와 기름 보일러 그리고 12층의 고층 아파트가 비로소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의 여의도 시범단지 아파트였는데, 그 당시 시범단지 아파트를 바라보는 곱지 않는 시선과 들끓었던 여론들은 지금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바라보는 곱지 않는 시선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 이런 아파트들은 잠실을 중심으로 중산층 아파트가 되면서, 90년대에 들어서는 가장 보편적인 일반 아파트로 자리잡게 된다.

지금 타워 팰리스니, 하이페리온이니 아크로 빌이니 하는 높고 높은 아파트들이 높은 사람들만이 사는 아파트로 보이지만 이 또한 10년 후에는 중산층 아파트가 되고 20년 후에는 고만고만한 보통 아파트가 될 지도 모른다. 조금 더 노력하면 10년 후에는 나도 그 정도는 살 수 있고, 20년 후에 내 아들, 딸은 신접 살림을 그 곳에서 시작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모든 공산품은 처음에는 고가이지만 점차 대중화되면서 저렴해지듯, 좁은 땅에 무한정 높이 올릴 수 있는 아파트도 생산적인 면에서 보자면 공산품에 가깝다. 점점 가격은 내리고 우리의 주택 시장은 점차 고급화 될 것이다.

그 동안 거품처럼 치솟았던 서울 시내 아파트 가격이 새해에 들어 조금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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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소니 2003-01-10 14:34:29
그럴 것 같지는 않아여! 압구정 현대 아파트는 아직도 최고가 아파트 중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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