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일요일 한가한 틈을 타서 본부 반 고참병장들 넷이 무단이탈, 아저씨 집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라면을 끓여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있었다. 자연히 방으로 들어갔으니 군화는 나란히 각자 이름도 선명하게 쓰인 채 댓돌에 놓여있었다. 군화에 새겨진 이름, 신 중 균, 이 희열, 윤 복 한, 임 무 생, 작전과 이 승 열, 병장인가? 는 정확한 이름이 기억에 없다.
"어이! 본부 반 고참나리, 너희들도 10분 안에 연병장으로 팬티만 입고 집합한다, 알았나?" 아이고 걸렸다. 호랑이 주번사령 꺽다리 인사과장 석 대위의 순찰 중에 걸렸다. 일요일 자유시간에 긴장을 풀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놀던 한 겨울 오후 3 시경이었다.
짓궂기도 하고 무섭게 군기를 잡는 인사과장 석 대위다. 그러나 우리 또한 제대가 내일모레라 열외 취급하겠지 하고 느긋하게 부대로 들어오니 전 부대원이 연병장에 집합하여 도열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기를 비상을 걸어놓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위기는 심각하다. "고참병들이 나올 때까지 여러분들은 그 자리 엎드려 뻗친다." 이크 이게 보통이 아니다. 우리는 황급히 내부반으로 뛰어가 팬티만 걸치고 맨몸으로 나갔다. 우리는 곧장 연단에 올려 세워졌다. "자 여러분들의 왕 고참들이 무단 이탈하여 술을 먹고 있었다. 그 벌로 전 부대원들은 연병장 10바퀴를 구보로 뛴다. 알았나?" 우리는 연단아래에서 눈밭에 엎드려 뻗쳐 자세로 기합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기합이 아니고 주번사령이 일요일 오후 흐트러지기 쉬운 사병들의 정신교육 요령이었다. 운동도 시키고 긴장도 적당히 시키는 훈련이었던 것이다. 부대 사병들은 꼼짝없이 연병장돌기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왕고참 들한테 불만을 토로할 생각은 아예 못했다.
40년 전 군 생활을 어떻게 요즘의 군대 생활에 비할 것인가? 갑자기 불거지는 병역문제가 또 터지다보니 옛 기억도 새롭게 떠올라서 적어보는 글이다. 지긋지긋한 병역비리 논란이었고, 국가를 뒤흔들어놓은 문제였다.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다. 당시는 영장 받고 입대한 장병들은 별 불만이 없었다. 급식만 조금 좋았으면 했다.
요즘은 2년의 군 생활로 알고 있다. 또한 후생문제 또한 훌륭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부대 내무반에 공중전화가 있는 것으로 안다. 자유급식이라고 들었다. 무엇이 두려워 사나이가 회피하려들 하는지? 배고픔의 훈련이 있나? 군기 잡는 기합이 또 있나? 못내 궁금하다. 2년의 젊은 날 추억 만들기는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갈 수만 있으면 지금도 가고싶다. 그리운 전우들 모습이 간절히 떠오른다. 눈 바닥에 기합 받던 내 모습이 상상되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언젠가 신문에 기사를 실었다. 연락이 왔다. 반가움에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상면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초성리 포병부대 출신 장병들. 나는 29세에 늦은 군 생활을 한 정보과 신 병장이다. 당시 우리 부대 출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팬티 바람에 눈밭에서 체력 단련했던 대대 왕 고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추억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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