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때 묻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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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때 묻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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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세상을 알고 싶다

아직 교복자율화가 되기 전인 나의 고등학교 시절엔 여고생들의 교복이 그렇게 이쁘게 보였었다. 특히 검은 색의 동복이 아름다웠었다. 목을 두르는 하얀 칼라. 그리고 뒤로 묶은 머리가 단정함과 함께 미묘한 감상의 대상이 되곤 했었다. 나는 절제를 좋아한다. 그래서 음악도 피아노처럼 같이 음절이 딱딱 끊어지는 기악기를 좋아한다. 그런 끊어짐들이 연결되어서 만들어내는 멜로디가 바로 사람들의 삶에서도 느껴지는 것을 좋아했었다.

여고생의 하얀 칼라는 순결함과 절제의 상징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생활이 모이고 모여서 무엇인가 결과를 이루어 내는 것이 좋았었다. 가끔 여고에서 벌이는 시화전 같은 곳엘 가면 덜 익기는 했지만,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그림과 글들을 볼 수 있었다. 단정함속에서 그런 꿈들이 천천히 무르익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내 속에는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방랑자의 기질이 숨어있다. 그것을 안 것이 대학 말년 무렵이었다. 그전까지는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스스로를 ‘외로운 늑대’라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면서도 그게 무슨 뜻인지를 잘 알지 못하였었다. 그렇다. 나는 끊임없이 교정을 헤메고 다니는 떠돌이 늑대이기도 했고, 책갈피사이와 지방도시의 모든 문화행사를 두루 섭렵하고 다니는 이리이기도 했다.

무언가 먹이감이 될만한 것을 갈망하며 아무리 지쳐도 수이 쉬지 않고 떠돌아다니기를 멈추지 않는 갈망의 화신이었다. 감히 그렇게 말해도 그리 부끄럽지 않는 젊음을 보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나는 많은 꿈들을 꾸었다. 젊은 날의 비망록에는 그 시절에 꾸었던 꿈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일부는 처절하게 참혹한 것이고 일부는 참으로 아름다운 내용으로 가득히 채워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황했던 것이다. 참혹함과 아름다움 사이의 접점이 잘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참혹함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말을 점차 실감하게 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 참여하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이 그리는 표현주의 풍의 그림과, 당시 내가 읽던 슬픔의 글들로 가득하던 문구들 사이에서 나는 위안과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슬픔 속으로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픔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가야만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플라톤의 비극과 희극의 정의를 차츰 깊이 느끼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지방의 문화패들이 벌리던 공연에서는 호남지방의 전투적인 문화공연과는 달리 향토색이 짙은 전통의 색체가 더 우러나는 특색이 있었다. 그런 공연이 있을 때면 나는 일찌감치 맨 앞줄에 자리를 잡고 않아서 난장을 트는 역할을 자처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까지였다. 나는 타고난 귀골이었고, 진정 세상의 어둠 속으로 들어갈 용기도 없었고 그들이 나를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의 골칫거리였었다. 항상 교실의 맨 뒷줄에서 소위 ‘불량학생’들과 킥킥거리며 장난을 치곤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수업시간에 벌도 서고, 벌 청소도 하는 유일한 모범학생이었다. 같이 벌을 받는 친구들에게도 역시 나는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나 같은 범생이가 자신들의 패거리에 끼워달라고 조르니 받아들일 수도 없고, 자꾸 조른다고 때릴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나는 세상물정 모르는 귀찮은 아이였을 것이다. 나는 바로 그 ‘세상물정을 모르는’ 그것이 싫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알아보고 그리고 비로서 내 삶을 결정하고 깨달음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벌써 고등학교시절부터 나는 깨달음은 고고함 속에 깃든 것이 아니라, 실천 속에 그리고 삶 속에 녹아 있는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채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삶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을 했었다. 내가 얼마나 순진한 범생이였는 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치근거리던 그 친구들 중 한명이 우리교회 바로 옆 유흥가 뒷골목에서 칼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바로 같은 반에서 옆자리에 않아서 함께 공부를 하고 놀았고, 바로 인근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그와 내가 살던 세상은 그렇게나 달랐던 것이다. 나는 그것이 참기 힘들었다. 여고생의 하얀 칼라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세상을 모르는 어리숙한 사람이라는 또 하나의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란 표현이 내가 제일 듣기 싫은 표현이었다. ‘세상의 모든 밝고 어두운 지혜들을 알면서도 여전히 순수함을 잃지 않을 수는 없을까?’ ‘온몸에 잔득 때를 묻히고도 순수함을 유지할 수는 없을까?’라는 게 나의 간절한 바램이었다.

그리 쉽지 않은 그 화두를 품고 나는 이제 마흔 중반의 나이에 도달했다. 이제 세상을 조금 아는 것 같다가도 막상 세상과 직접대면을 하려고 하면 아직도 두려움이 앞선다. 이제까지도 혼자서 내 길을 개척하며 세상과 마주쳐보며 살아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제 내가 나서려는 길에 비하면 온실안의 일들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젊은 시절의 그 바램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고, 또 아직 잊어버리지도 못한 것이다. 내 속에 숨겨진 갈망들을 하나씩 찾아서 풀어내기로 길을 나선 길이다. 나는 이제 또 하나의 그리 만만치 않은 갈망을 향해 달려가려고 신 매듭을 묶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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