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그~ 저 넘의 소리 땜에 정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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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그~ 저 넘의 소리 땜에 정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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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까치

 
   
  ^^^▲ 떼까치
ⓒ 창원시^^^
 
 

"떼데데데데∼ 떼데데데데∼"
"비호, 비검! 내려와!"
"푸다다닥! 푸다다다닥!"
"물어!"
"푸다다닥! 푸다다다닥!"

계미년 어둠을 살라먹고 마침내 갑신년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맞이하는 새해이지만 해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또 우리는 해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 계획도 사실은 새로운 계획이 아니라 지난해 세운 계획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그것은 다름 아닌 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즈음 아이들은 누구나 양력 1월 1일부터가 새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내가 어릴 적의 새해는 음력 1월 1일부터였다. 아니, 양력 1월 1일은 아무런 의미 없는, 그저 손발이 시리고 귀가 시린 그런 추운 겨울날의 하루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라디오조차 없었으니, 양력 1월 1일이 새해라고 하는 그런 말조차 들어보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 우리에게 있어서 양력 1월 1일은 국회의원 후보 아무개가 보낸 '불쌍한 000 이번에는 찍어주자'라는 구호가 적힌 한 장짜리 달력 속에 있는 빨간 날에 불과했다. 또 그 당시에는 빨간 날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겨울방학 중이었고, 어르신들은 일년 농사를 끝내고 화롯가에 들러앉아 내년 농사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비호, 비검이라는 이름은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키운 새의 이름이다. 당시 우리 마을에는 희귀한, 그러니까 지금은 천연기념물이나 희귀조가 된 그런 새들이 무척 많이 살았다. 독수리, 매, 뻐꾸기, 꿩, 산비둘기, 딱새, 박새, 찌르레기, 노랑할미새 등은 아주 흔한 새들이었고, 계절에 따라 꾀꼬리, 물총새, 부엉이, 소쩍새, 뜸부기, 백로 등, 새들의 이름조차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올개(올해)는 참말로 별시럽네"
"와?"
"새들이 우리 마을에서 머슨(무슨) 잔치로 벌리자꼬 약속이라도 했는갑다"
"괜찮다. 새들이 많이 날아드는 해는 풍년이 든다 안 카더나"
"그거는 또 머슨 팔푼이 같은 소리고?"
"아, 묵을 끼(먹을 것) 많이 있어야 새들도 많이 날아올 꺼 아인가베"

특히 겨울이 오면 두루미를 비롯한 고니, 저어새, 황새, 원앙새, 천둥오리 등 온갖 진귀한 철새들이 남면벌에 펼쳐진 새파란 하늘을 먹장구름처럼 까맣게 덮으며 날아들었다. 한번 그렇게 날아든 철새들은 심심하면 하늘에 V자를 그려놓고 까르르 까르르 소리를 내며 우리 마을과 우리 마을 앞에 펼쳐진 들판 위를 날아다녔다. 그 철새들은 주로 우리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시냇가 주변과 남천 일대에 모여서 겨울나기를 했다.

하지만 철새떼들이 처음 우리 마을로 날아들 때처럼 하늘을 까맣게 가리는 그런 멋진 풍경은 겨우 내내 있어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모습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해 시냇가에 떼지어 앉은 철새떼를 향해 작은 돌멩이를 슬쩍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열서너 마리 정도의 철새들만 하늘로 푸더더덕 날아올랐다.

그 새들 중 가장 우스운 새가 청둥오리들이었다. 청둥오리들은 얼음이 꽁꽁 언 냇가를 그 우스꽝스런 걸음걸이로 뒤뚱뒤뚱 걸어다니다가 몇 번이나 꽁지를 비틀, 하고 미끄러지면서도 절대 넘어지는 일이 없었다. 또 냇가 한가운데 살얼음 낀 물 속에 머리를 처박은 채 꽁지를 하늘로 치켜들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워 우리들의 배꼽을 빠지게 했다.

"으이그~ 저 넘의 소리 땜에 정말 내가 미쳐 나가것네"
"오데 니만 그렇나. 나도 새벽마다 저 넘의 딱따구리 새끼들 우는소리 땜에 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이라카이"
"아, 딱따구리 저 넘이 보통 넘이 아이라카이. 까치까지 다 쫓아내고 제 영역을 마구 넓히 나간다카이"

당시 나는 그해 여름부터 키우던 새가 두 마리 있었다. 그 새의 이름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딱따구리'라 불렀던 때까치였다. 우리 마을 주변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때까치가 유난히 많았다. 특히 새벽마다 감나무 가지에 앉아 떼데데데데 하고 울어대는 때까치 소리는 정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때까치는 여름에는 새털이 대부분 갈색이다가 겨울이 되면 새털이 약간 붉으스럼한 색으로 변했다.

내가 그 때까치 두 마리를 키우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그해 여름 태풍이 지나간 뒤, 우리집 뒷마당에 때까치 새끼 두 마리가 떨어져 있었다.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부리 주변에 노오란 띠가 둘러져 있는, 아직 부화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주 어린 새끼들이었다. 당시 때까치 어미 두 마리는 그 떨어진 새끼 주변을 마구 날아다니며 수없이 떼데거리고 있었다.

나 또한 그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뒷마당에 갔다가 발견한 새끼들이었다. 나는 그 가여운 때까치 새끼들을 어미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때까치 집이 있는 그 아카시아나무를 울려다보던 나는 한숨을 포옥 하고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새집이 태풍에 엎어져 형편없이 부서진 뒤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와 내 동생은 때까치 새끼 두 마리를 집에서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아~ 새로(새를) 그만큼 잡아죽이고도 모자라서 또 새로 키울라카나?"
"우짤낍미꺼, 새집이 다 뿌사짔뿟는(부서졌는)데예"
"고마 그 자리 갖다놔라. 지 어미가 알아서 할끼다"
"아입미더. 딱따구리 어미도 우짤 줄로 몰라가꼬 하루종일 떠데거리기만 하던데예"

사실 나와 내 동생은 새 키우기에는 자신이 별로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새끼 새들을 키운다며 집으로 가지고 왔으나 모두 실패했다. 아무리 그 새가 좋아하는 먹이를 구해주어도 짹짹거리며 울기만 할 뿐 통 먹지를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부리를 벌려 먹이를 먹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하룻밤 자고 일어나 보면 죽어 있거나, 살아있는 것들도 비실비실거리며 잠을 자다가 이내 죽었다.

하지만 꼭 한번 새 키우기에 성공한 적이 있었다. 바로 그 찬란한 무지개 빛을 빛내는 물총새였다. 하지만 거의 다 키운 그 물총새도 결국 집 밖에 새장을 걸어두었다가 하룻밤새 잃어버리고 말았다. 당시 쥐들이 그랬는지, 아니면 족제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날 아침, 새장 속에는 무지개 빛 털만 몇 가닥 남아 있었고, 물총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새집을 방안에 두기로 했다. 그리고 매일 같이 미꾸라지와 피래미, 메뚜기 새끼, 방아깨비 새끼 등을 잡아 먹였다. 때까치는 식성이 좋았다. 특히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좋아했다. 날이 갈수록 때까치는 매일 같이 우리가 잡아나르는 미꾸라지의 숫자와 비례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또한 새벽마다 우리들은 떼대대대 하는 때까치 새끼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일어났다.

그때 때까치 새끼를 키우면서 붙힌 이름이 비호, 비검이었다. 우리는 늘 먹이를 줄 때마다 그 이름을 부르며, 때까치 두 마리를 우리 방식대로 길을 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어미로 다 자란 그날, 우리는 비호와 비검을 새장에서 꺼냈다. 그리고 우리집 감나무 위로 날렸다. 파다다닥 하면서 우리집 감나무 가지에 내려앉은 비호와 비검은 잠시 좌우를 살피더니 이내 새장 근처로 날아들었다.

그때부터 비호와 비검은 새장을 걸어둔 우리 집 감나무 주변에서 생활했다. 비호와 비검은 우리가 학교에 갈 때면 마치 배웅을 하듯이 떼데거리며 날아내려왔다가 우리가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반가워 죽겠다는 듯이 감나무 가지에서 날아내려와 우리들의 어깨에 수호신처럼 턱 하니 앉기도 했다. 또한 우리가 미꾸라지나 피래미를 잡아오면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바께쓰 속으로 푸다다닥 날아들기도 했다.

"떼데데데데∼ 떼데데데데∼"
"비호, 비검! 내려와!"
"푸다다다닥! 푸다다다닥!"
"쪼아!"

그런데 겨울이 다가올수록 문제였다. 비호와 비검이 배가 고프다며 아무리 우리 곁을 맴돌며 떼대거려도 우리 역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어머니께서 국물을 내고 건져낸 그 국물멸치를 몇 마리씩 주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할아버지께서 먹고 남긴 생선 대가리와 생선꼬리를 주기도 했다.

그런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다. 아침부터 우리집 감나무 근처에서 비호, 비검이 떼데거리는 소리가 몹시 크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배가 고파 그러려니 하고 예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비호, 비검 두 마리만이 떼데거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떼데거리는 소리 속에 처음 듣는 떼데거림도 섞여 있었던 것이었다.

"어? 저 딱따구리는 또 뭐꼬?"
"혹시 비호, 비검의 어미 아이가?"
"그거로 내가 우째 알끼고"
"지 어미면 차라리 잘 되뿌맀다. 먹이 구해주기도 어려운 판에"
"그래도..."

그날, 우리집 감나무 가지에 앉은, 머리에 제법 붉은 노을색이 감도는 그 때까치를 바라보며 수없이 떼대거리던 비호와 비검은 우리집 마당을 한바퀴 휘이 돌더니, 이내 그 때까치를 따라 앞산가새(앞산비탈)를 향해 훨훨 날아갔다. 그리고 저녁 때가 되어도, 그 이튿날 아침이 되어도 비호와 비검은 다시는 우리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는 겨울이 오면 가끔 그 비호와 비검이 떼데거리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그 비호와 비검에 대한 여러 가지 추억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또 지금까지도 우리는 비호와 비검이 제 어미의 그리운 품속으로 날아간 것으로 믿고 있고, 이제는 아무리 추운 겨울날이 되어도 비호와 비검은 늘 배불리 먹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떼데데데데∼ 떼데데데데∼"
"비호! 내려와!"
"푸다다다닥!"
"비검! 쪼아!"
"푸다다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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