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를 위해 술마시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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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를 위해 술마시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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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에 생각나는 일화

일반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한겨울에는 사람들이 오히려 잘 아프지 않는다. 그래서 한겨울은 한여름과 함께 의원들이 다소 한가한 계절이다. 그 추운계절에 진료실안에까지 스며들어오는 한기를 피하려고, 전기난로에 바짝 붙어서 책을 읽고 있는데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날 우리병원에 처음 찾아온 그는 상당히 심한 편도선염을 앓고 있었다.

목에서 허옇게 삼출물이 나올 정도인 것으로 보아서 심하기도 하지만, 꽤 오랫동안 방치해둔 편도선염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편도의 크기가 자신의 나이에 비해서 상당히 큰 편이었다. 평소에 편도선염을 자주 앓기도 했겠지만,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것의 의미하는 신체적 증거였다.

나는 그날 찢어지는 듯한 목의 통증과 오한의 고통에 힘들어하는 그 사내에게 맞는 처방을 해주는 것과 함께, 상당한 기간동안 잔소리를 해댔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이렇게까지 자신의 몸을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자신의 몸을 아끼고 조금 아플 때 진즉에 병원을 찾아가는 습관을 가져라...”

그리고 아마도 평소에 감기환자를 보면 늘 빼놓지 않고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설명인“감기에는 잘 먹고 쉬는 것이 제일 좋은 약이니까 가능하면 쉬도록 하라...”도 덧붙였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내가 하는 그런류의 잔소리들은 뒤에 잇달아서 들어오는 다른 환자들 때문에 끊어지곤 했을 터인데, 유난히 추웠던 그날은 뒤에 오는 환자도 없어서 그 사내는 오한에 몸을 떨면서 꽤나 잔소리를 많이 듣다가 돌아갔을 것이다.

며칠 뒤에 그 사내가 다시 찾아왔다. 지난번에 볼 때보단 조금은 상태가 호전된 것 같은데 사내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호전이 없는 원인을 찾아야 했다. 약제에 내성이 생긴 때문인지 약을 제대로 먹지 않거나 지난번의 잔소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몸의 면역기능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아서 인지를 감별해야 했다.

“요즘 술 드셨어요?”
“술이야 맨 날 먹죠.”
“얼마나 마시는 데요?”
“어디 정해놓고 먹나요. 같이 먹는 사람이 더 먹고 싶어 하면 저도 한없이 먹는 거죠.”
“담배는요.”
“담배도 마찬가지죠. 제가 피고 싶어서 피는 건 아니지만, 상대가 피면 저도 펴야죠.”
“접대하는 일을 하세요?”
“그런 셈이죠. 사람만나는 게 제 일이니까요.”
“그럼 도대체 그동안 몇 번이나 술을 마셨어요?”
“거의 매일 마시죠.”
“아니. 도대체 제 정신입니까? 지난번에 제가 그렇게 주의를 드렸는데..”
“하하 미안하게 됐습니다.”

마음씨 좋은 그 사내는 다소 귀찮을 수도 있는 내 집요한 추궁을 밝은 웃음으로 웃어넘겼다. 나는 그런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도록 또 목이 아프게 잔소리를 해 댔었다. 그리고 그는 돌아갔고 내 처방에 병이 말끔히 나아선지, 내 잔소리가 질려선지 한동안 우리병원에 나타나지를 않았었다.

몇 달인가 지난 뒤에 그 사내가 다시 우리병원에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난번에 입고 왔었던 허름한 잠바차림이 아니라 말끔하게 다림질한 검은색 사제복을 입고 온 것이었다. 목에는 하얗게 반짝이는 칼라(이걸 뭐라고 하나요)까지 보였다. 사람의 얼굴을 지독하게 잘 외우지 못하는 나는 전자차트에 접수된 지난번의 편도선염 환자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그 신부님은 우리병원에 처음 온 사람 같았다.

“순서가 바뀐 것 같네요. 이번에는 홍OO씨 차례인데요.”
내가 묻는 질문을 듣고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조금 있다가 그가 파안대소를 하며 껄껄 웃었다.
“제가 바로 홍OO인데요”
“그럼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
그가 대답한 생년월일은 바로 홍OO씨의 것과 일치했다. 그가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니 그럼 신부님이 왜 그렇게 맨 날 술만 마시고 다니는 거예요.”
진료가 끝난 후에 나는 조금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다. 나는 원래 목사님이나 신부님 같이 권위가 있는 사람들은 무서워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왠지 그에게는 묘한 호기심이 생겨서 그런 질문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하는 일이 그래서 그렇지요. 제가 술을 먹고 싶어서 먹겠습니까.”
“하는 일이 뭔데요?”
“아. 예. 뭐 노숙자들 하고 이야기 하면서 고충도 들어주고 위로도 하고 하는 게 요즘 주로 하는 일인데, 어디 맨 정신에 그런 이야기가 되나요. 그분들 마음을 열려면 소주도 마시고, 그분들이 담배피면 나도 같이 피우고 해야지요.”
갑자기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젠 개업에는 어느 정도의 달인이 되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던 내가 엄청난 실수를 했던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홍 신부님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얼큰하게 술이 올라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서로 마음을 터놓게 되지요. 그러면 같이 어께동무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고 해요.”
그리고 그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어쨌든 선생님의 귀중한 조언은 깊이 명심하고 있겠습니다.”
이제 나는 완전히 기가 죽었다. 그러나 내가 누군인가. 기가 죽어도 할 말은 해야 했었다.
“그-래-도-. 술을 그렇게 마시면 간 기능 검사는 해야 합니다.” 나는 단호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나를 기죽게 만든 홍 신부님은 그 뒤로는 한번도 나의 의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복지센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은 모두 홍 신부님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동네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한심하게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전해준 대답에 의하면 그는 그 즈음에는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그 분 생각이 난다. 요즘 다시 노숙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 분은 오늘밤에도 어디에선가 또 다른 노숙자와 함께 얼큰하게 오른 술기운에 어께동무를 하고 노래를 하며 산비탈을 오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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