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말인가 싶어 클릭한 그곳엔 중학교때 정치경제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이었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모교로 발령 받아 함께 근무 하기도 했었던 선생님. 아프고 아름다웠던 일들이 순간 눈앞을 어지럽히며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기쁘고 설레이는 마음이 너무 커서 어찌할바를 몰라 잠시 멍해졌다.
지금도 교복을 입고 교실을 들어서는 꿈을 자주 꾼다. 여름엔 파릇파릇한 잔디가 운동장을 가득 메우면 하늘을 이불삼아 뒹굴던 그곳이 보이곤 한다. 그러다 변해버린 주위 환경에 놀라 깨어나길 수십번 한걸 보면 난 아직도 그때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련히 밀려오는 그리움과 못다한 꿈의 빈자리가 나이가 들수록 더 차오르고 있을때 만난 것이 문화센타에서 수필을 배우는 거였다.
한번도 창작에 몰두 해본 적이 없던 나에게 글을 쓰게 만든 것은 몇해전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친구였다. 알 수 없는 통증이 밀려올 땐 미친 듯이 거리로 뛰쳐 나갔다. 발바닥이 파닥파닥 저려 올때까지 걷다보면 턱밑까지 숨이 차오른다. 그러다 보면 빈 가슴에 빼곡히 돋아나는 무명실 같은 질긴 인연의 고리가 펄럭이며 하늘을 날고 있는 착각이 일어 좋았다. 그날도 무심코 발길을 돌렸던 곳에서 주부백일장이 열렸고 난 그곳에서 입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여년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운 것이 수필이라고 하더니 천부적인 끼가 없던 나에게 노력밖엔 얻을 수 없음을 알고는 천천히 나를 발견해 나가는 작업이라 생각하며 배우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글짓기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래도 묘한 매력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요즘은 인터넷신문에까지 나름대로 정리하여 글을 올리게 되었으니 이만한 성과가 다시는 없을 것 같다. 거기다 올 여름에 동인끼리 수필과 시를 한데 묶어 동인지를 펴냈다. 그래서 친정아버지와 글을 좋아하는 몇몇 친구들에게 보냈던 것이었는데 뜻밖에 아버지가 너무 기뻐해 주셨고 그 책을 나의모교에 들고 가서 그 선생님께 드렸다고 했다.
보잘 것 없는 몇편의 글인데 싶어 부끄럽기도 했었는데 너무 향기로운 글이었다고 메일을 보내왔던 것이다. 평생을 고향에서 교직생활을 해왔던 아버지였고 그 선생님 또한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줄곧 거기서만 지내오신 분이라 서로가 훤히 알고 지내는 사이시지만 나에겐 어렵고도 먼 은사이셨다.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길 바란다고 했다. 좋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옴을 느꼈다. 욕심이 앞서서 좋은글을 쓰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노파심과 함께 가끔은 어렵고도 지루한 싸움에 내가 왜 뛰어 들었나 싶어 포기 할까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번은 더 하기 때문이었다.
취미로 문학을 한다고 했다가 문단에서 혼이 난 김동리 선생님이 계신다. 나도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누가 물으면 취미로 다니고 있어 하기도 했는데 이젠 그러지 말아야겠다. 감사의 메일을 보낸 만큼 선생님께 욕된 제자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요한 떨림이 전해졌던 이 메일이야말로 지금껏 내가 받은 메일 중 최고의 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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