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현대의 일상어에서는 거의 사라진 단어이다. “이런 발칙한 놈을 보았나.”는 등으로 사극에서나 등장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그 단어가 의미하는 느낌을 달리 표현할만한 다른 단어는 없다. 그런데도 요즘에 그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감정의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발칙함’이란 것은 비하의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가슴에 스쳐간 ‘발칙함’이란 단어에 대한 감정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나에게 멍함을 안겨준 것은 ‘발칙함’이란 단어에 담겨있는 또 다른 의미였다. “이런 발칙한 놈”이란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이, 발칙함은 어떤 색다름이고 그런 색다름을 동반한 도전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런 색다른 방식으로 도전을 당하는 사람은 “이런 발칙한 놈!”이라고 하면서 당황스러운 분노를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 바로 그것이었다.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색다른 방식의 도전’ 이렇게 정의해 놓고 생각해보니 그것이야 말로 내가 항상 추구하던 바로 그 무엇인 것이다.
이젠 삶을 대하는 내 시선이 많이 무디어졌지만 아직도 내가 인생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도전적인 태도를 완전히 거두어 버린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놓여진 이 세상을 사랑하고 싶다. 세상에 나와 함께 놓여져서 인생이란 것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무언가 사람들의 삶을 피곤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선 도전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 도전을 발칙하게 해보고 싶은 것이 내 젊은 날의 소망이었었던 것이다. 그래. 바로 그것이었다. 그 단어가 갑자기 나에게 색다른 의미로 느껴진 것은. 삶에 대한 발칙한 도전의 태도가 무뎌진 것이 늘 불편하던 마음에 그 단어가 다가오자, 나는 반가움과 가슴 찔리는 느낌을 동시에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청춘시절의 그 모든 꿈들을 다 접어버린 것은 아니다. 이제 조금은 철이 들어서 덤덤히 있을 뿐 내 속에선 아직도 꿈틀거리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언젠가 그것들이 남들이 생각해보지 않은 정말 발칙한 방식으로 표현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동안 헐거웠던 내 삶을 탄탄한 것으로 만들어 놓을지도 혹 모르는 일이다.
인생에는 항상 그런 ‘막판뒤집기’가 있다. 그래서 인생은 즐거운 것이고 나 같은 사람도 삶을 살아가는 재미기 있는 것이다. 오늘 평범한 사람으로 납작 엎드린 자세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언젠가 발칙하게 일어서 화려한 ‘패자부활전’을 꿈꿀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것들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가슴 서늘한 꿈 하나를 채집하려고 세상을 어슬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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