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라고 해서 저녁을 굶을 수는 없고 해서 딸에게 "무얼 먹을까?"물었더니 뜬금 없이 파전이 먹고싶다고 했다. 그래서 슈퍼에 가서 물오징어를 사다가 씻고 썬 뒤에 밀가루와 부침가루에 파와 계란까지 넣고 파전을 부쳤다. 하지만 물 조절에 실패한 까닭에 내가 만든 파전은 한마디로 '난리블루스'였다.
오징어는 반죽에서 튕겨져 나가 제 멋대로 프라이팬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요동을 쳤고 파는 파대로 반죽은 또 반죽대로 '그들만의 리그'를 이루고 있었다. 그처럼 제멋대로 놀아나는 파전을 부쳐 안방으로 들어가니 딸은 이내 입을 삐죽거렸다.
"무슨 파전이 이처럼 엉망진창예요?" "그렇긴 하다만 아빠가 손수 만든 거니까 먹어나 보렴~" 그러나 맛은 있었던지 입이 터져라 먹어주는 딸이 고마웠다. 파전을 먹다보니 술 생각이 간절해서 슈퍼로 쪼르르 달려가 소주를 두 병이나 사다가 마셨다. 술기운에 만연하여 쓰러져 얼마나 잤을까... 날 깨우는 인기척에 눈을 뜨니 어느새 퇴근한 아내가 뺑덕어멈처럼 눈에 불을 켜고 부라리고 있었다.
"잘 하는 짓이구려, 설거지할 건 산처럼 쌓아놓고 그래 잠이 와요?" 순간 "이크! 또 혼날 짓을 했구나..."라는 생각에 얼른 주방으로 달려갔는데 하지만 설거지는 이미 아내가 해 놓은 뒤였다.
채 깨지 않은 술기운이었지만 머쓱하여 머리만 긁적이고 있노라니 아내는 이번엔 딸을 야단치는 것이었다. "무슨 계집애가 파전 하나를 못 부쳐서 아빠를 시키냐?"고. 하지만 딸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다 이 못난 '초보주부'인 나의 잘못인 것을...
파전을 잘 못 부쳤고 설거지마저 치지도외한 채로 술에 취해 잠을 잔 죄로 인해 혼이 나는 바람에 내가 계속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아내는 그런 날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여보, 앞으로 파전을 부칠 땐 물 조절을 잘해서 반죽을 걸죽하게 해야 해요. 근데 딸이 하는 말이 당신이 만든 파전이 맛은 끝내줬다고 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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