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을식 작가, 소설집 “비련사 가는 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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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 작가, 소설집 “비련사 가는 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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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어둠 속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을식 작가가 소설집 “비련사 가는 길”을 출간했다.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 “비련사 가는 길”을 비롯해서 “꽃잠” “새장을 열다” “잃어버린 가방” “꽃뱀에게 길을 묻다” “추자의 엉덩이에 붙은 신신파스”등 주옥같은 빛나는 작품 여섯 편이 실려 있다.


오을식 작가의 스승이기도 한 한승헌 원로작가는 작품해설에서, 고통을 비틀어 꼬면 빛이 되고, 그 빛은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간다. 거문고나 가야금의 소리가 그것이다. 땅의 기운은 뽕나무를 키우고, 뽕나무는 누에를 키우고, 누에는 고통스럽게 죽음으로써 명주실이 되고, 그 실은 비틀어 꼬여 거문고나 가야금의 줄이 된다.

 

거문고 한 개의 줄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에고치 약 2만 개쯤이 죽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거문고나 가야금의 소리는 누에고치들의 죽음의 고통이 만든 빛이며, 새이다. 따지고 보면 살아간다는 것이 고통이다. 오을식 작가의 소설들 속의 인물들은 밑바닥의 어둠 속에서 분투하고, 그럼으로써 고통을 통해 빛과 내고 있다.

 

▲ 오을식 작가(오른쪽), 남균우 작가와 함께
ⓒ 뉴스타운
오을식 작가의 소설들은 “비련사(飛蓮寺) 가는 길” 위에 놓여 있다.

 

이 소설은 그의 첫 등단 작품이다. 내용에 따르면, 오대산에 있는 비련사와 동명인 또 다른 ‘비련사’는 치악산에 있는 허름하고 왜소한 절이다. 그 소설에는 치악산을 ‘치악산’이라고 부르는 유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는데, 구렁이가 꿩을 바야흐로 잡아먹고 있었다. 선비는 그 구렁이를 죽이고 꿩을 구해주었다. 죽은 구렁이의 암컷 구렁이는 원한을 품고 선비 뒤를 따라가서 한밤중에 주막에서 자고 있는 선비의 몸을 휘감았다. 그때 절의 동종이 뎅 뎅 울렸고, 구렁이는 새벽이 오는 줄 알고 선비를 풀어주고 도망쳤다. 이튿날 동종 아래에는 꿩들이 머리에 피를 흘리고 죽어 있었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 정신이상인 혜련이라는 스님을 구제하려고 한 여인이 헌신을 하는데, 그녀는 그 꿩의 혼령이 둔갑해서 된 사람일 터이다. 자기 목숨을 던져 종을 침으로써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는 것은 살신성인이자 은혜 갚기이다. 불교에서는 종소리로써 미망에 빠진 중생들을 구원한다. 오을식 작가의 소설들에는 그 꿩의 혼령이 둔갑해서 된 인물들로 가득 차 있다.

 

제주도 출신 아내를 두고 있는 그는 마치 제주도라는 땅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 모두의 데릴사위 노릇을 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제주도로 들어갔다. 그런 뒤 제주도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제주도의 남편 노릇을 하면서 성실하게 제주 태생인 아내와 제주도를 사랑하면서 살고 있다. 들리는 말로는 그의 아내가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소설만 열심히 쓰라고 보필을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지금껏 제주도 이야기만 쓰고 있다.


오을식 작가의 소설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재미있다. 일단 소설이 시작되면, 마치 병풍 한 장 한 장을 새로이 펼쳐가듯이 굽이굽이 새로운 국면을 곡진하게 보여준다. 어떤 것들은 추리소설을 보는 듯 뒤가 궁금해지기도 한데, 결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쪽으로 발전한다. 그것은 그가 한 소설을 쓰기 위하여 오래오래 공을 들이는 까닭이리라.

 

“비련사 가는 길”이라는 소설, 그것은 단세포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겹으로 직조된 것이다. 이야기 줄거리는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혜련이란 스님이 구조적으로 가지게 된 한 욕심, 그것은 정신이상으로 인한 것인데, 그것을 속된 남녀가 구제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비련(飛蓮)’은 ‘하늘을 나는 연꽃’이란 뜻이다. 연꽃은, 석가모니가 들어 보이자 수제자인 가섭이 혼자서 미소 지어보였다는 염화시중의 미소, 즉 ‘깨달음’을 말해주는 꽃이다. 주인공들은 그 날아가는 연꽃의 길을 따라 가고 있다. 작가의 의도는 독자로 하여금 그 주인공들의 길을 따라 가게 하려는 것이다.

 

치악산이 ‘치악산’이라고 불리는 유래(머리로 종을 치고 죽음으로써 은인을 구하는 꿩)를 슬쩍 보이고 나서, 작가는 정신이상인 혜련을 구하려고 온갖 정성을 다하는 여인 이야기를 독자 가슴에 안겨 주는 것이다.

 

“잃어버린 가방”에서는 ‘가방’이 자궁으로 읽힌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어머니를 잃어버린다는 것인데, 어머니는 광주의 비극 속에서 잃어버린 아들과 한패였던 엿장수에게 몰두한다. 이 소설도 굽이굽이 추리적인 재미와 더불어 곡진하게 진행되는데, 따지고 보면 이 주인공도 치악산의 꿩의 혼령에 씐 인물인 것이다. “추자의 엉덩이에 붙은 신신파스” 또한 그러하다. 밑바닥 여자 추자의 순수는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된 박종팔을 위해 자그마한 집 한 채를 사놓고 기다린다.

 

일본 남성의 광적인 섹스의 희생물인 창녀의 삶을 그린 “새장을 열다”의 ‘나’는 아비 없는 아이와 병든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절박한 창녀이다. 은인을 구하기 위하여 머리로 종을 들이받고 죽은 꿩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아랫도리를 파는 실존, 성매매금지법 속에서 도둑처럼 몸을 밀매해야 하는 그들의 삶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임진왜란 이후 가장 많은 일본 남성의 제주도 진군으로 유린당하는 이 땅 여인의 삶이라는 표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결국, 그의 소설이 말하는 것 굴착기가 달팽이관에 들앉아 숫제 고막을 쪼는 것만 같다.


제31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작인 “새장을 열다”는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성(다찌)들의 세계를 거친 언어와 위악적인 인물들을 통해 가차 없이 까발려주고 있다. 이 소설에서 인간의 모습은 참으로 혐오스럽고 기괴하기까지 하다. 이는 작가 특유의 험하고 걸쭉한 입심이 그만큼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통찰 위에서 이루어진 결과, 지난 시대에 성행했던 이른바 고발문학의 차원을 넘어섰다고 판단된다.

 

“나는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원앙시트를 뿌리치듯 걷어내고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발치 쪽 창가로 갔다. 안쪽의 진자주색 벨벳 커튼과 바깥쪽의 순백색 버나웃 커튼을 양손으로 싸잡아 힘껏 젖혔다.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눈을 찔렀다.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모로 틀었다. 직선으로 날아와 눈을 찌르던 빛이 점차 부드러운 파장으로 바뀌면서 실내에 가득 찼다. 나는 손등으로 눈두덩을 몇 차례 비비고 나서 실눈을 떠 창밖을 내려다본다. 턱턱턱턱……. 굴착기 한 대가 길 맞은편 건물 3층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올라앉아 측벽을 부수고 있다.”


▲ 책표지
ⓒ 뉴스타운

이것은 “꽃잠” 첫 머리(10쪽)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인데, 이것은 작가가 서 있는 자리를 한마디로 말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상징한다. 굴착기는 남근으로 읽히고 달팽이관은 여근으로 읽힌다. 남근은 포악을 부리는 이 우주 속의 남성적인 권력인 것이고, 여근은 포악에 박해당하는 땅과 중생들인 것이다.

 

작가가 서 있는 조용해야 할 세계는 외부의 폭력적인 세상으로부터(턱턱턱 하는 굉음 혹은 남근으로부터) 포악을 당하고 있다. 작가는 그 외부 세상의 포악을 이렇게 읽고 있다.

 

제주도로 대표되는 우리들 땅과 삶의 깊은 내면(삶의 벼랑에 서 있는 창녀의 자궁)을 휘저어 피 흘리게 하고 있는 것은, 광기어린 일본 남성의 남근으로 대표되는 외부권력의 포악이다. 그 포악은 우리를 조용하게 누워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가령 “꽃잠”속의 순진한 도덕교사인 주인공 ‘나’의 신랑은 교수의 굴착기로 인해 평온해야 하는 삶이 망가지고 있다.


헌 건물을 무너뜨리고 있는 굴착기처럼 이 세상의 광기어린 힘(남근)은 혜련(비련사의 주지 스님)의 삶을 무너뜨리고 오을식 작가의 모든 주인공들을 박해하고 병들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슬픔 속에서 우리들의 희망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꿩의 혼령에 씐 사람들이다. 오을식 소설의 존재 의미는 바로 그 꿩 혼령에 씐 인물들의 꿈과 분투로부터 싹이 튼다.

 

한승헌 작가는 제자 작가에게 “제주도로 대표되는 세상의 밖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지 말고, 그 슬픔 저 너머의 역사와 신화까지도 아울러 보듬어 좀 더 깊이 있게 천착하고 형상화”시키라고 당부하고 “제주도 땅의 데릴사위가 된 오을식 작가의 소설 속에 제주도의 신화와 역사가 싹트고 헌걸차게 자라기 시작하기로 한다면 그것은 이제 오을식 작가 소설의 새로운 시작, 새 장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오을식 작가는 전남 무안에서 출생했으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자유문학 신인상>에 중편 “비련사 가는 길”이 당선하여 소위 문단에 데뷔했다. 과작의 작가로 2005년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2008년 제8회 자유문학상 수상, 최근에는 작가들이 타고 싶어 하는 제3회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3년 소설 <비련사 가는 길> 1995년 소설 <어머니와 엿장수> 1996년 소설 <탑동에는 바람 잘 날 없다> <꽃뱀에게 길을 묻다> <추자의 엉덩이에 붙은 신신파스> <수평선 위에서 수평선을 보네><새장을 열다>등이 있다. <도서출판 청어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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