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찬반 논의가 분분했던 이라크 파병문제가 한국인 노동자의 피살로 인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파병 반대 논의는 감정까지 동반하면서 점점 그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이에 반해 파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반대 논의와 비슷한 수위로 높아져 간다. 한국인의 피살로 인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대한 논의가 차분함을 잃고 있다.
한국인이 죽음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말하면서 파병반대의 정당성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테러에 의연히 대처하면서 빠른 시간내에 파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실제로 이라크 파병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원론적 논의는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라크 파병, 누구를 위한 것인가? 파병 찬성론자들의 일관된 주장은 국익이다. 즉 우리의 국익을 위한다는 말이다. 비록 이라크 전쟁이 명분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실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한미관계에 대한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전후 복구 참여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은 실제로 미미하리라는 것이 일반적 입장이다. 단순히 전후 복구 사업의 규모만을 재고 있지만, 그것은 아직 불확실한 문제로만 남아 있다.
파견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미미하거나 혹은 불확실한 반면, 파견하지 않았을 경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분명하다. 일단 파병했을 경우 감당하게 될 수 조원대에 이르는 파병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 동시에 중요한 무역 파트너 가운데 하나인 아랍권과의 계속된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도 드러난 경제적 이익이다.
결국 파병을 통한 경제적 이익은 실제 미미하거나 혹은 손해 볼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결국 남는 것은 한미관계와 관련된 문제이다. 한미군사동맹이 깨어짐으로서 초래할 수 있는 북핵문제나 주한미군 정책,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해서 입은 은혜를 감는다는 보은의 측면 등이 이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전쟁에 대한 보은만큼 설득력 없는 논의도 없다. 한국전쟁에서의 미국 참여는 분명 그들의 국익과 연관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그들이 얻는 이익이 없었다면 그들이 그 전쟁에 참여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경제적 실익이든 세계에 대한 영향력 확보라는 이익이든, 결국 그들은 한국 전쟁을 통해서 얻는 이익이 있었다. 그 이후 50년간 한국은 철저한 미국의 우방으로써 그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보은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우리는 충분히 보은해 왔다.^
북핵문제나 주한미군의 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라크 파병의 여부에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결정지을 정도로 이 문제가 가볍지 않다. 주한미군의 정책은 그들의 해외파병 군대에 대한 정책과 그들의 국익에 관련되어 움직인다. 북핵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국 협박용은 될 수 있어도 실제로 이라크 파병문제가 이 문제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이렇게 분석하고 보면, 남아 있는 파병 당위의 논거는 '지금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우리와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관계등을 고려해 볼 때 미국을 건드려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한미관계가 그러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오면 수긍할 수밖에는 없지만, 기분은 좋지 않다.
소중한 젊은 생명을 담보해서라도 파견해야 하는 이유가 미국에 잘못보이지 않기 위해 '알아서 기는' 행동의 표현인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라크 파병은 결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이익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결국 모든 실리는 미국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실리를 챙기는 옆에서 떡고물을 기다리면서 파병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파병의 논의가 어떻게 결정날지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파병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은근한 협박과 그에 동조하는 극우단체의 힘에 떠밀려 흔들리는 우리의 약한 국력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파병할 때 파병하더라도 그 명분을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파병은 국제 권력의 구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이것을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로 기록해야 한다. 약한 국력때문에 젊은 생명들을 사지로 내 모는 것에 눈물을 흘리면서 파병을 결정해야 한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전쟁에 힘에 밀려 파병하면서도 '우리'를 위한다고 치장하지 말자. 물론 파병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겠지만, 파병을 하게 되어도 결코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자위하지 말자.
한국인이 죽음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말하면서 파병반대의 정당성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테러에 의연히 대처하면서 빠른 시간내에 파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실제로 이라크 파병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원론적 논의는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라크 파병, 누구를 위한 것인가? 파병 찬성론자들의 일관된 주장은 국익이다. 즉 우리의 국익을 위한다는 말이다. 비록 이라크 전쟁이 명분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실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한미관계에 대한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전후 복구 참여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은 실제로 미미하리라는 것이 일반적 입장이다. 단순히 전후 복구 사업의 규모만을 재고 있지만, 그것은 아직 불확실한 문제로만 남아 있다.
파견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미미하거나 혹은 불확실한 반면, 파견하지 않았을 경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분명하다. 일단 파병했을 경우 감당하게 될 수 조원대에 이르는 파병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 동시에 중요한 무역 파트너 가운데 하나인 아랍권과의 계속된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도 드러난 경제적 이익이다.
결국 파병을 통한 경제적 이익은 실제 미미하거나 혹은 손해 볼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결국 남는 것은 한미관계와 관련된 문제이다. 한미군사동맹이 깨어짐으로서 초래할 수 있는 북핵문제나 주한미군 정책,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해서 입은 은혜를 감는다는 보은의 측면 등이 이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전쟁에 대한 보은만큼 설득력 없는 논의도 없다. 한국전쟁에서의 미국 참여는 분명 그들의 국익과 연관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그들이 얻는 이익이 없었다면 그들이 그 전쟁에 참여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경제적 실익이든 세계에 대한 영향력 확보라는 이익이든, 결국 그들은 한국 전쟁을 통해서 얻는 이익이 있었다. 그 이후 50년간 한국은 철저한 미국의 우방으로써 그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보은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우리는 충분히 보은해 왔다.^
북핵문제나 주한미군의 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라크 파병의 여부에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결정지을 정도로 이 문제가 가볍지 않다. 주한미군의 정책은 그들의 해외파병 군대에 대한 정책과 그들의 국익에 관련되어 움직인다. 북핵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국 협박용은 될 수 있어도 실제로 이라크 파병문제가 이 문제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이렇게 분석하고 보면, 남아 있는 파병 당위의 논거는 '지금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우리와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관계등을 고려해 볼 때 미국을 건드려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한미관계가 그러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오면 수긍할 수밖에는 없지만, 기분은 좋지 않다.
소중한 젊은 생명을 담보해서라도 파견해야 하는 이유가 미국에 잘못보이지 않기 위해 '알아서 기는' 행동의 표현인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라크 파병은 결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이익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결국 모든 실리는 미국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실리를 챙기는 옆에서 떡고물을 기다리면서 파병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파병의 논의가 어떻게 결정날지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파병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은근한 협박과 그에 동조하는 극우단체의 힘에 떠밀려 흔들리는 우리의 약한 국력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파병할 때 파병하더라도 그 명분을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파병은 국제 권력의 구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이것을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로 기록해야 한다. 약한 국력때문에 젊은 생명들을 사지로 내 모는 것에 눈물을 흘리면서 파병을 결정해야 한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전쟁에 힘에 밀려 파병하면서도 '우리'를 위한다고 치장하지 말자. 물론 파병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겠지만, 파병을 하게 되어도 결코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자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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