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지마,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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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지마,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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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지도자의 구실 못하다가 참담한 패배 맛보아

▲ 신봉승/극작가·예술원회원
ⓒ 뉴스타운

죽음이란 하늘이 만든 영원불멸의 명작이다. 그러므로 애써 마중을 나갈 필요도 없지만 구태여 피해 다닐 필요도 없다. 죽음에는 나름대로의 존엄성이 따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고매한 선비들은 죽음에 임하면 종명시(終命詩)를 남기는 데, 그 내용의 일부는 대개가 같다. <하늘의 이치를 거역하지 않았고, 책 속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었다.>라는 구절은 사람이 해야 하는 도리를 충실히 다했기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자신의 삶에 후회를 남기지 않았음을 다짐하는 글이기에 후세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게 된다.


얼마 전,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죽음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1969년 친(親)서방 성향의 왕정을 무혈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리비아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장장 42년간 절대 권력을 휘둘면서 온 몸을 금으로 장식하고, 검는 안경을 쓰는 것은 ‘나의 미래가 너무 눈부시기 때문’이라고 호언하던 그가 중동·북아프리카 민주화 시위로 약 8개월 만에 고향 시르테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시위대에 기면서는 빈집에 들어가 주인이 먹다가 남은 쓰레기로 연명하였고, 종내에는 하수구로 도망하다가 잡혔는데 그의 손에는 황금 권총이 들려있었으나, 마지막 외친 말이 “쏘지마!”였다고 한다.


설혹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된다는 사실은 정해진 이치나 다름이 없을 것인데도 “쏘지마!”를 외치는 비열함을 무어라 가늠할 길이 없다.


카타피는 왜 “나는 리비아를 사랑한다! 리비아는 나의 영원한 조국이다!”라고 소리높이 외치면서 들고 있던 황금권총으로 자신을 쏘지 못했을까. 카타피의 그 옹졸하고 한심한 마지막 작태로 인해 42년간의 철권정치가 오직 사욕이었음을 여지없이 들어낸 꼴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푸줏간의 냉동실에 시체가 보관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참담함이 바로 역사의 준엄함이 아니고 무엇이랴.


카타피와 비슷한 예는 또 있다. 2003년 사담 후세인(이라크) 고향인 티크리트의 지하토굴에서 숨어 있다가 미군에게 발각되었다. 그 또한 “쏘지마!”을 외치면서 두 손을 들었으나, 집권 당시인 1982년 시아파 주민 148명에 대한 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뒤 사형선고를 받고 2006년 12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엄연한 사실을 카타피가 몰랐을 까닭이 없을 것인데도 그의 전철을 밟고자 하였다면 역사인식은 고사하고 도덕이나 책임감과도 전혀 무관한 쓰레기 같은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지도자가 지도자의 구실을 못하다가 참담한 패배를 맛보는 기록은 수없이 많다. 그러면서도 그 꼴불견이 되풀이되는 것이 역사의 순환이 아닌지 모르겠다.


죽음은 피할 수 없이 준엄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우리 조선의 선비들은 참으로 고매하게 죽음을 앞당긴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살아서는 물론이지만 죽음에 이르러서도 참된 도리를 지킨 참으로 아름다운 선비의 죽음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제국과 강제 합방되기에 이르자 매천 황현(梅泉 黃玹)선생은 <지식인 노릇하기 참으로 어렵다>는 종명시를 썼고, 가족들에게는 지고한 가르침을 유서에 적은 <유자제서(遺子弟書)>를 남겼다.


-내게는 꼭 지금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그러나 조선이 선비를 기른 지 5백 년이 되었는데도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목숨을 끊는 이가 없다면 가슴 아픈 일이고도 남는다. 내가 위로는 하늘이 지시하는 아름다운 도리를 저버리지 아니하였고, 아래로는 평소에 읽은 책 속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제 깊이 잠들려 하니 참으로 통쾌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이때 매천 선생의 연치 쉰다섯이었다. 나는 이 글을 수만 번 읽으면서 지식인의 덕목을 익히는 도리로 가슴에 간직하였다.


꼭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타피가 아니더라도 세계에는 수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있다. 그들 모두가 우리 조선의 선비들이 지키고 간직했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배운다면 세계가 오늘처럼 혼란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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