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라레> 내 마음을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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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라레> 내 마음을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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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자극하는 만화적 상상

^^^▲ <사토라레> 포스터^^^
사람들 사이에는 유난히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있다. 어릴 적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이나 오랜 시간 함께 살아 온 부부들이 보통 이런 경험을 한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심술(讀心術)때문일까? 아니면 소울메이트(soulmate)여서? 아마도 그건 함께 한 시간, 오랜 시간 주의를 기울여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1998년 작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짐 캐리]은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는 평범한 일상, 훈훈한 이웃이 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삶은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24시간 생중계 TV쇼에 불과했다. 첫 사랑도, 진정한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따스한 이웃도 모두 돈을 위해 연기하는 배우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는 자신의 삶을 바꾸고자 바다를 건너 새장(스튜디오)을 탈출한다.

영화 <사토라레> 역시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비행기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인 [사토미 켄이치- 안도 마사노부]는 ‘사토라레’로 인정을 받게 된다. 자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마는 ‘사토라레’는 대부분 IQ 180이상으로 혁혁한 업적을 세워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해온 것 . 따라서 그들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철저한 관리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게 되고, [사토미]는 그 프로그램에 의해 자신의 삶을 감시당하게 된다.

여기까지의 내용만을 보면 <트루먼 쇼>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트루먼 쇼>와 <사토라레>는 큰 차이점이 있다. 그 결정적인 차이점은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트루먼]이 새장에 갇힌 신세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위해 존재해온 모든 것들을 버리며 자유를 찾는 과정이 감동의 포인트였다면, <사토라레>는 [사토미]가 자신의 마음을 너무 쉽게 들켜버려 주변 사람들에게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자신의 생각 전부를 보여줄 수 있음에 그의 원초적인 감정들을 타인들이 공감을 하면서 생겨나는 감정의 ‘소통’이 감동의 포인트 인 것이다.

사람들은 두 얼굴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가족에게까지 보여주지 않는 나만의 ‘얼굴’과 세상에 섞이기 위해 불가피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두 번째의 얼굴 즉 ‘가면’이 그것이다. 동심을 잊고, 사회라는 집단에 속하는 순간 우리들은 본연의 얼굴 위에 주머니에서 ‘가면’을 꺼내 쓰는 것이다. 타인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 웃을 수 있는, 울고 싶어도 강해보이기 위해 입을 꼭 다물고 참아내는 얼굴을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속마음을 전부 내보이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급소를 드러낸 채 칼을 든 투우사에게 달려드는 소와 같이 인식되고 말았다.

그래서 속내를 쉽게 드러내는 사람들에게는 ‘순수한..’이란 말과 함께 ‘입이 싼..’이라는 수식어가 붙여지는지도 모르겠다. <사토라레>의 첫 번째 ‘사토라레’인 [시라키 시게후미]는 자신의 생각을 전부 읽혀버리는 처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살로 위장, 무인도로 숨어버린다. 그는 자신의 치부를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두려웠던 것이다. 자신의 ‘가면’에 숨겨져 있는 추악한 ‘얼굴’을 보이는 것이 겁났던 것이다.

반면에 [사토미]는 의사로서 병원에서 골칫덩이로 통한다. 실력은 단연 으뜸이지만 환자의 비밀을 지켜 줄 수 없는 ‘사토라레’이기 때문에 수술을 집도할 수 없는 반쪽짜리 의사인 것이다. 병원 근무자들 역시 자신의 사생활이 만천하에 공개 되는 것을 꺼려 [사토미]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그러나 점차 그의 마음을 읽음으로써 그의 사려깊은 마음씨, 진심을 알게 되어 결국에는 [사토미]에게 감복을 하게 된다. [사토미]가 영화 속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던 것은 그가 ‘사토라레’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소리까지 들려주며 타인과 이뤄낸 깊은 소통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던 [사토미]의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것이다.

첫 번째 사토라레 [시라키]와는 사뭇 다른 이런 주위의 반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사람 사이의 경계를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면’을 찾아서 자신의 얼굴에 덧쓰는 순간 나와 타인과의 경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타인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길 바라기 전에 가면 속 내 본연의 모습으로 그 사람에게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떨까. [사토미]를 경계하던 병원 근무자들처럼 처음에는 우리를 밀어내던 사람도 언젠가는 나를 위해 마음깊이 기도하게 될런지 모를 일이다.

내 모든 것을 내보이는 것을 겁낼 필요는 없다. 빈털터리가 되더라도 그 빈자리는 타인이 채워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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