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허비한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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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허비한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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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속에서의 하루란 것의 의미

크게 보면 역사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뒤엉키며 살아간 흔적이 유유히 흘러간 자리에, 역사라고 하는 것이 박물관의 전시품 같은 정적인 존재로 남게 된다. 그러나 삶을 살아간 한 사람 각각에게는 숨이 턱에 걸리도록 열심히 살아간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서세동점의 100여년의 역사는 수명이 긴 몇몇 사람에게는 바로 한 사람의 인생일 수도 있고, 이제 연세가 많이 든 분들이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전해들은 바로 그 이야기 일수도 있다. 그리고 보면 짧은 것만 같은 사람의 삶의 연륜도 그렇게 작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제 칠순은 눈앞에 두신 아버님도 일제시대를 거쳐 6.25와 4.19 그리고 그 길고 길었던 유신시대와 민주화과정의 시대를 그대로 다 겪으며 살아오셨다. 어릴 적 아마도 고무신을 신고 논둑에서 놀며 성장하셨을 아버님은, 이제 정년퇴임을 하시고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는 게 제일 즐거운 취미가 되셨다.

그분은 젊은 시절 곧고 성실하게 사셨는지, 나는 주변에서 아버님을 고지식하다고 평하는 소리들을 많이 들으며 자라났다. 그래서 어린시절의 나는 고지식한 것이 아주 나쁜 것 인줄 알고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장학사 공채시험을 1기로 통과하시고도 그분은 크게 승진을 하지 못하셨다.

그러나 정년퇴임 후 아버님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지금 성장한 내 눈으로 바라보기에는 아버님은 아마도 훌륭한 분이였던 것 같다. 적어도 자신을 삶을 곧고 성실하게 사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입이 무거운 그분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양심적인 교육자였다고 어렴풋이 알 뿐이다.

그러나 좀 더 많은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그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갈 것이다. 그게 사람의 삶이다. 시간이란 그렇게 많은 것들을 망각으로 묻어버린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구성물들은 멀리서 볼 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을 자세히 보고 무언가를 깊이 느끼려면 가까이 다가가야만 한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사람의 삶의 아픔과 기쁨들은 그다지 큰 것이 아니라, 작고 조그마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웃고 운다. 역사의 자그마한 구성물에 불과한 우리는 아침이면 일어나야 하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시간에 맞추어 어디론가 향하여 간다. 조금만 멀리서 보면 보이지도 않을 존재들이지만, 우리들 작고 미세한 익명의 존재들은 그렇게 바쁘게들 살아간다. 어제와 별로 다를 것이 나의 오늘 하루의 삶에, 마치 세상이 변하기라도 할 것처럼 살아간다.

1차 대전을 그린 영화들을 볼 때마다 나는 자꾸만 묘한 감상에 빠져든다. 참호를 파고 길게 대치하고 있던 양 진영 중 한곳에서 명령이 떨어진다. “돌격.” 그 명령에 사람들은 일제히 참호에서 일어나서, 철조망과 가시덤불을 뛰어 넘어 상대방 진영으로 향하여 뛰어간다. 총소리가 울려 퍼진다. 상대방의 진영애서 기관총이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해댄다.

사람들이 쓰러진다. 넘어지는 사람들의 무리 사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결국 일부의 사람들이 기관총 사수를 쏘아 명중시키고, 상대방의 참호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사방으로 튀던 그 기관총의 총알은 누구를 향하여 달려간 것일까. 세상에 태어나 죄를 많이 지은 사람. 죽어도 별로 슬퍼할 이가 없는 사람들을 골라서 맞힌 것일까?

적진은 향해 달려가던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입밖에 꺼내지 않은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적을 향한 분노와 적개심만이 가득했을까. 아직 채 다 피어보지도 못한 청춘으로 스러져 가는 것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을까. 아니면 그저 겁에 질려서 아무 생각도 없이 창백한 공포에만 압도되어 있었을까. 그 돌격명령이 내려진 순간에 그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세월은 그렇게 무심히 흘러간다. 그렇게 수많은 청춘들의 안타까운 목숨을 사라지게 만든 양국은, 이제 유럽연맹을 이끌어가는 중심동맹국이 되었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 중 극히 일부는 어쩌면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이라는 시점을 어떤 시각으로 받아들일까. 지금 그들은 당시에 그들을 압도하던 그 절박한 심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가치 없는 죽음’ 그것이 싫어서 나는 오늘도 성실을 다해서 하루를 살아간다. 내 이름이나 내 존재의 기록이 역사위에 우뚝 서서 영롱하게 빛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 자리는 금세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흔적도 없이 채워질 것이다. 나는 세상에 무엇을 차지하거나 무엇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단지 열심히 살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그 시간들을 내 인생에 대한 성찰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채우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흘러가는 이 길이 과연 어디로 향한 것인지 알아보고 싶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세월 속에 매몰된 존재이지만, 내가 가는 길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 나에게 보내진 글을 하나 읽었다. 오래전 학창시절에 내가 즐겨 찾았던 금정산 정상에 올랐던 느낌에 관한 글을 읽어본 이가, 자신이 며칠 전 금정산에 올랐을 때 내가 마시던 막걸리를 마시며 내가 즐겨 바라보던 억새를 바라보고, 내가 바람을 맞으며 않아 있기를 좋아하던 그 성벽위에서 느끼던 바람의 시원함에 대해 적은 글을 보낸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혼자서 사는 존재이지만 또 혼자가 아니기도 하다.

우리는 조그만 존재들. 그래서 미물들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허용된 기간동안 자유롭게 살아갈 자유가 주어져 있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단지 그 기간 동안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싶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싶지는 않지만, 주어진 것을 허비하지는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인생을 낭비하는 죄’를 짓고 싶지 않을 뿐이다.

별로 말씀이 많지 않으신 아버님이 열심히 자신의 몫의 인생을 사신 후, 조용히 바둑을 두시면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즐기시는 모습을 본다. 나도 아직은 뛰어야 할 내 삶이 있고, 그것을 성실히 살아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걸어온 길과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빙긋이 웃으면서 내 한 손을 내밀어서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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