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이슥한 겨울 한밤중이 되면,고요한 달빛이 마을의 고샅고샅을 어루만지고 있을 즈음해서 찹쌀떡 팔러온 떡장수의 목청 좋은 음색으로 리듬을 실어 소리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늦은 겨울 밤에 할머니 치마자락을 붙잡고 옆에 누워 있다가 찹쌀떡 장수의 노랫가락 같은 목청 좋은 소리가 들려올 때면, 할머니는 치마 속바지 안에서 줌치를 꺼내어 백원짜리 종잇돈을 손에 쥐어 주며 찹쌀떡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손에 꼭쥔 종잇돈을 들고 곧장 달려가면 찹쌀떡 장수를 만날 수 있지만 조금만 지체하다가는 어느새 골목을 빠져 나가 시야에서 멀어진 것을 보며 다시 되돌아와야 했다.
집 앞에서 이미 멀어져 보이지 않는 찹쌀떡 장수 아저씨. 희미한 목소리를 따라가보지만, 달빛 받아 하얀 골목길에 홀로 서서 찹쌀떡 장수가 혹시 보이지 않을까 멀리 해바라기를 해본다.
터벅터벅 되돌아 올 때면 하얀 달빛이 돌담을 어루만지면서 서성대고 있었다. 하얗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잉크물에 담궜다 꺼낸 도화지 같은 시골밤 풍경에 그만 울음이 울컥 올라왔다.
돌담에 겹쳐진 아이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아이는 오래도록 서 있다. 달이 서러워 고즈넉한 밤풍경에 그만 마음이 저려와서...^
찹쌀떡장수 아저씨와 맞딱뜨린 것은 별로 없는듯 하다.신발을 꿰신고 달려 나가면 언제 그새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슥한 겨울 밤에 먼데까지 목소리를 쫓아갈 용기는 아이에겐 없었다. 언제난 시도만 하다 말았다.
깊은 겨울밤, 할머니 옆에 누워 대추씨처럼 말라버린 할머니의 젖가슴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찹쌀~~떡! 메밀~~묵! 하고 긴긴 겨울밤의 고샅고샅을 독백처럼 소리치며 도는 그 아저씨의 음성은 왠지 쓸쓸하게 들렸다.
어린 시절의 겨울 밤...할머니 옆에 누워 마른 젖무덤에 얼굴을 파묻다가 찹쌀떡 하고 소리치는 골목으로 뛰어 나가던 그 시절 문득 눈앞에 어른거린다.
도심속의 밤은 점점 밤을 잊어가는 것 같다. 밤새도록 간판불이 켜진 PC방과 노래방,술집등의 네온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고,신 새벽에도 찹쌀~떡!메밀~묵~하며 고요한 밤의 정적을 이따금 깨곤 하던 목소리 대신에 가끔 무리지어 지나가는 취객들의 높은 소리가 들릴 뿐이다.
잉크물에 풀어진 도화지처럼 깊고 푸른 밤에 정적을 깨뜨리며 졸고 있는 아이조차 깨우던 찹쌀떡 장수 아저씨의 목소리... 지금은 지상에 없는 할머니의 대추씨같이 말라비틀어진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비틀며 놀던 아이였던 그 옛날, 나는 언제 여기까지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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