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써클> 포스터^^^ | ||
- 나는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았다. 그러자, 내게서 하늘이 보였고 비로소 내 철학이 완성되었다. 그 철학이 완성된 순간 나는 혼란되었고 그것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
필자는 위의 문구로 이 영화를 요약할 수 있다. 명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그 자신이 아닌, 과거 속의 그였으며 강검사는 과거를 태워버렸다. 지금 현실을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 속의 내가 들어와 살아있고 과거 속의 나를 벗어던지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되지만, 나는 또 다시 미래의 나 속에 들어가 산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이 영화는 윤회설에 관해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다시 태어난다, 라는 보편적 주제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대신, 과거의 정신과 현재의 정신이 혼합되어 분열된 자아를 통해 영화를 전개해나간다. 그러니까, 세상은 돌고 돌지만, 그것은 결코 정상적인 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면서, 윤회설을 오히려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가보다 하고 이 영화의 써클을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허무해지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바로, 그것이 이 영화가 남기고 있는 메시지라면 메시지이다.
인생은 허무하다. 자신의 집착이나 욕망이 덧없음을 깨닫는 순간, 나는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날 필요 없이 현실에 더욱 더 충실해지자고 다짐하게 된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는 이 영화가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비록 전체적인 연출력은 떨어진다 치더라도 시도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니,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이렇게 망쳐놓다니!
영화는 곳곳에 치밀한 장치와 정밀한 요소들을 곁들이면서 시종일관 어두운 톤의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또한 등장인물 캐릭터 각각에 충실하면서도 여러가지 내면을 표현해내려는 노력이 돋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족한 연출력은 어쩔 수 없이 강수연의 검사연기를 어색하게 만들어놓았으며, 간혹 정웅인의 상황상황 나오는 대사나 표정, 혹은 웃음소리가 뜬금없어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또한, 이 영화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가 관객들에게 공감을 주기 힘들게, 전생의 장면과 현생의 장면이 엇박자를 내고 엇갈리기도 한다. 그래서,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더더군다나, 마지막 반전장면과 강수연과 정웅인의 엔딩 부분은 너무나 뜬금없어 설득력마저 잃어버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윤회설을 부정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의 플롯 자체가 이해되기는 한다. 왜냐하면, 윤회설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윤회설에 대해서 우선 다루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윤회설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 난 후 부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생에 태어난 내가 지금 또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같은 생을 삶을 사는 누군가가 현생에 태어났을 뿐이라는 것. 다만, 한을 가진 전생의 나와 비슷한 사람이 (그러니까, 조상이라든가) 지금의 나를 조금 괴롭혀줄 뿐이라는 것. 그러니까, <써클>은 사람의 머리를 살짝 괴롭혀줄 뿐이긴 하지만, 결국은 도움을 주는 그 무엇도 없다.
<써클>은 기존의 영화에 반기를 드는 또 하나의 실패한 실험작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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