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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 통감부(統監府:1906-1910) 총독부(總督府:1910-1945)
 김민수_
 2014-02-05 12:11:05  |   조회: 2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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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 통감부(統監府:1906-1910) 총독부(總督府:1910-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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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2월 23일 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는 군사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차지하여 이용할 수 있는 갑진늑약(甲辰勒約)을 늑결(勒結)하였다. 1900년 청국 서태후와 덕종 광서제가 지원하는 의화단(義和團)이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기치 아래 그리스도교도나 선교사는 물론이고 일반 외국인을 습격하고 영국 · 미국 · 러시아 · 독일 · 프랑스 · 오스트리아 · 이탈리아 · 일본 연합군과 싸웠다. 이후 러시아는 간도 일대에 군사를 체류시킨 채 기한이 되도록 철수하지 않았다. 일본(日本)·영국(英國) 양국이 동맹으로 그에 대응하고 미국(美國)도 항의하였으나 러시아는 응하지 않다가 1903년 4월에 이르러 군사를 출동시켜 멋대로 대한제국 용암포(龍巖浦)를 차지하였다. 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는 대한제국이 중국 침략의 병참기지로서 중요하다고 여겨 몇 달을 절충하였으나 해결이 나지 않았다. 러시아가 도리어 군사 장비를 증수(增修)하자 1904년 2월 6일에 이르러서는 두 나라 사이의 국교가 단절되었다. 9일 일본 함대가 러시아함을 공격하여 인천(仁川)에서 2척을 격파하자 러시아함은 퇴각하다가 인천항(仁川港)에서 폭침되었다. 10일 일본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12일 러시아 공사(公使) 파블로프가 한성(漢城)을 떠나 귀국하였다. 이에 이르러 국면은 일변하였고 러일전쟁을 개전한 일본군국주의는 갑진늑약(甲辰勒約)을 늑결(勒結)하였다.












1905년 5월 28일 한부선 철도(漢釜線 鐵道)가 지금 이미 준공(竣工)되어 준공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일본국 체신 대신(遞信 大臣) 오우라 가네다케는 특별히 대훈(大勳)에 서임(敍任)하고 이화 대수훈장(李花大綬勳章)을 수여하고, 철도회사 총재(鐵道會社 總裁) 후루이치 고이, 시부자와 에이치, 육군 중장(陸軍 中將) 이시모토 신로쿠에게는 모두 특별히 훈 1등에 서훈하고, 철도국장 야마우찌 가즈쯔구, 철도 기사(鐵道 技師) 오야 곤페이에게는 모두 특별히 훈(勳) 2등에 서훈하며, 철도 이사(鐵道 理事) 가와사키 간미, 아다치 다로, 다케우치 쓰나, 귀족원 서기관(貴族院 書記官) 가나야마 쇼시, 중의원 서기관(衆議院 書記官) 히로세 요시로, 육군 중좌(陸軍 中佐) 호리우치 분지로에게는 특별히 훈 3등을 서훈하고 육군 대위(陸軍 大尉) 야마구치 도하찌에게는 특별히 훈 4등에 서훈하며 각각 태극장(太極章)을 수여하였다. 육군 소장(陸軍 少將) 무라타 아쓰시에게는 특별히 훈 1등에 서훈하고 체신 대신(遞信 大臣) 비서관(祕書官) 호리사다, 육군 소좌(陸軍 少佐) 홍다 싱빠치에게는 특별히 훈 3등에 서훈하여 육군 중위(陸軍 中尉) 야마구치 마스조에게는 특별히 훈 4등에 서훈하고 각각 팔괘장(八卦章)을 수여하였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는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기 위하여 1905년 11월 9일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를 특사로 파견하여 을사늑약(乙巳勒約)의 불법 늑결을 대한제국 정부에 강요했으며 11월 18일 불법 늑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에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주권행사의 주체가 일본군국주의 통감(統監)이라고 규정했다.1905년 11월 22일 통감부(統監府) 및 이사청 설치가 발표되었는데, 통감부를 한성(漢城) 목멱산에, 이사청을 한성·인천·부산·원산·진남포·목포·마산에 두어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의한 여러 사무를 관장하게 되었고 12월 20일 통감부 및 이사청 관제가 반포되었다. 대한제국의 한성(漢城)에 일본군국주의 통감부(統監府)를 두고 통감부에는 통감을 두는데 통감은 일왕에 직속하고 외교는 일본 외무대신을 거쳐 총리대신을, 기타 사무는 총리대신을 거쳐 상주하고 재가를 받게 되었고 통감은 대한제국의 외국 영사관 및 외국인에 관한 사무를 통할하고 일본 관리 및 관청이 시행하는 업무를 감독하는 지위였으며 한국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에는 한국 수비군 사령관에 대하여 병력 사용을 명령할 수 있었다. 1906년(광무 10) 2월 1일 일본군국주의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개청식을 가졌으며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취임하여 한국 수비군을 통수하는 원수의 자격을 겸임했고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통감통치를 받게 되었다. 일본군국주의는 통감부 설치 이후에도 대한제국 정부를 그대로 두었고 통감통치에 필수적인 기구를 확대·강화하였다. 1개 사단 규모 이상의 전시 편제 무력을 주둔시키고 경찰기구도 강화시켜 나갔다. 일본인 경찰고문이 5명에서 678명으로 급격하게 늘었으며 경찰 수도 1,851명에 이르게 되었고 헌병대도 강화시켜 경술늑약(庚戌勒約) 불법 늑결 이후 헌병경찰에 의한 무단통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반을 이루었다.











1905년 11월 18일 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을 간섭하는 을사늑약을 불법 늑결한 후 1906년 총독부의 전신인 통감부를 설치하여 대한국 불법 병탄(倂呑)을 꾀하였다. 1907년 고조 광무제는 영친왕비(英親王妃)의 간택(揀擇) 기일(期日)을 뒤로 미루어서 정하는 퇴정(退定)을 명하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상설,이위종을 특사(特使) 파견하여 불법 무효한 을사늑약(乙巳勒約)의 파기를 회의 의제에 상정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일본군국주의 통감부는 대한국을 불법 병탄(倂呑)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헤이그 특사 처벌, 정미늑약 불법 늑결, 대한제국군 강제 해산시킨 후 헤이그 특사(特使) 파견을 이유로 대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를 부정하며 황태자 이척에게 조선국 왕궁 창덕궁에서 대리청정을 명령하고 대한국(大韓國)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을 조선시대에 상왕이 승하 시까지 한시적으로 사용한 상왕전의 전호로 격하시켰다. 일본군국주의 통감부(統監府)는 1907년 황태자의 창덕궁 대리청정(代理聽政) 명령을 대한국 황제 고조 광무제가 불참하는 권정례(權停例)로 행하였고 7월 20일 헤이그 특사 이상설(李相卨), 이위종(李瑋種), 이준(李儁)을 처벌하였다. 을사늑약(乙巳勒約) 불법 늑결, 통감부 설치 이후 대한제국 국권 회복을 위한 한민족의 저항이 대한독립운동·계몽운동과 같이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전개되었으며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의 헤이그 특사 파견,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반일 상소, 자결이 계속되었으나 1910년 8월 29일 경술늑약(庚戌勒約)이 불법 늑결되고 일본군국주의 총독통치가 시작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는 1908년 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 통감부(統監府)가 대한국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收奪)할 목적으로 설치한 식민지 착취기관이다.일본군국주의는 1908년 의회에서 동양척식회사법을 통과시키고 이를 대한제국 정부에 강요하여 1000만 원 자금으로 한국에서 척식(拓植)사업을 목적으로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같이 일본 정부의 직접적 지배하에서 독점적 특수회사를 설립하고 일제는 이에 일정기간 상당액의 보급을 시행하고 한국 정부는 사업용지의 일부를 제공하기 위하여 국유지를 출자함으로써 한국이 자원 개발, 식산(殖産) 진흥을 담당하게 하며 일본으로부터 진보된 농법을 시범함과 동시에 기업가에 이자가 싼 자금을 공급하여 식산사업에 이바지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설립하였으나 실제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할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총재 우사가와 카즈마사는 1910년 이후 한성(漢城)의 경복궁(景福宮) 전각,궐외각사 건물을 철거하여 기타이 등 일본인에게 강제 매각하였고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토지 1만 7714정보를 출자받고 1913년까지 토지 4만 7148정보를 헐값으로 매입하였다.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된 이후인 1920년 말에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지는 경작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9만 7천여 정보에 달하였다.









일본군국주의는 대한제국의 국유지를 강제로 불하하여 막대한 면적의 산림지를 가로채어 1942년 말 16만여 정보의 임야를 소유하였다. 강제로 빼앗은 토지를 소작인에게 빌려주어 50%가 넘는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하고 영세 소작농에게 빌려준 곡물에 대해서는 20% 이상의 고리를 추수 때 현물로 거둬들였다.또한 그 소유지는 일본인 이주자에게 싼값으로 양도되어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직영지 면적은 점차 감소되었으나 1937년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직접 경영한 경작지 면적은 6만여 정보에 달하였다. 일본군국주의는 각종 특혜를 주고 1910∼1926년에 17회에 걸쳐 일본인 이민 희망자 약 1만 명을 엄선하여 한국 침략의 담당자로 활용했다. 이들 이주민은 경기·경상·전라·황해·충청도에 가장 많았는데 그들은 대한국 국민을 착취 압박한 일본군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었다. 1920, 1930년대 한국 농민의 격렬한 소작쟁의가 있었으며 1926년 12월 28일 의열단원 나석주(羅錫疇) 열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기습하여 폭탄을 투척하고 민족적 증오를 표현하였다.1926년까지 한국인 빈농 약 29만 9천이 토지를 상실하고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1931년 간도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야기한 이후 일본군국주의가 한반도를 그들의 병참기지화하기 위해 중공업에 집중 투자하자 동양척식주식회사도 광공업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 전기·탄광·제철 등 각 분야에 투자하였다.













1910년 8월 29일 경술늑약(庚戌勒約)이 불법 늑결되고 일본군국주의의 총독통치가 시작되었고 대한제국 정부 소속 관청 가운데 내각(內閣)·표훈원(表勳院)·회계검사국은 폐지하고 학부(學部)를 축소하여 내무부의 일국(一局)으로 하는 외에 내무부·탁지부·농상공부는 축소하여 존속시켰으며 통감부의 사법청은 사법부로 개편하고 새로 총무부를 설치했다. 1906년 이후 일본군국주의 통감통치 기간동안 대한제국 정부는 각 부 차관을 비롯해 중요한 국장·과장은 일본인으로 충원되었기 때문에 통감부(統監府)가 총독부(總督府)로 개칭되었어도 고위 요직의 일본인 배치는 변동이 없었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는 총독관방 외에 총무부·내무부·탁지부·농상공부·사법부의 5부를 구성하여 각 부의 장을 장관이라 하고, 각 부에 국을 두어 칙임(勅任)의 국장을 두었고 부속기관으로 취조국(取調局)·철도국·통신국·임시토지조사국·전매국·인쇄국을 두었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의 총 직원 1만 5,113명 가운데 5,707명이 철도국·통신국·임시토지조사국 등 대한제국 경제수탈기관에 배치되고, 치안기관에 2,600명, 사법기관에 1,617명, 중앙행정기관에 974명이 배치되어 한민족의 대한광복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하고 경제적으로 수탈하고 민족문화의 말살정책을 강요하였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 중추원(中樞院)은 1894년 갑오개혁 때 설치된 내각의 자문기관이었으나 1910년 8월 경술늑약 불법 늑결 이후에는 일본군국주의의 대한제국 침략에 적극 협력한 친일파들이 무력을 동원한 일본군국주의의 대한국 불법 병합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기관이 되었다.일본군국주의 총독부 중추원(中樞院)은 1910년 9월 30일자로 공포되고, 10월 1일자로 시행된 총독부중추원관제(總督府中樞院官制)에 의하여 설치되었다. 1910년 12월 12일 중추원의사규칙(中樞院議事規則)이 제정되었고, 1918년 1월 19일 중추원사무분장규정(中樞院事務分掌規程)이 제정, 공포되었다. 한국사 편찬사업을 1915년 7월 착수하여 이완용 등 고문 11명을 조사위원으로, 찬의 류정수(柳正秀) 등 15명을 실무자로 선임하고 미우라·이마니시·구로다를 편집 주임으로 위촉하였다. 중추원(中樞院)은 의장, 부의장, 고문 15명, 찬의(贊議) 20명, 부찬의(副贊議) 35명, 서기관장, 서기관 2명, 통역관 3명, 속(屬) 3명을 둔다. 중추원 의장은 총독부 정무총감으로 보하였으며 부의장에는 김윤식(훈2등 자작), 고문에는 이완용(훈1등 백작), 박제순(훈1등 자작), 고영희(훈1등 자작), 조중응(훈1등 자작), 이지용(훈1등 백작), 권중현(훈1등 자작), 이하영(훈1등 자작), 이근택(훈1등 자작), 송병준(훈1등 자작), 임선준(훈1등 자작), 이재곤(훈1등 자작), 이근상(훈2등 남작), 이용직(자작), 조희연(남작)이 임명되었다.











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 총독부는 대한국 황족을 일본 왕실에 강제 편입하고 대한국 황실 궁내부 직원 700여 명을 해직하였으며 대한제국시대(1897- ) 역사를 부정하고 조선시대(1393-1897) 역사를 폄하, 왜곡한 한국사 편찬 작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1925년 한국사편수회를 설치했다. 총독부(總督府) 한국사편수회의 회장은 정무총감이 겸임했으며 고문에 이완용·박영효·권중현·쿠로이타·핫도리·나이토, 위원에 이마니시·이능화·어윤적·오다 등이, 간사에 이나바 등 3명, 수사관(修史官)에 이나바·홍희(洪熹)·후지타 등이 임명되었고 이병도(李丙燾)·신석호(申奭鎬) 등이 수사관으로 참여했으며 최남선(崔南善)도 1928년 12월 촉탁위원으로 참여했다. 총독부(總督府) 한국사편수회는 한국사를 편찬하면서 단군시대사,고례,백제,신라 3한국시대사 왜곡,발해사,조선시대사 왜곡,대한제국사를 고의로 누락하였으며 한국사 서술의 중심은 한민족의 주체적 역사발전을 서술하지 않고 우리나라가 속국으로 사대주의로 일관했다거나 일본보다 역사와 문화가 뒤떨어져 있다는 일본의 한국 침략과 강점의 합법성,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악의적인 사료의 취사선택·편수,감수 과정에서 역사 왜곡을 자행했다.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설치한 한국사편수회의 한국사 편찬작업에 참여한 한국인 학자들은 일본군국주의가 무력을 동원한 대한제국 불법 침략과 일본군국주의 총독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일본군국주의 총독부의 한국사 폄하,왜곡 정치선전에 이용되었다.











1925년 이후 우리나라 역사를 악의적으로 왜곡한 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 총독부(1910-1945)가 1930-1935년 편수(編修),감수(監修)하여 편찬한 고종순종실록 편찬위원(編纂委員)은 위원장은 시노다 지사쿠이며 감수위원(監修委員)은 경성제국대학 교수 오다 쇼고, 나리타 세키나이이며 사료수집위원(史料 蒐集委員)은 기쿠치 겐조이며 서무위원(庶務委員)은 스에마쓰 구마히코, 시가 노부미쓰이며 회계위원(會計委員)은 사토 아키미치이며 감수 보조위원(監修 補助委員)은 총독부 이사관 에하라 젠쓰이이며 편찬 보조위원(編纂 補助委員)은 총독부 도경시 하마노 쇼타로, 총독부 군서기 미즈바시 후쿠히코이며 사료 수집 보조위원(史料 蒐集 補助委員)은 기타지마 고조이다. 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 총독부(1910-1945)가 편찬한 고종순종실록은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대한국을 불법 통치한 대한시대(1897- ) 대한광복운동기(1906-1945)에 통감부, 총독부, 일본 왕실, 일본군 기사를 중심으로 편수(編修),감수(監修)하여 편찬한 통감부, 총독부일지이므로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조선국 국왕1863-1897,대한제국 황제1897-1919)실록,순종 융희제(1919- )실록을 편찬하여야 한다.
2014-02-05 1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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