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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왕족(王族)과 대한제국 황족(皇族)
 김민수_
 2014-01-28 12:45:21  |   조회: 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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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왕족(王族)과 대한제국 황족(皇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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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국인 조선국(朝鮮國) 왕실 가족은 왕족(王族)이라 하고 황제국인 대한국(大韓國) 황실 가족은 황족(皇族)이라고 한다. 제후국은 부자간 왕위계승인 경우에는 왕세자(王世子),형제간 왕위계승인 경우에는 왕세제라고 칭하며, 경칭은 저하(邸下)이다. 조손간 왕위계승인 경우에는 왕세손(王世孫)이라고 칭하며 경칭(敬稱)은 각하(閣下)이다. 대원군(大院君)은 방계(傍系)로 왕위를 이은 국왕의 친아버지를 이르며 경칭(敬稱)은 합하(閤下)이다. 세자 저하와 세손 각하와 함께 국왕 추존,섭정이 가능한 대원군 합하(閤下)의 처인 대부인(大夫人)은 무품(無品)이다. 부원군(府院君)은 왕후와 세자빈의 아버지를, 대군(大君)은 왕후가 낳은 왕자를, 군(君)은 후궁이 낳은 국왕의 서자를, 공주(公主)는 황후(皇后)나 왕후의 딸을, 옹주(翁主)는 후궁(後宮)이 낳은 딸을, 군주(郡主)는 왕세자의 적녀를, 현주(縣主)는 왕세자의 서녀를 부르는 칭호이다. 황제(黃帝)의 아들 중 황후가 낳은 적장자(嫡長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며 후궁(後宮)들이 낳은 서자에게 친왕(親王) 책봉하였다. 왕대비,국왕,왕비,왕세자,세자빈(世子嬪)에게 붙이는 경칭은 말루하(抹樓下:마노라), 마마(媽媽)이고 대군·군·옹주·공주가 혼인을 하지 않았을 때는 '아기씨(阿只氏)'라는 경칭을 붙이며 성혼(成婚)한 대군·군, 대원군에 대한 경칭은 대감(大監)이며 성혼(成婚)한 공주 또는 옹주에 대한 경칭은 자가(慈駕)이다. 국왕은 상감(上監), 정2품 이상은 대감(大監), 종2품에서 정3품 당상관(堂上官)은 영감(令監)이라는 존칭이 사용되었고 부인의 봉작(封爵) 또한 남편의 품계를 따르도록 규정하였으며 정3품 통정대부·절충장군·명선대부·봉순대부 이상은 당상관(堂上官)이라고 부르면서 우대되었다. 대감(大監)이란 호칭은 문반·무반의 자헌대부·정헌대부(정2품)·숭정대부·숭록대부(종1품)·보국숭록대부·대광보국숭록대부(정1품), 종친(宗親)의 승헌대부·숭헌대부(정2품)·가덕대부·소덕대부(종1품)·홍록대부·현록대부(정1품), 의빈(儀賓)의 통헌대부·봉헌대부(정2품)·숭덕대부·광덕대부(종1품)·성록대부·수록대부(정1품)의 존칭으로 사용되었다.

조선국(朝鮮國) 전기에는 세자(世子) 칭호를, 조선국(朝鮮國) 후기에 대조선국 대군주 폐하(陛下)와 왕태자 전하(殿下)를 사용했으나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이 건국되면서 황제 폐하(陛下)와 황태자 전하(殿下)로 격상되었다. 황태자(皇太子),황태제는 제국(帝國)의 황위 계승의 1순위에 있는 황자(皇子)를 가리키는 칭호이며, 1896년 건양유신 이후 조선국의 왕위 계승의 1순위에 있는 왕자의 경우에는 왕태자(王太子)라 하며, 경칭(敬稱)은 전하(殿下)이다. 황제국은 부자간 황위계승인 경우에는 황태자(皇太子),형제간 황위계승인 경우에는 황태제(皇太弟)라 칭한다. 경칭(敬稱)은 전하(殿下)이다.1897년 10월 대한국(大韓國)을 건국한 1대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1897-1919)는 1900년 황자(皇子) 의친왕, 영친왕에게 친왕(親王) 책봉(冊封)하였다. 황태자 이척(2대 순종 융희제)이 후사없이 붕어하였으므로 대한제국 황위계승 서열 1위인 의친왕이 황태제가 된다. 일본군국주의 총독통치로 황태제 의친왕이 3대 황제 등극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의친왕 아들을 황태자로 옹립하여 의친왕을 3대 황제로 추존하여야 한다. 황태자(皇太子)의 부인은 비궁(妃宮) 또는 황태자비(皇太子妃)라 하며 의친왕비는 김수덕이다. 1901년 9월 14일 영돈녕원사(領敦寧院事) 윤용선(尹容善)이 고조 광무제에게 황제국의 귀비(貴妃), 비(妃), 빈(嬪)은 후궁지관(後宮之官)이라고 하였다. 완친왕과 의친왕의 어머니는 귀비(貴妃) 진봉이 되지 못하였고 귀비(貴妃), 비(妃), 빈(嬪) 진봉한 후궁은 엄씨가 유일하며 미스테리이다.황제국의 천자(天子)인 황제(皇帝),태상황(太上皇),황후가 죽으면 산이 무너진 것 같다고 하여 붕어(崩御),태후(太后)가 죽으면 붕서(崩逝)라고 하였는데 대한국의 황제(皇帝),황후가 죽으면 붕어(崩御),태후(太后)는 붕서(崩逝)라고 하였다. 제후(諸侯)가 죽으면 훙거(薨去), 훙서(薨逝)라고 하였으며 대한제국 황태자, 황태자비,황태제,황태제비,친왕,친왕비의 죽음을 훙거(薨去), 훙서(薨逝)라고 하였고 조선의 국왕,왕후,상왕(上王),대비(大妃),대원군(大院君)이 죽으면 승하(昇遐),훙서(薨逝)라고 하였다. 대한국의 황제,황후,황태자,황태자비,친왕,친왕비 및 조선국의 국왕,왕후,상왕(上王),대비(大妃),대원군(大院君) 외의 대군(大君),군(君),공주,옹주 등 조선국 왕족,대한국 황족과 후궁은 졸서(卒逝), 벼슬을 한 대부(大夫)가 죽으면 졸(卒)이라고 하고 선비(士)가 죽으면 불록(不祿)이라고 하였으며 일반 백성인 서인(庶人)이 죽으면 사(死)라고 하였다.

1701년 10월 2일 좌의정 이세백(李世白)과 우의정 신완(申琓)과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이여(李畬) 등이 숙종의 어명을 받들고 왕명에 의하여 죄인을 대궐 안에서 국문(鞫問)하던 정국(庭鞫)을 궁궐 안의 시위(侍衛)·의장(儀仗)을 관장하는 내병조(內兵曹)에 설치하였다. 순례(順禮)를 두 차례 죄인의 정강이를 때리며 캐묻는 형문(刑問)하고 자백을 받기위해 신체적인 고통을 가하는 고신(拷訊)에 쓰는 매인 신장(訊杖)이 30도(度)에 이르자, 바로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는 공초(供招)하기를, “작년 11월에 큰 나인(內人)이 대궐에서 나와서 희빈 장씨(禧嬪 張氏)의 오빠 장희재(張希載)인 장 대장의 첩을 맞이하여 같이 앉아 축원하기를, ‘희빈(禧嬪)께서 태평(太平)하시고 인현왕후(仁顯王后)인 중궁전(中宮殿)은 승하(昇遐)하소서.’라고 하였으며, 그 뒤에 흰 머리의 늙은 궁인이 또 장 대장의 첩과 같이 와서 무녀의 집에 앉아 무녀(巫女)와 더불어 같이 축원하기를, ‘희빈(禧嬪) 말루하(抹樓下)는 태평(太平)하시고 태평하시며, 중전(中殿) 말루하(抹樓下)는 마땅히 승하(昇遐)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하였다.

1722년 5월 20일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는 공초(供招)하기를, “제가 1720(경종 즉위)년인 경자년의 백성 전체가 복상(服喪)하던 국상(國喪)인 국휼(國恤) 때 성복(成服)하기 전에 수양모(收養母)인 수진궁(壽進宮)의 나인(內人) 김씨(金氏)를 찾아가 만났더니, 이런저런 말을 하던 사이에 김씨가 말하기를, ‘듣건대 대전(大殿) 말루하(抹樓下)께서 발인할 때 출관(出棺)을 위해 빈소(殯所)를 여는 파빈(破殯)하기 전까지 지탱할 수 있겠는가? 이는 사친(私親)인 까닭에 말미암는다.’라고 하였는데, 말루하(抹樓下)는 곧 대전(大殿)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제가 듣고는 몹시 놀라서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는 찾아가지 않았습니다.”하였다.


1730년 3월 12일 영조가 제문(祭文)을 친제(親製)하여 효장세자(孝章世子)의 신위를 봉안한 혼궁(魂宮)에 제사하였다. 도승지 조현명(趙顯命)이 아뢰기를, “무당은 요술(妖術)을 부리는 부류로 비록 도성(都城) 사대부(士大夫)들 집에서 더러 친근히 믿다가 망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대궐 안이 엄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전부터 무어라고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논업(論業)의 공초(供招)를 신(臣)이 삼가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하니, 영조가 이르기를, “경(卿)의 말이 옳다. 비록 사대부들의 집으로 말하더라도 가장(家長)이 어찌 모두 알 수 있겠는가? 여염(閭閻)은 작은데도 오혀려 다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깊은 구중 궁궐에 있으면서 어떻게 그런 세미한 일들을 분명하게 살필 수 있겠는가? 옛 적부터 그런 일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대궐 안에도 또한 신당(神堂)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엄하게 신칙하기 때문에 없어졌다. 논업(論業)이 더러는 말루하(抹樓下)라 일컫고 더러는 ‘공(功)이 있다.’고 일컫어 마치 내가 참여하여 들은 것처럼 했기에 내가 또한 경을 대하기가 부끄럽다. 하지만 어찌 내가 그런 일이 있었겠는가?”하였다.1775(영조 51)년 11월 30일 정후겸(鄭厚謙)의 어미가 일찍이 정조의 아버지인 장헌세자(莊獻世子)에게 이르기를, ‘세자(世子) 말루하(抹樓下)께서 만일 우리 집과 외가(外家)가 아니라면 어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언의(言議)를 취사(取捨)할 때에는 반드시 양가(兩家)를 위주로 한 연후에야 무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아이 정후겸은 세자 저하(邸下)에게는 믿음을 받기도 하고 의심을 받기도 하여 우리 아이가 늘 통절히 말하고 싶었으나 잠시 또 참았다고 합니다.’ 하였다.
2014-01-28 12: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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