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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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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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 이용석 본부장이 분신 당시 메고 있던 가방에서 나온 물품들지난 26일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본부장이 "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분신했다
ⓒ 사진/민주노총^^^

최근 들어서 노동조건 관련으로 잇달아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발생한 것은 아마도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긴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었다. 직접적으로 노동조건의 개선을 외치지는 않았지만, 실직으로 경제적 파탄으로 실의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조용히 사라져 갔었다.

‘얼마나 괴로우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라고 혼자서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 그들의 삶의 조건이 얼마나 열악했을까. ‘죽을 용기로 무엇을 못하랴.’는 말이 있듯이 생각 해 볼수록, 아무리 삶의 조건이 가혹하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노동탄압’등을 외치며 목숨을 끊는 일들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특히 26일 서울 종묘공원에서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신자살 기도는 우리나라가 놓인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오죽했으면 죽기까지 했겠느냐’ 라는 것과 ‘마음으로야 그렇게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두 명 뿐이겠느냐.’ 라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거센 물결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고 있는 중이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일부 기업의 행복한 노동자들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란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과도한 임금요구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단지 그들이 노동자란 이유만으로 그들을 드러나게 비난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반면에 한때 그들의 동료였을 수도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그러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의 증가로 노조원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데 위협을 느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들의 조합원에 대한 배타적 보호에만 관심을 가지는 듯이 보인다.

26일의 분신에 대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를 비난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을 변호하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하여 무엇을 해왔는가. 그들은 단지 비난의 화살은 대기업의 비리와 정치자금문제로 돌리는 것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문제에 대한 정면 돌파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양대 노총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압력에 대응하는, 우리사회의 대응논리가 낳은 총체적 결과물이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사회는 그나마 유지되어 올 수 있었다. 그 동안 우리사회는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비용부담의 감소라는 신자유주의적 압력에 대해, 광범위한 해고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민노동자(외국인 노동자)의 증가라는 방안으로 대응해 왔다.

그리고도 채산성을 맞추지 못하는 기술력이나 경영능력이 뒤떨어지는 기업들은, 썰물처럼 한국을 빠져나가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싼 노동력을 살 수 있는 나라를 찾아나가고 있다.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우리사회는 경쟁국들에 비해 기술력 면에서 떨어지고, 인건비를 포함한 원가경쟁력 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우리사회는 비정규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비율을 높이는 방편으로 신자유주의적 압박에 대응해 왔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하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그 문제에 심도 있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이번의 분신사건을 가져온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합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조직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다.

남미의 사례에서 보듯이 실업자 운동, 비정규직 노동자운동, 무토지 소유자운동은 그들이 처한 상황의 어려움만큼이나 사회를 향한 절규의 목소리도 높은 것이 상례이다. 사람답게 살 권리를 찾아서 세상을 향해 외치는 그들의 외침은, 그들이 겪고 있는 삶의 질곡만큼이나 더욱 강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조속한 시일 내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위향상을 위한 큰 변화를 일어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머지않은 장래에 지금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을 돕는 듯한 양대 노총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는 정면으로 부딪치게 될 것이다.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일자리 나누기에서 찾아야 한다. 물론 근로자에게 보다 나은 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충분한 기업이 엄살을 떨며 근로자의 몫을 나누기를 기피하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그 비용을 더 많은 수의 근로자들이 나누어 가지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편일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일한 동료였었다. 어느 순간 두 부류의 근로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우리사회에서 두 부류의 노동자 사이에, 같은 노동에 대한 임금의 차이가 그토록 큰 이유는 무엇일까. 왜 양대 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문제에 대한 그동안 그토록 무관심하게 대해 왔었는가. 단순히 수사적인 언급이외에 실질적인 노력이 얼마나 있어왔던가.

그들의 노동이기주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외국에서 온 이주 노동자도 같은 노동을 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몫을 줄여서 우리의 배를 채우지 않았는가.

그들은 단지 우리사회보다 경제발전 단계가 낮은 국가에 태어났을 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단지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불평등한 임금을 받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국 노동자 사이에 기득권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다. 누구에게나 어렵다. 어려운 시기에 방만하게 사회를 운영해온 부도덕한 기업가.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에 무관심했던 언론. 파렴치한 정치인에겐 철퇴를 내려야 한다. 최근에 죽음을 맞이한 여러 사람들에게 가장 깊이 머리를 조아려야 할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26일 종묘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한 비정규 노동자에게 사죄를 해야 할 사람들 중에는 바로 양대 노총. 정규직 노동자들과 우리 모든 국민들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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