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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할머니가 정착하고 그 이듬해부터 그 소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피어나고 트리에는 10여 벌의 옷이 주렁주렁 열렸으며, 못사는 10여 가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쌀 20kg짜리 포대가 배달되었다. 익명으로 하는 선행이기에 고마운 이가 누군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 옷도 헤지고 낡은 헌 옷이 아니라 금방 옷가게에서 사온 어린이 옷이었다.
그 뒤 해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한 해도 빠짐없이 트리에 옷이 열렸고 그 옷을 입은 어린이들은 하얀 수염에 빨간 옷을 입은 산타할아버지가 오셨다 가셨다며 기뻐했다.
올해로 18년 째인데 이장을 비롯한 아파트 주민들은 어느 분이 이렇게 얼굴 없는 천사로 선행을 베푸는지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했다. 그러나 대충은 누군지 짐작하고 있었다.
“만약 그 고마운 분을 찾게 되면 그 선행이 알려지고 그 뒤부터는 어쩌면 그런 일을 안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냥 넘어가는 일이 좋겠습니다.”
부녀회장의 걱정을 음미해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며 주민 모두는 뜻을 같이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그 고마운 이의 선행에 대해서 마음에 담아 두기로 하고 묵계를 지키기로 했다.
G아파트는 10층에 190세대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아주 영세한 아파트였다. 관리비도 3~4개월 밀린 집이 절반이나 돼 아파트 살림살이도 말이 아니었다.
“옷과 쌀을 적선하는 분이 같은 동일인 일꺼야.”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쌀 20kg이면 꽤 무거운 데 일일히 운반할 수도 없고, 아마 익명으로 쌀집에다 부탁 했겠지.”
아리송한 추측만 만발했다.
“서울에서 이 곳에 정착한 그 곱살한 할머니인지도 몰라?”
서울 S은행지점장으로 있던 남편이 세상을 등지자 고향인 G군 선산에 유택을 모셨는데, 할머니는 남편을 혼자 두고 가기가 서운하고, 보고 싶을 때 만나야 한다며 그 길로 눌러 앉았다.
그 뒤 서울에 사는 자식들은 손자 손녀를 앞세우고 일주일이 머다 하고 어머니를 뵈러 왔다. 승용차에 맛있는 것을 잔뜩 싸가지고 와서 극진히 모셨다. 관리사무소에 들러 어머니를 잘 보살펴 달라며, 아파트기금으로 큰돈을 기탁하기도 했다.
지점장 부부는 남다른 부부애로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소문이 자자한 금실 좋은 부부였다. 할머니는 남편이 그립고 보고 싶을 때는 수시로 유택을 찾아뵙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할머니에게는 두 남매가 있었다. 아들은 G전자회사 연구원이었고, 딸은 서울의 내로라하는 J은행원이었다.
할머니는 매년 아파트 동네잔치가 있는 5월 8일 어버이 날이면 성의로 부조금도 냈다.
그렇게 정정하던 할머니가 보슬비가 내리는 어느 날 노환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향년 87세였다.
드디어 그 얼굴 없는 천사는 주민들의 짐작대로 그 할머니였다. 남편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분으로 그의 유지를 받들어 할머니는 뒤를 이어 선행을 베푼 것이다. 아버지께서 평소 이웃을 돕고 나눔을 실천하는 분이었다고 자식들이 전했다.
장례식장에서 쌀가게 주인이 조문을 와서 흐느꼈다. 조문을 마치고 쌀가게 주인은 이장한테로 다가오더니 할머니의 적선을 얘기했다. 익명을 전제로 매달 쌀 배급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옷가게 주인도 문상을 마치고 쌀가게 주인과 똑같은 말을 했다.
“트리에 거는 옷만큼은 할머니께서 직접 오셔서 고르셨어요. 인자하신 할머니였는데......”
옷가게 주인은 덧붙였다.
그날 주민들은 남편이 잠들어 있는 선산 장지까지 가서 할머니의 명복을 빌며 오열했다.
장지에서 돌아오면서 주민들은 아파트 뒤뜨락의 소나무가 할머니의 살아있는 온정의 크리스마스트리라며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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