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개항 132주년 기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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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개항 132주년 기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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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위 항만 도시, 동북아시대 해양수도로써 힘찬 도약의 계기

부산시는 2월 26일(화) 14:00 부산 연안여객 터미널 역 옆 수미르공원에서 강무현 해양수산부장관, 허남식 부산시장, 시의회의장, 상공회의소 회장, BPA사장, 해양수산관련 인사, 부산항을 사랑하는 시민모임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부산항 개항 132주년을 맞이하는 기원제를 올렸다.

이날 행사를 통해‘급변하는 국제 해양물류 환경에 더욱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시정과 항정(港政)의 해양종합행정체계를 보다 더 잘 가다듬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자 하였으며, 개항 132년을 맞는 우리 부산항의 저력과 세계 5위의 항만을 가진 도시로서 부산항 사랑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다면 반드시 동북아시대의 해양수도로 힘차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그 자신감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산항 개항의 역사적 의미

레포샵 공식 블로그 인용 자료에 의하면 일본과 서양세력의 침투를 막기 위해 쇄국정책을 편 흥선 대흥군은 당시 일본의 조선지배에 있어 가시와도 같은 껄끄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게 되자, 메이지 유신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갖춘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우리 정부를 위협해 왔다. 이때, 일본은 먹을 물을 구하기 위해 초지진에 접근했던 일본 배가 조선군의 포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역선전하면서, 조선으로부터 강화도 조약을 이끌어내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반대론이 우세했으나 박규수 등 개화파의 주장에 따라 일본과 강화도 조약(1876)을 맺고 부산 등 3 항구를 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등 여러 나라와 조약을 맺음으로써 완전히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개항후, 부산에서는 동래부사가 관장하던 외교 통상 사무를 서울에서 파견된 변찰관과 협의 처리해 나갔으며, 부산해관도 설치하게 되었다.

1890년에는 독립관서로서 감리서가 성립되어 사무를 전담하였으며, 일본은 근대식 관리관청을 신설하는 등 거류지를 근대화하기 시작했고, 1876년에 우편국을 조선에 처음으로 개설하였다.

이때, 여객선과 우편선을 겸한 배가 월1회 부산과 일본을 운행했으며, 그들의 거류지를 발판으로 점점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갔다. 1878년 6월에는 일본제일 국립은행 부산지점이 동광동에 개설되어 일본의 통화를 조선에 유통시키고, 조선의 금을 사들이기 시작했으며, 부산 일본 상업회의소를 설립하여 통상무역의 발판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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