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인모 선생은 한국전쟁 당시 북측 종군기자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34년 간 비전향 장기수로 복역, 93년 가족들의 품으로 북송되었다.
북송될 당시도 오랜 옥고로 인해 걸음조차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였으나 생애에 대한 기억만큼은 선명해서 북송된 이후에도 남측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의 사진을 가까이 두고 그리워하셨다고 한다.
분단의 현대사로 인한 아픔이 비단 북송된 리인모 선생에게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사상과 신념의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고향에 가지 못하고 감시 하에 살고 있는 장기수 출신들이 있고
회담 때 마다 언론과 테이블에서 제네바 포로협정관련 이행 여부도 논쟁이다.
분단으로 인한 갖은 사별과 이별도 역시 도처에서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청춘을 고문과 투옥으로 보낸 리인모 선생의 인생이 단지 개인의 사적인 경험으로 읽히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는 만큼 분단으로 인한 아픔도 늘어나고 분단으로 인해 미래세대가 부담해야할 몫도 계속 증대되고 있다.
한을 치유하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하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
사상과 정견을 넘어 고인의 명복을 빌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결심을 다지는 것은 그런 이유다.
더 늦기 전에 장기수 선생님들과 분단시기 행방불명자, 이산가족 모두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온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7년 6월 18일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황선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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