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의 산업혁명 (1)
스크롤 이동 상태바
[특집] 한국의 산업혁명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장. 한국형 전 산업의 수출화 정책

 
   
  ^^^▲ 희망을 갖고 독립운동을 했다. 그러나 막상 해방이 되고 나니 잘 산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 www.ceoi.org^^^
 
 

한국형 경제 건설 모델은 우리나라의 근대 산업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 우리 선배들의 소원은 오직 광복(光復). 이분들은 독립만 되면 「우리 나라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살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독립운동을 했다. 그러나 막상 해방이 되고 보니 잘 산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잘 살기 위해서는 산업국가가 되어야 하는데, 정치적 독립만으로는 산업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온 국민이 장기간에 걸쳐 땀 흘려가며 산업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힘들고도 어려운 또 하나의 독립운동 즉 경제자립과 번영을 위한 「산업혁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고도 산업국가 및 산업혁명의 수량적 정의

「고도 산업국가」나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개념적인 설명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독일의 경제학자 호프만(Hoffmann) 박사는 1935년 산업국가에 대해 수량적으로 등급을 메겼다. 각 국의 「소비재 공업의 부가가치를 투자재 공업의 부가가치로 나눈 숫자」를 호프만 계수(係數)라고 하고, 이 계수가 6.5~3.5일 때 「제1단계 공업국」이라고 칭했다. 공업이 거의 발달 안된 나라로서 섬유, 음식공업 정도나 존재하는 국가이다.

「제2단계 공업국」은 호프만 계수가 3.5~1.5로 공업이 좀 발달한 나라이다. 1.5~0.5일 때는 「제3단계 공업국」으로서 기계 및 금속공업 등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나라이고, 0.5 이하일 때는 「제4단계 공업국」 즉 선진공업국 또는 고도 산업국가라고 구분했다. 그리고 호프만 박사는 - 제1단계 공업국(호프만 계수 3.5 이상)으로부터 제4단계 공업국(호프만 계수 0.5 이하)으로 발전하는 것 - 즉, 미 개발국이 선진공업국이 되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변화라고 보고 이것을 바로 「산업혁명」이라고 했다.

구미에서 일어난 산업혁명

호프만 계수의 정의가 말해주듯 고도 산업국가란 기계, 금속, 화학공업 등 중화학공업이 발달한 나라를 칭한다.

호프만 계수가 0.5 이하인 나라를 선진산업 국가라고 한다면 중화학공업의 생산이 경공업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나라라는 뜻이다.

구미에서도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수공업적 공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도 가내공업이었다. 그러던 것이 공장이 건설되고 각종 기계가 발명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생산비가 싸져서 큰 이익이 발생했다. 이처럼 기계, 금속의 발달은 공업생산력을 높이고 나아가서는 경제발전을 이룩해 나라와 사회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을 가져왔다. 이것이 구미식 산업혁명의 기본 골격이다. 이때(18세기 중엽)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國富論)에서 상품이고 무역이고 모두 자유경쟁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산업혁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자유경쟁 하에서는 품질과 가격이 기업의 사활을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발명이 계속 이어진다. 공장에서는 생산원가를 인하하기 위해 최신공정과 새로운 기계시설을 채택하고 생산규모를 계속 키워 나갔다. 이런 상태가 장기간 진행되고 난 후에는, 미처 이 대열에 끼어 들지 못했던 나라는 다시는 여기에 참여할 수가 없다. 계속 미개발국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된다는 뜻인데, 선진국과 후진국(다른 표현으로는 문명국과 야만국)으로 영원히 구분되는 비극이 바로 이점에 있다.

결론적으로 「산업혁명은 미개공업국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후진국에 대한 경제개발에는 뾰족한 방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경제학계의 대표적 견해였다. 그러던 중 구미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200년이 지난 1960년 초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형 산업혁명

한국의 산업혁명은 구미에서 발생한 산업혁명과는 그 유형을 달리한다.

우리나라의 실정을 호프만 계수로 살펴보기로 한다.

(註 : 1935년 이후의 급격한 공업발달로 인해 호프만 박사가 정의를 내린 소비재 공업이나 투자재 공업이라는 개념보다는, 소비재 공업은 경공업으로 투자재 공업은 중화학공업으로 대체하는 것이 그 성격이 명확해졌다. 그래서 호프만 계수를 「경공업의 부가가치를 중화학공업의 부가가치로 나눈 숫자」로 대용하기로 한다).

1) 1960 ~ 1970 ..... 수출제일주의와 공업입국 = EOI

1960년의 우리나라 호프만 계수는 4.26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 우리 나라는「제1단계 공업국가」로서 공업이 거의 발달되지 않은 나라였다.

朴 대통령은 1962년 경제개발 제1차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이 당시에는 「산업혁명」을 일으키겠다든지 선진산업국가가 돼 보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입장이었다. 그저 「기아선상에 헤매는 절망적인 국민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겠다」는 것이고 「미국의 원조 없이 나라살림을 꾸려가겠다」는 소박한 소원이 있을 뿐이었다.

공업분야는 수입대체 산업에 치중했다. 그러나 1963~64년, 외화고갈상태에 이르자 朴 대통령은 국가 최고전략을 「수출제일주의」로 정했다. 그리고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수출을 늘리는 길은 수출공업을 발전시키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 공업입국(工業立國) 정책도 동시에 채택했다. 「수출제일주의」와「공업입국」이 1960년대의 최고 국정 지표였던 것이다.

이 전략은 큰 효과를 거두어 1964년에 1억 2천만 달러의 수출목표를 달성하고 그 후 매해 40%의 수출 신장율을 올려나갔다. 그 결과 1964년에 호프만 계수는 2.46이 되고 1965년에는 2.18로 약진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공업이 급속히 발달해 나가자 미국의 미래학자 로스토우 박사는 우리나라 경제는 「이륙 (Take Off)」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이때 정부나 국민은 큰 자신감을 얻게 됐다. 1966년에는 이 계수가 2.00을 돌파하여 1.92가 됐고, 1970년에는 호프만 계수가 1.39로서 1.5 돌파. 우리나라는「제3단계 공업국」에 진입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제가 급속적으로 발전해 나가자 외국인 학자들은 한국경제 발전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모델을 EOI (Export Oriented Industrialization)라고 했다. EOI란 「수출제일주의」와 「공업입국」정책을 영어로 표현한 말이다.

2) 중화학공업화 선언, 국민의 과학화 선언 및 전 산업의 수출화

수출이 늘자 원료수입과 시설재의 수입이 급격히 증가해서, 우리나라 경제는 일본 등 공업선진국의 예속 경제 하에 들어가게 됐다. 여기서 탈피, 국제수지를 건실화하는 동시에 공업구조상 독립성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원료 원자재의 자급화와 기계시설 및 플랜트의 국산화를 할 수 밖에 없다.

 

 
   
  ^^^▲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씨중화학공업화 선언, 국민의 과학화 선언 및 전 산업의 수출화를 다짐하며...^^^  
 

바로 기계, 금속공업, 화학공업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과학기술의 자립이다. 그래서 朴 대통령은 1973년 1월 「중화학공업화 정책」과 「국민의 과학화」를 선언했다. 그리고 朴 대통령은 「전 산업의 수출화」를 강조했다.

朴 대통령은 선진 산업국가로서 산업 구조를 갖추기 위해 중화학공업, 과학기술 등 모든 산업분야를 체계적으로, 단계적으로 건설하되 모든 단계와 제품은 품질과 가격 면에서 국제경쟁력을 갖도록 하자는 뜻이었다. 이것이 1970년대의 경제건설의 이념이었다.

이러한 산업구조 건설 방식을「 피라미드형 건설」이라고 칭했다<표 1-5 참조>. 영어로는 The Construction of Pyramid Type Export Oriented Industries라고 한다. 「 수출제일주의」,「 공업입국」,「 중화학 공업화 선언」,「 국민의 과학화 선언」,「 전 산업의 수출화」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우리 나라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 즉 3자 일치해서 경제 건설에 총력을 경주했다.

그 결과 1977년에는 호프만 계수가 0.96으로 1.00을 돌파, 중화학공업의 부가가치가 경공업 부가가치보다 높아져서 중화학공업 국가가 됐고, 1988년에는 0.50를 돌파, 제4단계인 고도 산업국가가 됐다. 이것이 바로 Pyramid type CEOI 즉, 한국형 산업혁명이었던 것이다. 제1단계의 미개국이었던 우리나라가 고도 산업국가가 되는데 불과 30년 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기적과 같은 사건이고 세계적인 기록이다.

(여기에 수록된 내용은 이미 본인의 논문으로 발표된 것들입니다. 따라서 중복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나 문맥상 삭제할 수가 없어 그대로 개재하오니 양해 바랍니다)

[계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7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뉴타소식 2006-05-02 16:20:33
오원철박사님의 뉴스타운 시민기자 활동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이런 좋은 경제지침서 많이 읽고보고 배워야 하는데...

대한국민 2006-05-02 20:20:38
역시 한강의 기적에는 박정희대통령이 있었다. 다시 한 번 한강의 기적을 또 새마을운동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인간 본성을 조금이라도 사악한 무리들로부터 구해 낼 수 있다.

교훈 2006-05-02 22:15:41
박정희 대통령과 노00 대통령의 비교

** 닮은 점:

박: 남자, 대통령
노: 남자, 대통령

** 틀린 점:

* 국가 경영철학:

박: 어두운 과거일랑 잊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뛰자!
노: 더낳은 미래일랑 잊어버리고... 과거에 대가리 쳐박자!


* 리더쉽 스타일:

박: 나를 따르라!... 책임은 내가 지마!... 입이 무거운 보스 스타일.
노: 늬가 함해봐!... 책임도 늬가 지고!... 입이 가벼운 양아치 스타일.


* 연설:

박: 말투는 어눌하나... 내용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연설
노: 말투는 청산유수... 내용은 알갱이 없는 순구라빨 내지는 사기.


* 경제:

박: 경제기적... 경제 ALL-인... 보리고개 굶어죽다가... 아시아의 용으로...
노: 경제파산... 경제 ALL-꽝... 아시아의 용에서... 굶어죽을 신세로...


* 국가발전 추진력:

박: 영삼이 대중이가 깽판쳐도... 2년만에 경부고속도로 건설하다!
노: 땡중 하나가 깽판치면... 2년이 지나도 터널하나 못뚫는다!


* 실업자:

박: 앵간한 학교 나오면... 가고싶은 직장 골라가는 행복한 걱정...초고속 승진
노: 최고 학교를 나와도... 오랄데 하나없는 죽고싶은 심정... 최단기 명퇴 신세


* 인사원칙:

박: 나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은... 무슨수를 써서라도 구해서 쓴다... 능력이 최고!
노: 나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은... 무슨수를 써서라도 짤르고 본다... 코드면 장땡!


* 인사행태:

박: 아무리 수족같은 참모라도 잘못이 있으면... 가차없이 짜른다.
노: 수족같은 참모라면 개판치고 깜방가도... 무조건 끼고돈다.


* 참모진:

박: 그 분야에 정통하고, 똑똑하고, 사명감 넘치는 인물들이... 널려있다 (초일류 교수급)
노: 그 분야에 무지하고, 무식하고, 쓰레기같은 인물들만... 꼬여있다. (삼류 잡탕 어용교수들)


* 외국의 평가:

박: 'Re-spect!'... 우와~ 존경!
노: 'Re-speak?'... 엥? 머라구?


* 안보관:

박: 빨갱이는 깜빵으로... 때려잡자 간첩!
노: 빨갱이는 국회로, 청와대로.... 훈장주자 간첩!


* 대북관계 원칙:

박: 힘으로...
노: 뇌물로...


* 국민들의 삶의 질:

박: 삶의 질이 높아진 사람 95%... 박통때메 개피 본 사람 5%
노: 삶의 질이 개판된 사람 95%... 노통때메 해피 한 사람 5%


* 교육:

박: 전국 일등은 대충... 찢어지게 가난한 홀어머니 모시는 똑똑한 녀석!
노: 전국 일등이 누구인지도 모름... 아마도 500만원 짜리 과외 받는 녀석!


* 유신헌법:

박: 내가 만들었다... 침을 뱉어라...
노: 내가 공부하께... 침을 흘리며...


* 눈물의 의미:

박: 서독광부의 고생을 몸소 보시고... 가난한 나라를 비통해하며...
노: 운동권 동지들의 국회입성을 반기며... 기분이 째져서 샥스핀을 드시며...


* 애창곡:

박: (팔을 걷어부치고... 으?X으?X~) 새아침이 밝았네...
노: (눈물을 쥐어짜며... 으?X으?X~) 산자여 나를 따르라...


* 우리에게 준 선물:

박: 우리도 할수있다는 도전의식과..... 희망
노: 아무것도 할수없다는 패배의식과... 절망

유석춘 교수글 2006-05-02 22:19:49
유석춘 "박정희가 양식채운 밥통, 노대통령이 태웠다"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22일 정치토론사이트에 "밥통으로 본 한국현대사"라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 교수.

역대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밥통에 비유해 풀어낸 것이다. 유 교수는 글 서두에 "최근 오랜만에 참석한 지인 모임에서 들은 얘기다. 우스개 소리이긴 해도 촌철살인 정곡을 찌르는 내용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어 이 자리를 빌어 독자들께 전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유 교수는 이 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밥통에 국민들을 배불리 먹일 양식을 마련한" 대통령으로 평가한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전기 밥솥 코드를 잘못 꽂아 "밥솥을 태워먹은" 대통령으로 묘사했다.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전 대통령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뿐, 나머지 대통령들은 모두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원조를 통해 근근이 밥통 하나를 마련한 대통령으로 묘사된다.

"우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이승만 대통령이 독립투쟁 끝에 권력을 잡고 보니 국민들을 먹여 살릴 밥통이 없더란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가 남기고 간 황무지에 전쟁까지 치렀으니 무언들 남아 있었겠는가. 그러니 국민들 먹여 살릴 밥통이 없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그래서 궁리 끝에 이 대통령은 미국의 원조를 얻어 국민들 밥 해 줄 밥통을 하나 근근이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 지은 과오가 많아 제대로 밥 한 번 해 보지도 못하고 표표히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단다. "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마련한 밥통에 국민들을 배불리 먹일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들을 설득했고, 이후 부하 하나가 쏜 총에 "애석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평가했다.

"다음 박정희 대통령 부분이다. 박정희 장군이 군사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니 밥통은 있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국민들 밥해 먹일 양식이 없더란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국민을 설득해 밥통에 밥을 지어 먹기 위해선 허리띠를 졸라 매고 경제개발계획도 짜고 또 새마을 운동도 해서 밥해 먹을 양식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근 20년의 노력 끝에 이제는 국민들 배불리 먹일 양식이 어느 정도 마련됐다고 흐뭇해 할 즈음, 애석하게도 부하 하나가 총을 쏴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박 대통령이 어렵게 마련한 양식을 부하들과 배불리 나눠 먹었고, 국민들 역시 경제적으로 풍요한 시기를 누린 것으로 묘사됐다.

"그리곤 전두환 대통령이 등장한다. 전두환 대통령이 우여곡절 끝에 권력을 잡고 보니 세상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란다. 미제 쇠 밥통이 큼지막한 게 있을뿐더러 거기에 더해 또 양식까지 곳간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전 대통령은 부하들 모두 불러다 잔치를 하며 밥통에 밥을 가득 지어 모두들 배불리 나눠 먹었다고 한다. 국민들 가운데도 이 때 밥 못 얻어먹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밥통의 누룽지를 긁으며 혼자 식사를 할 정도로 어려운 경제사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젠 노태우 대통령 차례다. 노태우 대통령이 직선제 선거를 통해 양 김씨의 추격을 따돌리며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라 살림을 챙겨보니 세상에 밥통에 밥은 전혀 없고 대신 누룽지만 동그라니 남아 있더란다. 이를 보고 당황한 노 대통령이 황급히 곳간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곳간엔 잔치하느라 아무런 양식도 남아 있지 않더란다. 낙심 끝에 노 대통령은 별 수 없이 돌아 앉아 밥통의 누룽지를 박박 긁으며 혼자 식사를 해결했다고 한다. 누룽지만 있었기 때문에 부하들에게 나눠 줄 여지도 없었다고 한다. "

김영삼 대통령은 우선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밥통을 외국에 팔아 살림을 해결하는 고육지책을 썼다고 평가했다. IMF 외환위기를 비유한 것이다.

"다음은 김영삼 대통령 경우다. 김영삼 대통령이 "문민정부"라는 화려한 구호를 내세우며 대통령이 돼 나라 경제를 확인해 보니 곳간에 양식이 없는 건 물론이고 밥통에 누룽지조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더란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민주주의 한다고 떠벌이기는 했는데 막상 국민들 먹여 살릴 방법이 묘연하더란 말이다. 그래서 이리 저리 생각을 굴리다 마침내 묘책을 찾았다고 한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건 우선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선 밥통이라도 외국에 팔아 살림을 해결해야 한다는 고육지책이었단다. "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을 먹일 밥통마저 없어지자 카드빚을 내어 현대식 전기밥통을 마련했다고 꼬집었다. DJ정권의 카드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물론 이젠 김대중 대통령 차례다. 오랜 역경을

영웅 박정희 사랑 2006-05-02 22:30:21
난 박정희의 나라사랑을 배우련다!

박정희!

그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듣고 배우고 알고 있던 이미지는 5.16 쿠데타, 새마을, 수출진흥, 일본 장교, 유신독재자.

나는 학창시절에 박정희를 비판한 사람이었다. 유신도, 장발단속도, 교련도, 긴급조치도 모두 싫었다. 엄청.

그런데 이젠 나는 공개적으로 박정희를 사랑할련다.
그의 애국심과 영웅적인 죽음, 청렴성, 조국근대화에 매진한 그를 존경할련다.

첫사랑에 실연당하고, 남로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음악 미술에도 소질인 있었던 로맨티스트 박정희가, 말로만 애국과 민족을 외쳐대는 포퓰리스트 정치꾼보다 몇 천배 몇 만배 나의 가슴에 뜨겁게 다가온다. 국민소득 82불이었고, 보리고개로 상징되던 조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오게한 그를 그리워 할련다.

경부고속도로, 독일 광부 간호사 파견, 포항제철, 기업체 야간학교, 공돌이 공순이, 새마을, 향토예비군, 월남파병, 현대조선, 중화학공업육성,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김학렬, 남덕우, 오원철!

피맺힌 한으로,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뭉쳤던 6,70년대의 나의 아버지 아재 형님 누나.

10. 26 총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궁정동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 영웅적인 행동..."난 괜찮아"

싸구려 손목시계, 낡은 혁대를 한 대통령.
수많은 독재자나 지도자들이 부패로 몰락하고 혐의를 받고 있는데도 부패가 없는그 청렴성. 막걸리를 좋아했던 빈농의 아들. 그때 아껴가면서 먹었다는 그 시바스리갈은 이젠 평범한 소시민도 마시는 상황이 됐다.

박정희!
그는 빈곤한 약소 국가 대한민국을 하면된다는 신념을 일깨워준 진정한 지도자라는 것을 난 기억할련다.

그리고 그의 애국심과 섬세함과 함께, 역사와 영웅들의 철학에 대해 탁월한 이해력을 가졌던 박정희를 사랑할련다.

난 지금 박정희를 부관참시하려는 권력과 사이비 진보세력의 행태를 경멸한다.
자유와 인권이 존재하지 않고 수백만명이 굶어 죽은 부자세습 북한정권에 대해 내재적 접근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말 한마디 못하는 것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박정희에 대해서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혹독하게 반인권과 독재를 비판한 그들이었기에 그들의 위선에 할말을 잊는다.

박정희 대통령!
그는 과(過)보다 공(功)이 훨씬 많은 진정한 애국자였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