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 민주당(사민당, SPD), 녹색당, 자유민주당(자민당, FDP)이 24일(현지시간) 연립 정권의 수립에 합의, 오는 12월 초순에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Olaf Scholz)’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신임 총리에 취임할 전망이다.
이로써 16년 동안에 걸친 독일 ‘중도 우파’ 주도 정부는 ‘중도 좌파’ 정부로 바뀌게 됐다. 이른바 ‘신호등 연정’이 출발하게 된 것이다. 신호등 연정이란 각 당의 상징 색을 토대로 만들어진 말로 사민당은 적색, 녹색당은 녹색, 자민당은 황색이 합쳐진 연정이라는 뜻이다.
AP, FT 등 복수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독일 연립정부(연정)는 숄츠를 메르켈 후임으로 정했다. 지난 9월 26일 치러진 총선에서 사민당이 승리했지만 녹색당, 자유민주당(FDP)과 연정 돌입해 이날 숄츠를 차지 총리로 선출하는데 최종 합의했다.
이번 합의문에는 격차 시정, 기후변화 대응으로 깊이 있는 정책을 담아, 좌파색이 강해진다. 앙겔라 메르켈 시대에 밀월이라던 대중 외교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77쪽의 합의문서에 담긴 정책 가운데 올라프 숄츠가 기자회견에서 가장 먼저 꼽은 것이 최저임금 시급 12유로(약 1만 6,076 원) 인상이었다. 현재의 9유로(약 1만 2,057 원)대에서 대폭 인상, 혜택은 1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9월 연방의회 선거에서도 공약의 핵심으로 꼽아온 정책이다.
중도우파가 주도한 메르켈 정권의 16년간 독일 경제는 확실히 성장했지만 동시에 격차도 벌어졌다. 성장의 혜택이 시간을 들여 말단에 퍼진다는 이른바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 부전은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에 의한 강제적 임금 인상은 고용을 국외로 내팽개칠 뿐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중도 좌파의 사민당 주도의 신정권은 과감한 실험을 단행하기로 했다.
기후변화 대책에서도 야심 찬 목표가 줄을 선다. 늦어도 204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실질 제로(NetZero)로 했으며, 지금까지 2038년까지로 하고 있던 석탄 화력의 폐지를 2030년으로 앞당기는 것을 목표로 했다. 2030년의 전력에 차지하는 재생 에너지 비율의 목표는 지금까지의 65%에서 80%로 한꺼번에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서 국토의 2%를 풍력 발전을 위해서 이용하며, 전기자동차는 2030년까지 최소 1500만대 보급할 계획이다. 그는 회견에서 진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온실가스 배출의 실질 제로를 향해, 독일 경제의 구조 전환을 서두른다는 생각이다.
메르켈 정권은 기후 변화 대책에 소극적이고, 그것이 독일의 자동차 산업의 환경 대응의 지연으로 연결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대책이 불가피하다면 선제적으로 대응해 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고, 환경 분야의 주도권을 노리겠다는 발상으로 전환했다.
외교도 변할 것 같다. 숄츠 신임 총리는 24일의 회견에서 “프랑스와의 우호, 미국과의 파트너십”이 신정권의 외교의 기반이 된다고 말했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는 경제대국으로서 강하게 자율적인 유럽연합(EU)에 공헌한다는 입장이며, 그는 미국과의 협력이 신정권에 있어서 중심적인 의미를 가진다고도 강조했다.
사민당은 전통적으로 유럽 통합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숄츠 자신도 재무장관으로서 7500억 유로(약 1,004조 7,600억 원)의 유럽 부흥 기금의 설립에 공헌한 친(親)유럽파이다.
지난 9월에는 선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방문해 통합 추진파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 24일의 회견에서도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주변에서 말을 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면서 유럽 통합에 적극적으로 관련하겠다는 자세를 나타냈다.
대중 외교에서는 합의문에 특히 무슬림이라는 소수민족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의 인권 침해와 홍콩에서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s)의 소홀 문제를 명기했다.
중국과 러시아 인권문제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녹색당의 베어보크(Baerbock) 공동당수의 외무장관 취임이 유력하고, 메르켈 시대의 경제 최우선 노선이 어느 정도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에의 관여나 일본 등과의 관계 강화도 포함시켰다.
이번 신호등 연정의 특색은 환경 정책은 탈석탄을 앞당기며, 2030년 전기자동차(EV)는 1500만대 목표 등 녹색당의 주장이 반영된 반면 사민당과 녹색당이 공약을 한 ‘아우토반 속도제한 도입’ 등의 규제나 ‘의무화’가 채택되지 않은 것은 자민당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과 관련해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정리한 유럽연합(EU)와 중국의 포괄적 투자협정(CAI, Comprehensive Agreement on Investment)의 각료 이사회의 승인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 천연가스 부족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이송할 파이프라인 ‘노르드스트림2’에는 녹색당은 분명한 목소리로 반대 입장인 상황에서 합의문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어 차기 정부의 대응의 불투명하다.
이번 신호등 여정 출범은 과거 슈뢰더 정권의 탄생과 매우 흡사하다. 영국의 블레어 정권의 “제3의 길” 등 영국과 유럽에서 중도 좌파가 번성하는 가운데, 녹색당과 붉은 색의 사민당과의 연정으로 ‘새로운 중도’를 내걸었던 슈뢰더 사민당이 COP3(도쿄 의정서 체결) 후에 정권을 탈취, 재생가능에너지법 제정에 의해 탈원자력 발전의 방향을 크게 바꿨었다.
또 이번 신호등 연정은 연립 협정에서 인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표방을 했지만, 지난 2002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독일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되자, 독일기업의 경제적 이익을 중시,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대폭 강화, 제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환경 기술의 중국으로의 이전이나 환경관리에서의 협력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COP26(2021년 11월 13일까지 개최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제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직후의 새로운 신호등 정권도 경제에서는 환경영역에서 중국과 협력하는 길을 선택, 전기자동차 정책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울라프 슐츠 정권은 사상 최악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 급속한 확대로 정국을 휘어잡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총리 취임하자마자 도시봉쇄(Lockdown, 록다운)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나아가 재정 규범의 이완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자민당 당수가 재무장관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는 재정 규칙을 종전의 규칙을 견지하겠다는 소신이다. 하지만 녹색당의 공동 당수가 경제장관직을 맡을 예정이어서 에너지, 기후변화 대응을 강력히 추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시적으로 재정의 끈을 풀고 있는 독일의 재정확장을 당분간 선택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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