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유토피아(지상낙원)은 과연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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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유토피아(지상낙원)은 과연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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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인간의 희망인 최상의 행복국가인 유토피아(지상낙원)는 과연 존재할까? 1478년 2월 6일 영국 런던의 밀크 스크리트에서 태어난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쓴 유토피아는 세계적 고전이다. 그러나 지구상에 살아가는 고금의 인간은 언제부터인지, 유토피아를 갈망했고 찾아 나섰다. 결론은 유토피아는 찾을 수 없었다. 왜인가? 오늘의 주제는 지구상의 유토피아에 대한 논의를 하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이 지구를 일찍이 고해(苦海)라고 정의하였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구하지만, 마음대로 구해지지 않고,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또, 언제죽을 지, 생사의 요절(夭折)도 피할 수가 없다. 전쟁에 복을 많이 지은 남녀 외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돈을 벌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구경의 목적이 이고득락(離苦得樂)이었다. 결론은 고의 세계를 떠나 낙원으로 왕생하는 것이었다. 불교의 낙원은 지구가 아닌 서방에 있다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의 세계 극락세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불교에서는, 이 지구는 극락이 아닌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받는 음양(陰陽)의 세계요, 고해바다라고 정의하였다. 또 고해바다에 태어나는 중생은 스스로 지은 업고에 의해 생사를 하며, 윤회전생(輪廻轉生)한다고 주장한다.

북한 세습독재자는 3대에 걸쳐 지구촌에 “북한은 지구상에 유토피아”라고 주장해온다. 하지만 북한에 사는 인민이나 자구촌의 여타 사람들은 북한을 진짜 지구상의 유토피아라고 믿을까? 북핵을 만들기 위해 북한 인민 3백만여 명이 기아(饑餓)로 죽어갔는 데, 과연 북한이 유토피아라고 믿을 수 있을까? 북핵을 가지고 미국, 일본, 한국에 불바다로 상습 공갈을 처대는 북한에서 유토피아를 상상하며 즐기는 사람은 김씨 왕조의 세습 독재자와 가족, 충견같은 하수인들 뿐일 것같다.

지구상에 모든 종교는 자기 종교에만 있다는 식의 유토피아를 설정해놓고, 선전하고 인간을 세뇌한다.

천주교, 기독교는 고해중생들에게 헌금을 받으며, 세뇌하듯 설교하기를 “천당에 가서 복락을 누린다”고 한다. 알라신(神)을 믿는 사람들도 유토피아인 그들의 천당을 설정하고 신앙자들을 세뇌하고 있다. 또 사이비종교(似而非宗敎)도 유토피아를 설정해놓고 교도들에게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결국은 임종의 시간이 오면, 육신은 하무하게 죽어 시체가 되고, 죽은 육신은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지구촌의 모든 생명은 수명이 다하고, 기운이 다하면, 정신이 빙빙 돌고 도는 혼돈에서 생명을 다할 뿐이다.

나는 간간히 서울의 전철 안과 길 위에서 전도하는 교인들을 우연히 만난다. 교인들은 선전 전단지를 주면서, “예수 믿고 회개하고 천당가라”는 권유의 말을 한다. 나는 “불교 믿고 참회하고 극락가라“ 는 말을 되받아 해주지 않는다. 이미 나에게 천당을 권하는 남녀는 타종교에 대한 예우도 없고, 오직 자기 종교에 대해 광신적이 된 것이다. 나에게 광적으로 천당론을 전도하는 남녀를 측은한 마음과 눈으로 볼 뿐이다.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지만, 미소하고 입을 봉한다. 그도 결국 죽음의 시간이 되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또 그들은 ”불신자는 지옥행“이라는 붉은 글자를 서 등에 메고 다니며 독선의 소리를 지른다. 얼굴은 경제적으로 곤궁한 얼굴이다.

낫놓고 기역지도 모르고, 성서도 모르는 사람들의 시대가 아직도 재연되는가? 기독교에서는 지구의 천지창조의 시간을 6천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작금에 천체 물리학자는 지구의 수명이 45억 년이라고 주장하는 시대이다. 얼마전 교황이 스스로 ”성경은 다시 써야 한다”는 양심적인 발언을 하여 세계에 감동을 준 적이 있다. 교항은 매우 양심적인 사람이다.

일제 말엽에 백백교(白白敎)라는 사이비종교가 성황을 이루었다. 교주는 전용해(全龍海)였다. 그는 남녀 신도들에게 백백교의 유토피아를 설명하면서 그곳에는 황금이 지천이라 강조하며, 황금의 세계에 살게 해주겠다고 설득하여 기도하게 하며, 재산을 갈취하였다. 교도들이 “왜 돈을 받고 황금이 지천인 유토피아에 가게 해주지 않나?” 항의할 때, 전교주는 항의자들을 깊은 산 절벽의 바위에서 눈을 감고 기도하게 한 후 겐노(큰 망치)로 기도자의 뒤통수를 힘차게 가격하여 죽여 절벽 밑으로 떨어뜨렸다.

절벽에서 유토피아를 상상하며 눈을 감고 기도하다가 망치에 의해 죽어간 시체가 3백이 넘었다는 당시 수사경찰의 통계와 당시 안론보도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경찰 수사가 닥치자 전용해는 자신과 비슷한 남자를 살해 후 자산의 자살로 위장하고, 황금을 들고 중국 상해로 밀항했다는 후일담(後日譚)이 있으나 진위여부(眞僞與否)는 확실히 모른다. 작금의 한국에는 전용해를 닮은 자들이 전능한 신이 자기 편이요, 황금이 지천인 유토피아를 팔아먹는 자들은 부지기수이다. 수년전 어느 기독교인은 천국을 다녀왔다고 전국에 강증하면서 천국은 황금의 세계였다고 증거한 적이 있다.

지구가 천지창조의 중심이요, 천동설(天動說)을 철석같이 믿었던 암흑의 시대와는 달리, 작금은 우주를 관찰하는 천체 물리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지구는 광대무변한 우주에 비해 티끌과 같다는 주장을 한다.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보면 지구는 항성(恒星)이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총알같은 속도로 윤회하는 초록빛 행성(行星)이다. 총알같은 속도의 지구는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때문에 지구에 태어난 생명은 요절(夭折)과 생노병사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광대무변한 우주를 정확히 논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지구를 관찰하면, 형상이 보이지 않는 전능한 창조자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흡사 지구는 만물의 생명을 장양하는 어머니와 같다. 지구라는 어머니는 지구를 대기권으로 보호하고, 태양이 공짜로 광명을 주고, 공짜로 공기를 주고, 공짜로 생명의 물을 주는 등 지구의 뭇 생명을 살리기 위해 대자대비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세계를 공짜로 준다. 금년의 한국에는 폭염으로 한국인을 각성시키더니 마침내 태풍이 폭염을 밀어내고, 뒤이어 비가 내려 폭염으로 뜨거운 지열(地熱)을 식히고, 한국인들에게 서늘한 날씨 가운데 추석을 맞이하게 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깨닫고 보면, 지구의 어딘가에서 지구의 생명을 살리는 무궁한 조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구를 돌보는 어머니같은 전능한 창조자는 어디에 존재할까? 지구 전체에 존재하는가? 인간이 갈 수 없는 눈속의 히말라야 정상인가? 아니면 달에서 지구를 움직이는 기(氣)를 보내는 것인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구를 돌보는 창조자는 간헐적으로 신성(神性)이 충만한 육신을 가진 성자인 부처님, 예수, 마호멧 등을 인간세계에 테어나게 하여 창조자의 뜻을 전해오고 있다. 다만 무지한 인간들이 “종교적 권력과 탐욕으로” 각기 편을 가르고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처럼 중오하고 싸우고 죽이는 것이다.

모든 종교인들은 대오각성해야 한다. “지구를 돌보는 창조자는 중생을 제자식 처럼 번영하게 하는 대자대비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오래지 않아 지구상의 모든 종교를 통일하는 신성이 더욱 충만한 육신을 가진 인간이 또 태어날 것이다. 아니 이미 지구에 태어나 역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끝으로, 이 글의 주제는 “지구에 유토피아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의이다. 국제적 찬반의 논박(論駁)이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인간의 유토피아는 지구라고 주장한다. 모든 지구인이 상생하면 유토피아는 지구에 현실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 외에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서로 죽이는 지옥도를 연출하는 것은 탐욕에 미친 인간들이아닌가? 우주에는 지구같은 초록빛 별이 1천개가 넘는다는 천체 물리학자의 보고가 있다.

불교에서는 우주 창조자를 법신불(法身佛)이라 부른다. 석가는 법신불의 화신이다. 하지만, 지구라는 행성은 시간이 너무 빠르기 때문에 지구에서 육신을 가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결국 지구라는 향성의 흙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구촌의 모든 인간은 한 창조자의 자녀들이다. 모든 인간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구의 모든 종교 지도자는 육신이 살아있을 때, 종교권력과 부의 탐욕을 떠나 상생과 중생구제에 자비를 함께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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