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 25년 강권 독재 통치자 ‘카리모프 대통령’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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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25년 강권 독재 통치자 ‘카리모프 대통령’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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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내전 우려 속 인근 국가 정정 불안도...

▲ 알렉세이 푸쉬코프(Alexei Pushkov) 러시아 의회 대외문제위원회 위원장은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카리모프 대통령의 사망은 상당한 수준의 예기치 않은 불확실성의 우즈벡 정국이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스타운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 78)’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로이터 통신, 미국의 타임(Time) 등이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는 3일 오전 11시(환국시간) 아직까지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우즈벡 정부는 2일 뇌출혈로 쓰러진 카리모프 대통령의 상태가 급변 ‘위기’라고만 발표했다. 우즈벡 정부는 지난 8월 28일 카리모프 대통령이 입원했다고 발표했고, 가족들은 8월 29일 대통령은 집중치료실(ICU)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중앙시아의 ‘페르가나’통신은 1일 카리모프 대통령이 이미 상망했다고 거듭 보도하고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2일(현지시각) 사망 사실을 발표하고, 3일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의 타임(Time)은 3일(한국시간) 카리모프 대통령이 자신의 고향인 사마르칸트에 묻힌다고 보도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장녀 로라 카리모바 틸리아예바(Lola Karimova-Tillyaeva)는 소셜미디어에 그가 지난 8월 27일 병원에 뇌출혈(brain hemorrhage)로 타슈켄트에 있는 입원했다고 게재했고, 그녀는 다시 “그가 사망했다(He is gone)”고 SNS에 올렸다고 타임은 전했다.

다수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카리모프 대통령의 고향인 사마르칸트에서는 지난 1일 공무원들이 시 중심부 청소에 동원되었으며, 이 같은 청소는 장례식 준비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 카리모프는 이후 후임 대통령은 ? 

카리모프 대통령은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한 후 당초 대통령의 임기가 재선에 국한하도록 돼 있는 헌법을 개정해 25년 동안 강권지배를 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의 후계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후우즈베키스탄 정국이 안개에 휩싸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으며, 주변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1989년 당시 아직 소비에트 연방 소속으로 있을 때 우즈벡 지도자가 되었으며, 그는 세계에서 가장 전체주의적 압제적인 독재 강권 통치를 해왔다. 후계자 없이 사망해 이슬람 수니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종파 사이에 내전의 우려를 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알렉세이 푸쉬코프(Alexei Pushkov) 러시아 의회 대외문제위원회 위원장은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카리모프 대통령의 사망은 상당한 수준의 예기치 않은 불확실성의 우즈벡 정국이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전통적으로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집단인 탈레반, 알 카에다, 이슬람 수니파 과격 무장 세력인 이른바 이슬람국가(IS=Islamic State) 등과 연계된 조직이 존재하고 있어, 언제 어떤 식으로 우즈벡 내부에서 갈등이 터져 내전으로 변할지 주목의 대상이다.

우즈벡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사망했을 경우 상원의장이 후임 대통령 선거를 사망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치르도록 돼 있다. 그러나 상원의장은 영구 집권을 추구하는 스타일은 아니며, 정치적 영향력을 뒤로한 채 새로운 출발을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고 외신들은 내다보고 있다.

* 카리모프는 어떤 인물 ? 

카리모프 대통령은 다혈질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걸핏하면 폭발적 성격을 보이는 폭군이자 잔혹성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온 인물이다. 지난 2005년 민중의 봉기 당시 그는 비무장의 반정부 시위대를 향하여 무장 병력을 동원해 무차벽적으로 총격을 가하는 행동을 보여 왔다. 그는 당시 수천 명의 시위대를 감옥에 보냈으며, 그의 심복들(henchmen)은 일부 반체제 인사들을 펄펄 끓는 물로 죽이는 참혹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카리모프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인권단체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우즈베키스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즉 아프가니스탄 등 이웃 국가들의 중요한 병력, 물자 등의 전쟁 루트(route of the war)이어서 때로는 서방국가들은 그의 폭정을 눈감아주기도 했다.

한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카리모프 죽음 소식을 접한 후 내놓은 성명에서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의 지지를 재확인 한다”고 말했다. 카리모프 사망에 대한 애도의 말은 보이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나는 이번 주 독립 25주년을 맞이하는 우즈벡 국민과 카리모프 대통령에게 축하를 보낸다”면서 “우즈베키스탄은 새로운 역사의 장을 시작하고, 미국은 우즈베키스탄과 파트너로서 우즈벡의 통치, 안보, 모든 시민들의 권리 등에 지지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3천만 인구의 우즈베키스탄은 살구 과수원(apricot orchards), 목화밭, 실크로드를 따라 줄지은 고대 석조유물 도시 등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카리모프는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그 무엇이든 단죄했다. 그의 리더십 스타일은 선전선동의 전형적인 본보기이며, 따라서 선전 포스터 등을 통한 자신과 자신의 업적 선전을 아주 좋아해,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은 그를 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거대한 땅을 지배한 14세기 황제 타메를란(티무르의 별칭)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회의 때 큰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그의 분노는 관리들을 부들부들 떨게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그들에게 재떨이를 내던지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 잘 알려져 있다.

* 카리모프 아래의 우즈벡 경제 

카리모프 하에서 우즈베키스탄 경제는 이익이 나는 산업에만 관심을 두고 또 그러한 부문의 무역만 해왔다. 국가의 종합대책은 없었다. 1996년 국가 통화(솜, som)의 자유태환을 금지해버려, 무역과 외국인 투자가 막혔으며, 따라서 실업률은 치솟고 빈곤이 국가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카리모프 정권의 고질적은 부패는 상당량의 금, 목화 등 천연자원의 보고(寶庫)라는 말을 듣는 우즈벡 경제 발전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는 빈곤의 뿌리인 부패근절에는 관심도 없었다. 수백만 명의 우즈벡 국민들은 러시아와 이웃국가인 카자흐스탄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들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서 돈을 벌어 조국인 우즈벡으로 송금을 하는 등의 활동으로 우즈벡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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