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구하기 운동과, 김대중 구하기 운동의 비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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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구하기 운동과, 김대중 구하기 운동의 비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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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향해 반란의 총성을 울린 지난 모든 운동은 '민주화 운동'으로 포장되어 보상받고 대우받고 있다

▲ ⓒ뉴스타운

햇수로는 3년째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받고 투옥되어 결심의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박근혜 무죄석방!”을 합창하며 태극기를 든 남녀들의 단체행동이 진행되고 있다. 감옥에서 고통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 3년 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양이 작열하는 때나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운동을 벌이는 일부 국민들에 나는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신군부에 투옥된 김대중 구하기에 직접 행동에 나선 일부 시민들은 5,18 무장투쟁으로 발전되어 일부 시민들과 군경이 총사격을 하며 수많은 피를 흘렸다. 차제에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구하기의 운동과 김대중 구하기의 운동과 대비를 하여 논하고자 한다.

5,18 민주화 운동으로 알려진 당시 광주사태의 처음에는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합창하는 애국 시민들이 있었다. 애당초는 헌법을 준수하는 비폭력 저항의 군중시위였다.

그러나 어느 날, 시위 군중 가운데 일부 시민들은 전남 지역에 비밀로 산재한 무기고를 44곳이나 기습하여 무기를 탈취하여 무장하고, 급기야 군경과 교전에 돌입하였다. 광주시의 경찰서, 파출소는 일부 시민군에 의해 점령당했고, 경찰들은 변복하고 도주해야 했다.

계엄군의 핵심인 특전사 군인들은 광주시를 포위하고 있었고, 일반 사단 병력은 계엄군의 뒤 쪽에서 특전사 군인들을 지원하고, 광주시의 무장투쟁이 광주시의 인근 도시는 물론, 대구, 부산, 사울로 불붙는 것을 완벽히 차단하였다. 내가 당시 전주 향토사단의 헌병정교의 에스코드를 받으며 정읍 터널을 지나 상무데애 도착했을 때는 윤흥정 사령관과 신임 소준열 사령관이 임무교대를 하며 악수를 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윤흥정 사령관은 중장이었고, 소준열장군은 소장의 계급장이었다.

소장군은 내게 다가와 불교식 합장의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망했다. “부친이 구례 화엄사의 승려였습니다.” 나는 친근감이 들었다. 나는 소장군에게 물었다. “시가전이 벌어질 것같은 데, 어떻하지요? 군인이나, 민간인 모두 죽고 다쳐서는 안되는 데….” 소장군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월남전에서 시가전 경험이 있습니다. 희생을 최대로 줄이도록 진력하겠습니다.” 그는 보기드문 호상(虎相)으로 그 후 중장으로 진급했다.

내가 광주시의 잠입한 임무를 마치고, 떠나기 전날 밤 시민군의 핵심 방어선인 전남 도청을 찾아 보았다. 시민군은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들로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인도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의 시위 운동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유혈사태의 전쟁판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신부가 시민군 편에 서서 선동하는 것을 목도하고 경악했다. 신부는, 총을 들고 계엄군과 일전불사(一戰不辭)의 각오로 결의를 다지는 시민군을 독려하고 있었다. 30대 중반의 승려도 등장하여 배때기 쪽에 권총을 차고, 칼빈 총을 어깨에 매고 시민군을 독려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나는 시민군에게 총기를 계엄군에 반납하고 비폭력 운동을 설득하고 다녔다.

다음날 아침 계엄군이 도청접수를 위해 총공격을 하기 전 전날 밤이었다. 계엄군 쪽에서는 TV에서 시민들에 거짓 방송을 내보냈다. “군대의 차량이 많이 오가는 것은 ” 시민들에 식수를 보급하는 것이니 안심하라”는 방송이었다. 드디어 계엄군이 도청 접수의 총공격을 할 때, 도청에 남은 병력은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들이 마지막 총을 들어 저항했다.

민중의 자식들인 시민군들을 독려한 신부, 승려는 계엄군의 총공격이 있기 전에 야음을 타고 핫바지 방귀새듯 몸을 피해 사라지고 없었다. 계엄군이 도청을 장악하는 그 시간, 나는 임무를 마치고, 다시 헌병의 안내로 고속도로를 통해 서울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그 후 나는 “내가 본 광주사태”에 대해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으나 그것은 훗날 실종되었다.

5,18을 연구하는 한국 최고 전문가인 지만원 박사는 “김대중 구하기의 광주사태”에 북한 특수군이 잠입하여 활동했다는 것을 매우 과학적인 사진 채증방식으로 결과물을 발표하여 부지기수의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나는 지만원 박사의 진실과 진상파악을 위해 불굴의 투혼과 고통받은 것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한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듯이, 진실은 언제인가 세월이 흘러도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 나는 지금도 광주사태는 무기고를 털어 무장하여 군경과 교전하는 시민군 보다는 간디의 무저항의 시위를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작금의 박근혜 전 대통령 구하기의 운동으로 햇수로 삼년 째 태극기를 든 일부 시민들은 “무죄석방”을 외치는 대장정(大長征)같은 시위에 돌입해 보인다. 나는 그들의 비폭력 저항을 지지한다.

그동안 수 명의 태극기를 든 시위하던 시민이 사고로 죽었고, 법률위반으로 감옥에 갔다. 그러나 태극기를 든 박근혜 구하기 일부 시민들은 시위를 하면서도 헌법을 준수하면서 시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김대중 구하기의 광주의 일부 시민들은 분격하여 44곳의 무기로를 털어 무장하여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무장투쟁을 하였지만, 박근혜 구하기의 시위대는 헌법이 허용하는 선상에서 시위를 할 뿐이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투옥된 박근혜에 대하여 “무죄석방!”을 제아무리 외치고 헌법 수호속에 태극기를 높이 들어 시위를 해도 삼심(三審)의 재판이 종료가 된 후에 文대통령이 사면에 서명하지 않는 한 무죄석방은 난망하게 되었다.

아쉬운 것은 헌재에서 탄핵결정이 있기 전 국회에서 여야 정치협상으로 스스로 “하야!”하고, 헌재에서 구명도생(苟命徒生) 하겠다는 발상은 틀린 일이었다. 헌재에 가기 전에 스스로 하야 했더라면, 박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후일을 다시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결론적으로 삼심을 통해 文대통령의 사면이 있을 뿐이나, 훗날의 대업에 박 대통령의 도모는 금생에 난망하게 되었다. 대장정에 나선 것같은 태극기 시위대는 이제 박근혜 구하기의 무죄석방의 구호 보다는 대한민국을 위해 단결하여 오는 지자체 선거, 총선에 압도적으로 자파 정치인들이 당선 될 수 있도록 매진해야 할 것이다. 오는 총선에 압도적인 승리가 있을 때, 또다른 탄핵의 구호는 눈앞에 가시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태극기 시위대는 산발적이 아닌 하나의 깃발아래 통합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하기와 김대중 구하기는 대비(對比)”의 비교론은 난망하게 되었다. 김대중 구하기에서 원인(遠因)이 되고 촉발된 당시 광주사태인 5,18은 총성이 울려 퍼졌고, 시민군이나 군경이 모두 유혈사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 구하기에 나서는 애국지사들이 비폭력 저항을 하는 것에 거듭 기립박수를 보낸다. 오래지 않아 그들의 소원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면을 통해 나오고, 태극기 시위에 감사의 연섫을 할 수 있는 때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이다. 대한민국을 향해 반란의 총성을 울린 지난 모든 운동은 '민주화 운동'으로 포장되어 보상받고 대우받고 있다. 반란의 총성이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한 것이다. 반란을 민주화 운동으로 보상비를 받게하는 법을 제정한 정신나간 국회의원들이 큰 문제이다.

나의 회상에는 무장항쟁에 나선 그날의 시민군들은 대구, 부산, 서울 등으로 반란의 불길을 퍼뜨리려 진력했으나, 실패했다. 왜냐하면 그날의 광주를 겹겹이 포위하여 봉쇄한 국군의 공적이었다. 국군들이 죽음으로 막지 않았다면, 광주사태의 불길은 대한민국을 온통 불태웠을 것이다.

깨어난 국민이라면, 광주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한 그 날의 군경들에 기립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소장군은 광주사태를 평정하고 예편한 후 인생무상을 절감하며 화엄사 산내 암자인 연기암(緣起庵)에 홀로 들어가 외진 방에서 홀로 참선 하다가 세연(世緣)을 마감했다. 이제 광주에서 일어난 불행했던 과거지사는 아득하지만, 잊지 못할 애통한 한바탕 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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