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탄생 100주년 특집]임자, 막걸리 한잔 하세
[박정희 탄생 100주년 특집]임자, 막걸리 한잔 하세
  • 편집부
  • 승인 2017.09.1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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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박정희와 그 시대 사람들이 일구어 낸 휴먼 에세이

▲ 박정희 대통령 ⓒ뉴스타운

뉴스타운은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7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획특집을 마련한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기록 박물관'임을 자부하는 언론사 뉴스타운이 보유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복원해서 원로 세대와 젊은 세대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회에는 2007. 6. 27일 자 편집부의 "임자, 막걸리 한잔 하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대통령 박정희와 그 시대 사람들이 일구어 낸 땀과 꿈의 행적을 모은 34편의 휴먼 에세이가 나왔다.

정치색을 배제해 대통령 박정희를 맹목적으로 옹호하지 않는 이 책은 다양한 기록물과 일화들을 통하여 본 국가지도자로서의 대통령과 인간 박정희의 고독한 정열의 리더십과 질박한 인간성에 대하여 차분한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

김인만 지음. 신국판, 반양장, 316면, 값 10,000원, 도서출판 바른길미디어

머리말

먼 바다의 등대지기에게 뭍으로부터 작은 물품 하나가 건너왔다. 만년필이다. 거기에 보낸 사람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대통령 박정희’ 연말에 대통령이 등대지기들에게 새해 선물로 만년필을 보냈다는 신문기사 파일의 몇줄 안되는 대목이 무심히 지나치려던 눈길을 사로잡는다.

권력의 정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외딴섬의 등대지기들에게 전하는 그때 그 만년필은 의례적인 선물일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게만 치부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알뜰한 정표의 이미지가 갈마드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어떤 지도자이며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이 책을 썼다.

필자는 학창시절부터 30대의 직장인으로 박정희 시대를 살았다.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했고, 이후 동화를 쓰는 사람으로 문단 언저리의 황량한 공간에서 엉거주춤 살아왔고 지금까지 그러하다.

대통령 박정희는 그 시대를 살아온 장삼이사(張三李四)로부터 지금의 젊은 세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장강(長江)으로 흘러오고 있다.

금년 5월 외국 유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우리 여배우는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카리스마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철이 들어서 눈뜬 남성상이 ‘카리스마 있는 머슴’이라며 대통령의 촌스런 모습이 그래서 좋더라고 했다.

대통령 박정희는 촌스럽다 못해 구한말(舊韓末) 흑백사진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의 모습이다. 질박하고, 찌든 가난이 부끄럽고, 무명 바지저고리에 검은 얼굴빛을 지닌 박달나무같이 단단한 한국 남정네의 한 사람이다.

그의 독특한 카리스마에는 한국적 정한(情恨)이 녹아 있다. 권력의 정상에서 먼 바다의 등대지기를 잊지 않고 챙기듯이 국토의 구석구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산마루의 나무 한그루까지도 제것처럼 건사하는 절대적 통치의 고독한 열정이 흐르고 있다.

그 시절 그는 빈곤과 좌절로 방치된 국토를 바라보노라면 백 가지 하고 싶은 일이 끓어오르지만 돈이 없다고 장탄식을 했다. 바다를 건너갈 비행기 한대 없는 처지에 돈을 빌리러 독일에 가서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나 목메인 애국가를 불렀던 그는 민간 항공사를 출범시켜 하늘로 뻗어가는 국력을 보면서도 그 자신은 국적기를 한번도 타지 않았으며, 컬러TV를 전량 수출하도록 국내 시판을 금지시키고 컬러TV방송을 허용하지 않아 끝내 흑백시대의 대통령으로 남았다.

이 책은 하나의 흑백 사진첩이라 해도 좋다. 여기에는 정치색이 없다. 대통령 박정희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논리를 짜깁기하지도 않았다. 공장에서 땀 흘린 누이들, 기막힌 삶을 살았던 새마을지도자, 남태평양의 파도 위를 누빈 원양어부, 조국을 일으킨다는 사명감으로 국가경영에 혼신을 바친 공직자들이 국가지도자와 더불어 꿈꾸고 땀과 눈물을 쏟은 미망(未忘)의 서사시(敍事詩) 같은 이야기들을 주로 담았다.

대통령 박정희는 “언제 한번 사람답게 살아보나”하는 민족적 비원(悲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정위치에서 국가경영을 지휘했고, 무소불위의 권력은 국가건설, 국부(國富) 창출을 향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나라를 새로 만드는 일이 쉽고 즐거울 리가 없다. 고통과 희생이 따랐고, 정치적 억압과 도전의 마찰음은 거칠고 사나웠다. 그래서 오늘도 이 사회 일각에선 과거를 부정하고 미워하는 뒤틀어진 감정의 전이(轉移)가 그치지 않고 있지만, 지난날의 진통은 성숙을 향한 과정으로 역사 발전의 큰 흐름 안에 수렴되어갈 것이다.

그는 ‘후손’이란 말을 가장 많이 했다. 당대의 우리는 고생을 하더라도 후손에게 물려줄 나라를 만들자고 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박정희와 그 시대 사람들의 ‘작품’이다. 그가 보여준 ‘하면 된다’는 일깨움과 미래를 향한 열망의 지평(地平)을 일구는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력 또한 값진 유산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금년 3월 하순, 그가 살던 서울 신당동 집을 찾아가 보았었다.

신당6동 골목 언덕배기 한 귀퉁이에 있는 그의 단층 기와집은 5.16혁명으로 비롯되는 한 시대의 원점에 위치하고 있다.

박정희는 20세기의 인물이다. 그는 20세기 전반 망국의 세월을 거쳐 전쟁이 할퀴고 간 암담한 조국의 운명을 20세기 후반, 일제시대의 꼭 절반인 18년 통치기간에 극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신당동 집에서 부인 육영수는 쪽문만 달려 있던 대문을 터서 출입하는 남편이 허리를 굽히지 않도록 했고, 청와대에서는 커튼 색깔까지도 남편의 가무잡잡한 얼굴빛을 커버하는 배색으로 골랐다고 한다. 나라를 바꾼 건 박정희지만 박정희를 바꾼 건 육영수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터이다.

육영수는 혁명 지도자의 아내라는 자의식이 강해 남편을 내조하는 부인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국가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 민생의 그늘진 부분을 쉴새없이 찾아다니며 자기 헌신의 노력을 집중했다.

박정희 내외는 신당동 집을 나가 돌아오지 못했다. 생물체가 허물을 벗고 떠나듯이, 신당동 집은 한꺼풀 허물처럼 남아 있었다.

내외가 남긴 유일한 재산인 그 집은 빛바랜 기와지붕에 축대와 담장은 금이 간 채 쇠락해 있었지만, 철따라 목련은 홀로 피어 있었고, 텅빈 집채는 비바람에 씻기어 깨끗하고 맑은 기골(氣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책을 쓰면서 망망대해를 일엽편주로 헤매는 심정이었으나, 그러나 신당동 집을 가서 보고는 가마솥의 국을 다 먹어야 맛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한 수도인의 잠언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이 나오기까지, 출판사를 하는 친구 박찬중(朴贊中) 시인에게 탈고(脫稿) 약속을 못 지키고 부지하세월인 양 뭉기적거려 마음고생을 시킨 것이 참으로 미안하고, 온라인 자료검색을 도와준 이문리(李文利)양 등 편집부 직원들의 수고에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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