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탄생 100주년 특집]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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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탄생 100주년 특집]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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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일본에 대한 이중적인 우리 태도

▲ ⓒ뉴스타운

뉴스타운은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7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획특집을 마련한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기록 박물관'임을 자부하는 언론사 뉴스타운이 보유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복원해서 원로 세대와 젊은 세대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회에는 2005년 3월 15일자 최익주 칼럼니스트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이나 업적을 평가할 때 무엇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개인적으로 고민스럽고 사회적으로도 혼란할 때가 있다. 사실 인물이든 사건이든 업적이든 완벽하게 평가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평가하게 된 배경, 시기, 주체, 이유, 조건, 목적 등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들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최근만 보더라도 만델라 대통령의 혁혁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에이즈 문제를 방치했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어쨌든 만델라는 우리 대통령들과는 달리 은퇴한 후에도 에이즈 퇴치운동에 전력을 쏟아왔으며 이를 돕던 클린턴이 행사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평가”라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각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성적만을 평가하던 단순한 의식수준으로는 누군가를 다양한 관점으로 평가하기도 쉽지 않다.

평가 자격을 인정받기가 어려워

어쨌든 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평가를 받는 객체(대상)보다 평가하는 주체의 자격과 자질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다. 그렇지 않으면 올바른 평가는커녕 평가를 전후로 대립과 비난과 혼란만 쏟아진다. 이는 평가할 자격과 자질에서부터 미달이었거나 시기상조였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비교적 공정하고 솔직하다는 선진국들조차 평가는 연고관계나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후세들에게 맡겨둔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영남을 껴안을 정치적 목적으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짓겠다.”고 했으며 이후 여론에 부딪쳤다. 이는 평가 시기, 주체, 자격, 자질, 이유, 절차, 배경 등 모든 면에서 잘못이었다. 이는 역사적 식견이 전혀 무지했던 때문이다. 물론 링컨이나 히틀러처럼 이견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곧바로 평가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박근혜도 국민에게 자기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박정희 대통령은 등장(5.16)부터 업적과 인물까지 모든 면에서 극단적으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서로들 자기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이용당하지 않으려는 결과로 나타난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공정한 평가는 편견과 이해관계가 없어질 때까지 평가를 후세로 미루어야 옳다. 특히 그의 딸이 정치권에 진입할 때는 아비지인 대통령의 행적을 문제 삼아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몸담아버렸다면 그 동안에는 아버지의 평가를 미뤄야 옳다. 왜냐하면 박근혜 역시 지금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여서 박정희가 아닌 박근혜 자신의 지도력과 능력으로 국민과 관계하고 평가를 받아서 입장이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박정희로 인해서 박근혜의 자질이나 능력이나 미래가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인물 평가는 적극적인 의지가 확인돼야

어쨌든 한국 역사에서 가장 복잡한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오직 하나의 관점(친일파)만을 부각시켜서 평가하려는 것은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는 역적 짓이다. 다시 말해서 수십 년이나 지난 과거에 대해서 그것도 소위 대통령에 대해서 거국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은 팽개친 채 특별한 목적 아래 치우친 방식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물론 이런 잘못된 평가 시도에 대해 반박하는 입장에서도 결국 자기주장이나 방법으로 반박하거나 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일쑤여서 당연히 분쟁과 혼란과 대립이 생긴다. 이는 소모전으로 그치지 않고 과거 잘못을 끌어내서 더욱 큰 잘못을 저지르는 비열한 짓이다.

어쨌든 박정희 대통령이 계속 거론되는 마당에 어쨌든 한마디 거들 수밖에 없다. 케네디 대통령은 “내가 최선을 다해 준비한 정책은 결국 실패해서 국민에게 비난이 쏟아져도 속으로는 흐뭇했다. 하지만 어떤 정책들은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럴 경우에는 국민들로부터 칭찬이 쏟아져도 내가 당초에 예상하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는 인물을 평가할 때 본인 스스로의 자발적인 의지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함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열십자(+)를 그려놓고 박정희처럼 적극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추진했던 의지가 있었으면 위쪽(성공은 위쪽 우측, 실패는 위쪽 좌측)에 해당된다. 그러나 의지가 없었던 것(민주주의와 선진국)은 아래쪽(효과를 본 것은 아래쪽 우측, 망친 것은 아래쪽 좌측)에 속한다. 예를 들어서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의 빈곤이나 경제를 해결하려고 마음먹고 계획을 추진해서 성공시켰다면 적극적인 평가(위쪽 우측)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독재를 저질러서 민주주의를 망쳤다면 아래쪽 하단에 속한다. 이렇게 평가가 필요한 관점마다 인물의 의지에 따라 평가가 이루어져서 다양한 관점이 종합 반영되고 정리되어야만 분야별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게 된다. 

정당한 평가는 후세인들의 의무와 권리

박정희 대통령을 한국의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순수하게 평가하려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지금까지 박정희에 대해서 공세적이었던 수세적이었던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사람들은 모두 잘못된 시각으로 억지를 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비단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조차 비슷했다. 그래서 한국은 과거든 현재든 국민들이 이용당하는 대상일 뿐 진정으로 역사의 주체와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박정희를 깎아 내리려는 사람들은 친일행적과 독재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그 이전의 암울했던 시대 상황이나, 긴박하게 돌아갔던 세계사의 흐름이나, 빈곤과 무지와 전쟁으로 인해 답답한 국내 정세나, 무지하고 빈곤하고 차별이 심해서 민주주의와는 전혀 동떨어졌던 국민의식 수준이나, 침묵으로 일관했던 지식인의 역할이나 책임 등은 전혀 무관한 척 외면해버리고 모든 것을 오직 박정희의 잘못으로만 돌렸다. 심지어 경제개발에 대한 공적조차 일체 언급하지 않을 정도였다. 다시 말해서 오직 박정희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렸으며 마치 박정희 혼자만 존재했던 나라처럼 다른 것들은 무시해버렸다.

반면에 박정희를 두둔한 사람들은 집중적으로 경제 성장만을 강조했다. 이들은 절대 다수 국민들의 피땀 섞인 노력과 희생은 방치해버린다. 또한 재벌에게 편향된 경제정책이나 그에 따른 불균형한 소득 분배와 빈부격차의 심화는 살며시 무시해버린다.

물론 박정희가 무너진 당시는 독재가 극에 달해서 필리핀의 마르코스나 대만의 총통제가 떠올려질 정도로 독재자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후 다른 대통령들이 하는 것을 보고 실망이 깊어지면서 점차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생겨났다. 그러다가 그들을 독재자라고 비난하고 공격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서 부정부패는 물론이고 그나마 경제까지 망가뜨리자 박정희가 영웅시 되었다. 그러나 한 쪽의 이런 영웅 대접과는 달리 정치적 목적을 가진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박정희를 현존하는 인물처럼 비난해왔다. 이런 비열한 목적으로 또 다시 역사를 망치려는 속물들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은 채 대충 침묵을 유지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과 박정희에 대한 이중적인 우리 태도

어쨌든 박정희는 괄목할만한 인물은 인물이다. 시대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대단한 인물이며 세계사적으로도 인물이 분명하다. 일본은 전쟁 도발자나 역적도 영웅을 만들려고 안달이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인물 왜곡이든 역사 왜곡이든 분개하고 공격을 해대면서도 우리 인물에 대한 공정하고 정당한 평가에는 그야말로 인색하며 그 수준이 엉망이다.

심지어 박정희를 끌어내리는 것이 박근혜를 견제하려는 속셈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를 우리 스스로 왜곡하면서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을 방해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역적 짓에 버금가는 행위다.

또한 이를 당하는 입장인 박근혜 역시 역사적이고 국가적인 사건을 오직 개인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음에도 인연에 연연한 채 대범하지 못한 행보를 보여 왔다. 적어도 전 국민 앞에 박근혜의 확고한 반응과 월등한 대안을 제시하는 등 공격받는 기회를 통해 어두운 우리 과거사를 모두 끌어안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박근혜 역시 국민과 세계를 향해 국모로서의 자격을 널리 인정받을 절호의 기회들을 계속 놓치다가 오히려 분란과 위기에 빠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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