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탄생 100주년 특집] 백년에 한번 나올 수 있는 영웅 박정희 (4회)
[박정희 탄생 100주년 특집] 백년에 한번 나올 수 있는 영웅 박정희 (4회)
  • 편집부
  • 승인 2017.07.3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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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파병의 기적

▲사진 = 월남전 참전용사회 커뮤니티에서 기승인받은 사진을 사용함 ⓒ뉴스타운

뉴스타운은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7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획특집을 마련한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기록 박물관'임을 자부하는 언론사 뉴스타운이 보유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복원해서 원로 세대와 젊은 세대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 첫 회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실증적인 사실 증거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시스템공학 전문가 지만원 박사의 글 '백년에 한 번 나올 수 있는 영웅 박정희'시리즈를 새롭게 편집해 올린다. 

지만원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신화를 창조한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온갖 욕을 다 먹는다"고 전제하고 "일제 피해자들이 있다고 하자. 그들에게 청구자금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면 우리는 지금 매우 가난하게 살았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야무진 투자와 경영관리의 덕택으로 대한민국이 잘살고 있다. 피해를 봤던 사람들도 잘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명예로운 보상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편집자 주>

월남 파병의 기적

1966∼72년 월남에서만 직접 획득한 외화는 8억7천2백50만 달러였다. 이중에서 장병 송금액은 1억7천8백30만 달러로 베트남으로부터 송금된 전체 외화의 20.4%에 불과했다. 

나머지 80%는 베트남으로의 수출, 베트남에의 군납, 파월 기술자 송금, 파월 지원경비, 파월 건설 및 용역에 의한 수입이었다. 미국의 후원과 한국군의 맹활약, 월남특수가 일궈낸 '신인도'에 따라 외국자본이 물밀듯 들어왔다. 원조, 차관, 상품 및 용역 수출의 물꼬가 터졌다. 

1965∼72간 외자 도입액은 32억8천8백20만 달러나 됐다. 대미수출을 보자. 1964년에 3천6백만 달러였던 것이 10년 만인 1973년도에는 무려 10억2천1백20 달러로 28.3배로 도약했다. 주한미군이 한국에 뿌린 돈이 8억 달러, 군원이관 중단액이 9천3백만 달러 등 총체적으로 한국군이 월남특수로부터 거두어들인 경제적 이익은 5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장병 1인당 1만7천 달러씩 국가에 기여한 것이다. 이는 소위 봉급 83년치에 해당하는 돈이다. 

이는 장장 14년간의 교섭 끝에 1965년 6월3일에 얻어낸 대일 청구자금, 즉 무상원조 3억 달러, 재정차관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도합 8억 달러에 비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외환 보유고를 보자. 1964년도 외환 보유고는 겨우 1억2천8백만 달러였으나, 1975년에는 15억4천만 달러, 1978년에는 49억4천만 달러로 폭증했다. 

남북한 1인당 GNP를 보자. 1953년, 남북한 1인당 GNP는 각기 67달러와 53달러로 남한이 1.2배 더 높았다. 그러나 1959∼65년 6년간에는 역전됐다. 남한이 북한의 60∼70%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월남이 패망한 1975년에는 남한이 북한보다 1.4배 앞섰고, 지금은 29배로 앞서가고 있다. 한국군은 월남의 8개 항만 중 5개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월남의 주요 공사는 한국 기업이 맡았다. 당시 천막회사였던 한진과 현대는 기술도 없이 담요나 모기장 그리고 급수 대책도 없이 무작정 월남 땅으로 상륙했다. 한진은 월남에서 1.5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현대는 캄란 부두공사 5백만 달러를 비롯하여 연평균 1백만 달러 이상의 계약고를 올렸다. 

1974년 초 청와대 오원철 경제수석이 박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중동은 고온에다 모래 바람이 부는 열악한 땅이다. 금녀, 금주의 땅이라 선진국 근로자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가려 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군인 정신으로 무장된 수십만의 제대 장병이 있다. 월남 참전 용사들도 많다. 여자 근로자가 만든 상경공업 상품을 수출하여 지탱해 오던 한국경제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 

1965∼75년 9년간 중동건설 수주액은 불과 2천4백만 달러였다. 1974년에는 8천9백만 달러, 1975년에는 7억5천만 달러, 76년에는 24억3천만 달러, 77년에는 33억8천7백만 달러, 78년에는 79억8천2백만 달러를 기록했다. 오늘날의 기록과 비교해 보라. 그 엄청난 기술과 해외수주 기록을 가지고도 지금 현대를 비롯한 한국의 모든 건설업이 중동 수주에 냉대를 받으면서 줄줄이 도산하고 있지 않은가? 

박 대통령이 집권하기 이전에 한국엔 일자리가 없었다. 당시의 공식 통계만으로도 실업률은 1963년 29.9%, 1964년에는 29.7%였다. 공장이라고는 겨우 제분, 제당, 제약 회사들과 같은 것뿐이었고, 기계공업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손톱깎이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강도와 정밀도를 규정하는 스펙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사회 전체가 무력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청년들에겐 앞길이 막막했다. 박 대통령은 월남에서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경부선, 댐공사, 발전소 등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능학교들을 세워 기능공을 대량으로 양성했다. 

국제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은 한국이 독차지했다. 한국은 기능공의 나라가 됐다. 박 대통령은 외국에 특사들을 내보내 한국에 값싸고 질 좋은 기능공들이 많으니 들어와 공장을 지어달라고 호소했다. 대통령을 신뢰한 외국기업들이 줄줄이 들어와 공장을 지었다. 일자리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눈물과 한숨의 대명사 '보릿고개'라는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1960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는 우리에게 한참 우러러 보이는 선진국, 모두가 우리보다 3배나 더 잘 살았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어떠한가? 필리핀은 1인당 국민소득 1천30달러, 우리의 11분의 1이다. 인도네시아는 9백68달러, 태국은 1천9백40달러, 북한은 5백80달러, 한국은 1만7천 달러, 모두가 한국에 비해 새까맣게 뒤떨어졌다. 박정희가 이룩한 신화는 기적 그 자체였다.(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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