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해 버린 '대화의 격(格)' 복원이 시급
추락해 버린 '대화의 격(格)' 복원이 시급
  • 백승목 대기자
  • 승인 2013.06.13 0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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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정권이 지켜 온 원칙과 국격을 종북반역 정권이 무참하게 파괴

 
최근에 벌어진 '남북당국회담' 무산사태를 두고 때 아닌 격(格) 논쟁이 뜨겁다. 여기서 논의 되는 격(格)이란 대체로 주위환경이나 일의 형편에 어울리는 분수와 품위(品位)라는 내적측면과 신분이나 지위, 주위환경 따위에 맞는 일정한 방식(方式)이라는 외적측면을 통틀어 말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격(格)이란 내면적 품위도 중요하겠지만 일정한 방식이라는 외적측면이 더 강조 된다고 볼 때, 대화나 협상대상의 상대적 지위나 위상이 대등 하냐 여부는 매우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기에 따라서 정권에 따라서 이를 엄격히 하기도, 소홀히 하기도 하였다.

먼저 해방이후 건국전후 이승만 대통령은 김일성을 한낱 소련의 꼭두각시로 규정, 철저하게 외면한데 반하여 김구는 김일성을 협상 상대로 생각하여 김일성이 주관한 군중집회와 유사한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1948.4.19~23)'에 참석했으나 김일성은 김구 김규식을 들러리로 취급 냉대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 후 UN군 대표와 한국군 대표, 중공인민지원군 대표와 북괴군 대표가 대좌한 북괴 6.25남침전쟁 정전협상 테이블에서 한국정부가 송환불가 주장을 해 오던 반공포로 송환을 1953년 6월 8일 UN측이 공산 측과 합의함으로서 한국군 대표를 일방적으로 철수시키고 한국군 참모총장 백선엽 대장에게 휴전협정서명 불참을 지시함으로서 다자간협상에서조차 김일성과 동석을 거부하였다.

4.19 이후 5.16을 거처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1972년 5월~7월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평양에 밀파, 북괴 권력서열 2위인 김일성의 실제(實弟)인 김영주 부주석을 상대로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내고, 김일성 집무실에서 김일성과 심야 담판을 벌여 1.21사태에 대한 사과와 6.25 남침에 대하여 "과거의 일은 잊자"는 간접적인 유감표명을 이끌어 냈다.

7.4 공동성명 직후 북괴가 김영주의 신병을 핑계로 제2부수상 박성철을 대타로 내보게 됐다고 김일성이 직접 우리정부에 양해를 구함으로서 남북조절위원회 이후락의 상대역이 북괴 부주석 김영주에서 북괴 제2부수상으로 자연스럽게 격하 되었다.

10.26 이후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장세동 안기부장을 밀사로 파견, 1985년 10월 17일 김일성을 독대, 아웅산 묘소 폭파와 6.25 남침 등 '과거사'를 따졌으며, 이에 대하여 김일성이 "우리 과거는 다 백지로 덮어놓고, 서로 상봉하여 어떻게 하면 남부럽지 않은 통일된, 문명된, 발전된 나라로서 세상에 과시할 수 있는가를 논의, 발표하자"는 통일전선 전략의 발톱을 드러내게 하였다.

1987년 6.29 선언에 의해 직선제 대통령이 된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의 완결판으로 남북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해 밀고당기기식 고위급 예비회담(1989.2~1991.10.22) 끝에 대한민국 수석대표 국무총리 정원식과 북괴대표단장 정무원 총리 연형묵 사이에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라는 긴 이름의 문서에 1991년 12월 13일 서명, 1992년 2월 19일 발효 시켰다.

그 후 1993년 2월 25일 제 14대 대통령 김영삼이 취임 3주 만인 3월 19일 한완상과 김정남 등 좌편향 인사 주도로 미전향장기수 이인모를 서둘러서 북송해 주는가 하면, 김일성 사후인 1995년 에는 우리 경제기획원차관 이석채와 북괴 조평통 서기국 전금철(전금진)이 격(格)에 맞지 않는 협상을 벌여 쌀 15만 t을 무상으로 지원하면서 쌀 수송선 청진항 입항 시 '인공기'를 강제로 게양하는 수모를 당하고 선원이 간첩으로 몰려 억류당하는 등 남북관계가 파행을 거듭했다.

1998년 2월 25일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대중은 아예 자신이 1994년 3월 재야시절 만든 사설기관인 아시아태평양(아태)평화재단과 김일성이 비슷한 시기에 만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통일전선부위장기구)를 남북문제 쌍둥이 창구로 꾸준히 활용해 왔으며, 2000년 4월 박지원을 밀사로 북경에 파견, 격(格)도 못 따지고 북괴 아태부위원장 송호경과 대북뇌물액수 흥정을 벌이기도 했다.

노무현정부에 들어와서는 통일부 장관 정세현의 퍼주기, 정동영과 내각참사로 위장, 장관급회담(2005.12.13) 회담 대표 단장으로 참석한 통전부 소속 대남공작지도원 권호웅을 '동지(同志)'라고 얼싸 안는가 하면, 이재정은 김정일이 하사한 생일상(2007.3.1)을 받고 감격했는가 하면, 김만복은 김정일 지시사항을 메모 하는 등 대북자세와 태도가 북에 굴종 내지 종속관계로 급속하게 타락 했다.

이명박정부에서 조차 노무현 사망 시 북괴 조전(弔電)과 김대중 사망 시 조문사절단 남파 제의를 판문점이나 적십자사 통일부 등 공식창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박지원 임동원이 도사리고 있는 김재중재단(아태재단)을 통해서 접수, 서해 직항로를 열어주는 친절까지 베풀음으로서 김정일은 물론 북괴 통전부와 조평통 간첩 지도원들의 간을 배 밖으로 나오도록 만든 것이다.

이승만의 김일성 배격, 김일성의 김구 냉대, 박정희 특사 이후락의 북괴 권력 서열2위 부주석 김영주를 상대로 설정 김일성과 담판, 전두환 특사 장세동 김일성과 과거사 담판, 노태우정부 정원식 총리 대 김일성정권 정무원 총리 연형묵 관계가 김영삼정부 경제기획원 부총리 대 조평통부부장으로 격하, 김대중, 노무현정권 장관 대 내각참사(국장)급 통일전선부대남간첩 지도원으로 급속하게 추락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북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정상화의 첫 단추는 격(格)에 안 맞는 비공식 비정상적인 접촉 관행부터 깨부수는 데에 있다. 남북관계는 극단적인 비난 비방, 욕악담 저주와 핵전쟁 협박, 무차별 도발위협, 응석과 생떼쓰기, 막무가내 식 벼랑 끝 주장과 일방적인 퍼주기와 달래기위주의 접촉 행태를 용인하거나 방관 방치해서는 건설적인 남북관계 정립이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개최키로 했던 '남북당국회담'에서 비당국자인 북괴 조평통 서기국장의 대표 단장 격을 인정치 않은 박근혜정부의 태도는 백번 타당한 것이며, 이로 인한 회담결렬(보류)파행은 정상적인 남북관계 정립을 위한 불가피 한 성장통이다.

현 상황에서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21세기 문명사회에서 확립 된 국제적 관행과 규칙(rule), 엄격한 국제정치 외교적 기준(standard)을 무시하는 북괴의 일방주의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하고도 위험한 것은 대한민국 내부에 활거 준동하고 있는 종북반역세력의 '위수김동' 속성과 '친지김동' 행태로 인한 주사파 잔당의 김정은 감싸기이다.

좌편향 야당과 폭력적인 종북반역세력과 일부 언론이 북한의 주장과 논리에 입각해서 북괴를 편들고 대한민국 정부를 적대시하는 것은 국가를 모독하고 국민을 능멸하는 반역이다. 종북세력을 시급히 발본색원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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