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밤 고요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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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밤 고요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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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영광이요 세상에는 평화로다

 
“야소 기리사독(耶蘇 基利斯督)”은 중국에서 쓰기 시작하여 한국, 일본으로 퍼져나간 구세주의 한자 음역이다. 이것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었다. 그러나 기리사독은 기독으로 약칭되어 기독교, 즉 그리스도교의 명칭으로 남아있다.

아기 예수는 외양간 여물통에서 탄생했다. 외양간의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닮았다. 가축은 꿈틀거리는 인간의 욕정 같다. 강보에 싸인 예수는 짐승의 먹이로 주어진 모습이다. 유대인들은 어린 숫양을 잡아 성결의 제물로 바쳤다. 성탄은 구원의 표적이었다.

Merry X-mas.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다. 신과 인간이 둘이 아니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거룩한 밤을 맞이한 목자에게는 끝없이 고요한 밤이었다.

그리스도교는 4세기에 이르러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주요 거점에 흩어져 있던 초대교회들은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통일되었다. 즉 “예수는 참 신이며 참 인간이다.” 이 믿음에 따라 마리아를 “신의 잉태자”로 추앙한 서방교회는 정통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생모”로 받든 동방교회는 이단으로 몰려 중앙아시아로 쫓겨났다.

7세기 당나라 황실의 존경을 받았던 경교(景敎)는 동방교회 중의 하나였다. 경교는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도교와 불교의 용어를 차용했고, 예배당과 의식을 토착화하였다. 그러나 신학의 뒷받침이 약해지면서 종래 불교의 한 종파처럼 비춰졌다.

삼국통일 무렵 왕성한 창조력을 발휘했던 원효(617-686)는 적어도 두 차례 당나라 유학을 시도했다. 이는 당시 첨단학문이던 현장(602-664)의 유식론(唯識論)을 직접 체험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추측되지만, 필자는 경교의 특이함이 원효의 지적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을 것으로 보고 싶다.

신라 김씨 왕조는 로마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김대성이 제작했다는 석굴암(752-774)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깊이 받았는데, 천신(天神)이 도왔다고 삼국유사는 지적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불국사 경내에서 8-9세기 경교의 유물로 보이는 돌십자가가 1956년에 발굴되었다.

한국천주교는 1784년을, 개신교는 1884년을 각각 교회개시로 잡고 있다. 불교 옷을 입은 동방교회의 전래를 공식화 한다면 그리스도교의 한반도 유입은 약 천년 정도 앞당겨야 될지 모른다. 신인일체의 신학이 비일비이(非一非異)의 해탈에 파묻힌 꼴을 보였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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