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굳은살과 응어리는 누가 풀어줄 수 있는가
마음 속 굳은살과 응어리는 누가 풀어줄 수 있는가
  • 박억종 논설위원
  • 승인 2012.11.16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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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속에서도 터널 밖의 넓은 세상을 생각하며 웃자

▲ 사진 작가 월리 로이스라의 ‘어린 파리지앵’ 작품
세상을 살면서 새삼 느끼는 게 하나 있다. ‘살면서 느는 것은 허리살 만이 아니라 진짜로 느는 것은 마음의 굳은 살’이라는 것을.

힘들고 고단한 삶이 만드는 마음의 굳은살은 다이어트로도 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이 힘겨울수록 얻게 되는 생(生)의 퇴적물이자 마음 아픈 기억과 쓰라린 체험을 고스란히 담아낸, 아니 축축하게 배인 삶의 처절한 이력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의 굳은살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무감각해지고 또 무덤덤해진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힘들고 슬픈 일을 겪어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매정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하는 식으로 세상을 향해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체념하고 비판하고 불평만 하는 인생이 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삶의 의욕도 떨어지고 세상 살기도 싫어진다. 마치 간경화가 간암으로 진행하듯 마음의 굳은살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마음의 암 덩어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제대로 느긋하게 휴식을 위한 자기 시간을 갖지도 못한 채 늘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과연 우리가 지금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또는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등등의 이유를 들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자체가 각자 스스로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암튼 사람은 태어나면서 어느 집안의 몇 대 손, 가족관계 또 마을, 지역, 국가 등이 결정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관계들이 ‘나’라는 것이 없었다면 아무런 의미조차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있고 서야 세상이 필요하고 존재하는 것이지 내가 없다면 나머지 그 어떤 것도 다 소용이 없다. 친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결국 그 속에 자신의 삶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서려 있는 까닭에 더욱 슬퍼지는 것일 게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만히 보면 외형적으로는 ‘나’라는 한 존재가 경미하고 힘도 없는 존재로 여겨지겠지만 모든 존재는 ‘나’라는 존재가 인정받으면서 유지해 가는 것이다. 모두가 그러하기 때문에 모든 이들의 각자 ‘나’인 존재는 존귀하고 위대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설파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삶을 더욱 더 향상시키는 말로 나와 모두를 위해 이 삶이라는 촛불을 태우는 가장 아름답고 밝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앎을 통해서, 자각을 통해서, 자신이라는 촛불을 태워 밝음을 일으키고 지속해 가는 일, 이것이야 말로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궁극의 이유며 그런 이유에서 볼 때 결국 세상 모든 생물들은 수도자다.

이 지경에 이르렀어도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가 되다보니 나이를 먹는 것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불의의 사고로, 또는 지병으로 하나 둘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친지나 친구 또는 이웃들을 볼 때마다 남은 인생이 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갈수록 늘어나는 평균 수명과 쥐꼬리만 한 연금 수령액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날법하지만 왠지 걱정은 되지 않는다. 미래의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며 속 끓일 필요가 없다. 걱정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또 해결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거진 푸른 숲을 보면서 앙상한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생각하며 추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푸른 숲 향기를 만끽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세상살이는 마음먹기, 생각하기 나름이란 각오로 살고 있다. 그저 일어나는 일에 있어 더 큰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감사하며 굳어져 가는 마음을 풀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을 부정적인 마음으로 보게 되면 뭐든지 뒤틀려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긍정적인 눈으로 보면 검은 구름 속에서도 한 줄기 햇살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든 데다 생각까지 늙고 부정적이라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가까이 있는 가족들조차 좋아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늘 오늘 하루를 첫 날이자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으로 굳어져 가는 마음을 커다란 풍선에 매달아 하늘 높이 날려 보내야 한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터널 속에서도 터널 밖의 넓은 세상을 생각하며 껄껄 웃어넘길 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부정적이고 변화 자체를 거부하기 쉽다. 눈이 쌓인 큰 나뭇가지는 부러지고 꺾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작은 나뭇가지는 자연스럽게 휘어져 눈을 아래로 털어버리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 본 모습을 유지한다.

200년 전 눈길을 걷던 노자는 눈 덮인 나뭇가지를 보고 형태를 구부러뜨려 변화하는 것이 버티고 저항하는 것보다 낫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변화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를 멈출 때 비로소 늙기 시작하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의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비우는 것이다.

월리 로이스라는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 중 ‘어린 파리지앵’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작품이 있다. 자기 키만 한 바게트를 옆구리에 낀 채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뛰어가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다. 그 소년에게서 마음의 굳은 살 같은 것은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다.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듯한 표정으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뛰어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그 아이 같은 마음을 닮고 싶을 뿐이다. 누가 ‘나’에게 내 키만 한 바게트를 들게 해줄 수 있을까? 누가 내 마음 속 깊이 박 인 굳은살과 그 응어리를 풀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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