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룰라, '그토록 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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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룰라, '그토록 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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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한 사람에 두 번 선물 주지 않는다”며 3선 일축

^^^▲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Luiz Inacio Lula da Silva)” 브라질 대통령은 12월 31일(현지시각) 8년간의 재임 기간을 만료하고 국민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아름다운 걸음걸이로 일반 시민으로 돌아간다.
ⓒ AP^^^
“신은 한 사람에게 두 번 선물을 주지 않는다. 다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퇴임을 앞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주변에서 오는 2014년에 다시 대권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주변 소문에 일침을 놓으며 한 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독보적인 모델, ‘삼바 신화의 주인공’이라 칭송을 받으며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Luiz Inacio Lula da Silva)” 브라질 대통령이 12월 31일(현지시각) 8년간의 재임 기간을 만료하고 남들이 박수칠 때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퇴장’을 하며 한 말이다.

일류대학과는 한 참 거리가 먼 초등학교 중퇴에, 구두닦이에, 금속공장의 노동자가 된 그가 쓰러져 가는 브라질의 대통령에 도전, 난관을 극복했다. 재임 기간 중 그에게는 좌파와 우파의 경계도, 노동자와 부유층의 대립도 없는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환한 웃음으로 대타협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8년간 브라질을 반석위에 올려놓으며 역대 최고치인 87%라는 경이적인 지지율(boffo approval ratings) 속에 홀연히 권좌에서 물러나게 됐다.

학식도 보잘 것 없고, 사회적으로는 하층 계층 출신의 룰라 대통령의 이 같은 아름다움은 남미 독립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시몬 볼리바르도’와 아르헨티나 빈민의 어머니로 떠받치던 ‘에바타’ 에바 페론도 룰라 대통령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1945년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코주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952년 상파울루주 산토스에서 초등학교 입학한 후 1958년 초등학교 중퇴하고 구두닦이를 시작했으며 1960년 금속공장 취업하고 1966년에 노동조합 가입했으며, 1975년 철강노조 위원장 당선된 후 1980년 노동자당(PT)을 결성하면서 정계에 입문해 86년도에는 드디어 연방 하원의원으로 진출 했고, 1989~1998년 3차례나 대선에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는 지난 2002년 드디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34대 브라질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2006년도에 재선에 성공했으며, 2009년도에는 2016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그의 대통령직을 성공리에 마치게 된 것이다.

그의 정치철학, 아니 철학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그저 모두를 위한 정치만을 생각하고 또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으나 주변은 그에 대해 비웃음을 보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보면 그는 도저히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도 없을 아주 볼품없고 학식도 없으며 그렇다고 탁월한 정치 경험도 없는 그저 그러한 인물이었다. 우리식 표현으로 쓰면 ‘개천에서 용(?)났다“는 정도에 불과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시작은 변변치 못했으나 그가 퇴임하는 시점에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러한 지지가 그로 하여금 3선 대통령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겠다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신은 한 사람에게 두 번 선물을 주지 않는다. 다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름답고도 멋진 걸음으로 일반 시민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는 국영라디오의 주례담화 프로그램인 “대통령과의 커피 한 잔”에서 고별 연설을 통해 “지난 8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지해 준 국민에게 감사 한다”며 어쩔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외신은 전했다.

룰라 대통령이 2003년 첫 대통령 취임 당시 브라질 경제는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편입됐듯이 300억 달러의 IMF 구제금융이라는 다 쓰러져 가는 경제상황을 고스란히 넘겨받았다. 그는 당시 “엘리트들이 해내지 못했던 것들을 선반공 출신인 자신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호언장담을 했을 당시만 해도 엘리트층들은 그를 아낌없이(?) 비웃어 댔다.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라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어김없이 노동자 편에 서서 사회적 대립만을 부추기게 될 것이라는 편견을 말끔히 씻어내며 그는 브라질의 고질병이라할 수 있는 사회적 갈등 치유에 서광을 비추기 시작했다.

제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룰라는 엘리트층의 비아냥거림을 넘어서며 갈등으로 점철돼 어지럽기만 한 브라질 사회를 놀랍게도 현실적 희망이 있는 사회로 바꾸는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는'경제성장촉진(PAC)'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재임기간 8년 동안 연평균 7.5%라는 실질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특히 ‘빈민퇴치 프로그램’을 착실하게 실천하여 2천900만 명을 극빈에서 구출했고 IMF로 사라져 가던 중산층을 3000만 명 이상으로 늘리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이 같은 성공 비결을 두고 브라질은 물론 세계는 그의 정신적 이념을 들고 있다. 즉 ‘실용, 포용, 상생, 스킨십, 협상’으로 대표되는 개념을 리더십의 도구로 이용해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는데 이견을 두지 않는다. 실용, 상생, 포용, 협상 등의 용어는 우리 한국에서도 늘 들어왔던 용어들이다. 문제는 룰라의 정직성과 실천 능력에 그 성공의 근원(根源)이 있는 것이다. 립 서비스에만 능숙한 정치가들은 이미 개념 정리가 잘 된 용어들을 포퓰리즘에만 이용하지만 룰라는 소신 있게 그리고 모두를 위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굳은 신념이 브라질의 오늘을 만들었고 그의 퇴진에 박수갈채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른바 소통을 통한 협상, 진정성(심장에서 우러나는 정치)이 듬뿍 담긴 스킨십의 지속적인 활용, 좌파니 우파니 하는 백해무익의 이념 갈등을 뒤로하고 실용적 관점에서의 국가 경제 살리기, 이념에 관계없이 정책 공조를 이루며 합일점을 도출해내는 솜씨, 못사는 이와 잘사는 이들 모두에게 그들에게 적합한 정책 지원책 마련 등 사리사욕, 정파의 이익을 철저히 배제한 룰라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가 국가와 자신의 성공을 이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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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2010-12-31 13:51:31
부꾸럽다 한국이.
창피하다 한국이
걱정된다 MB가.

익명 2010-12-31 14:12:41
대단한 분이네요 우리나라에는 언제나 저런분이 나오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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