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명 사망에 학살? 그것부터 터무니 없다
166명 사망에 학살? 그것부터 터무니 없다
  • 조우석 주필(평론가)
  • 승인 2020.06.30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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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칼럼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난 40년 사람들은 광주학살 광주학살을 떠들어왔다. 그래서 전두환을 광주학살의 주범이니 살인마라고까지 비약해서 말해오지 않았느냐? 저는 그것 자체가 거대한 허구이거나, 터무니 없는 정치적 주장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의문을 풀어준 것이 지만원 박사의 새책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이다.

5.18역사가 흘러온 변천을 담고 있는 그 분이 책이다. 저는 이 책을 보고 그동안 제 의문이 맞았구하 하고 오늘 자신있게 말하지만, 40년 전 그때 광주에서 학살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걸 받아들여야 진실이 보이는데, 그 이유를 세 가지로 풀어보려 한다.

첫 번째,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학살에 비해 민간인 166명이라는 숫자는 뭔가가 어울리지 않는다. 일테면 광주사태 9년 뒤인 1989년 6월 중국에서 일어났던 톈안먼 사태와 광주사태를 맞비교해보자. 수도 베이징에서 중국공산당에 맞서 학생과 시민들이 일어났던 그 사건에 당시 중국 지도부는 장갑차와 탱크까지 동원해 유혈 진압을 강행했다.

당시 얼마나 죽었을까? 중국의 공식 발표는 “200명이 숨졌다는 것이지만 미국과 영국 정부가 해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민간인 사망자 수만 1만 명이 넘는다. 그래서 천안문 사건은 지금도 뜨거운 감자인데, 바로 이런 게 전형적인 학살에 해당한다.

1980년대에 일어난 다른 나라의 학살도 그렇다. 중동 시리아에서 1982년 2월 발행한 하마 학살의 경우 4만 명 가까운 민간인이 죽었다. 이라크에서도 당시 독재자 담 후세인이 1986~1988년 2년간 무려 18만 2000여 명 학살을 학살했다. 시리아 4만 명, 이라크 4만 명, 중국 천안문 사태 1만 명 민간인 사망, 이런 게 바로 학살이다. 이런 역사 속의 학살에 비해 광주사태 당시 민간인 사망자 166명이라는 숫자는 무언가 어울리지 않고, 괜히 부풀려서 학살 타령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충격적인 이유를 밝히겠는데, 40년 전 광주에서는 학살 자체가 없었다. 그게 진실이다. 즉 광주사건 10일 동안 대한민국 군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행위는 벌어진 바 없었다는 얘기다. 단 한번도.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역시 통계다. 아주 쉽다. 10일 동안의 충돌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군경 사망자가 27명이고 민간인 사망자는 166명이다.

물론 이 166명 자체가 일어나서는 안 될 불행이지만, 군경 사망자와 민간인 사망자의 비율은 1대 6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 수치가 무얼 말해줄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은 없었다는 얘기다.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졌는데, 저쪽을 6명 죽일 때 반대쪽은 1명씩 죽었다? 말이 안되지 않느냐? 즉, 40년 전 광주에서는 쌍방간 교전을 포함해 밀고 밀리는 충돌과정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을 뿐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군경에 의한 일방적 폭력 행사와 민간인 떼죽음의 현장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분분한 얘기인 헬기 사격도 마찬가지다. 숱한 과거사위에서 다뤘지만, 사격을 했다는 사람이 없고, 맞았다는 이도 없었다. 만약 헬기 사격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면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기백명에서 기천명이 되었어야 옳았고, 군경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는 게 맞았다. 군경 사망자 27명과 민간인 사망자 166명이란 통계보다 더 뚜렷한 게 실은 부상자 통계다.

당시 민간인 부상자는 377명이며, 군경 부상자는 265명으로 양측 피해는 거의 어슷비슷하다. 계엄군이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민간인이 당하기만 했다는 식의 주장은 역시 허구임을 또 한 번 보여주는데, 디테일을 봐도 그렇다. 민간인 사망자 166명 중 계엄군 보유 M-16 소총으로 사망한 사람은 36명뿐이다. 그럼 나머지 80명은 어떻게 죽은 것인가? 그들은 카빈 소총이나 M-1 소총 등 무기고에서 탈취했던 시위대의 무기로 희생당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 오인사격이나 안전사고 등을 예상할 수 있고, 민간인 틈에 숨어있던 각종 수상한 자들이 이간질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그리고 오늘 결정적인 이유 즉, 학살이 아닌 세 번째 이유를 밝힌다. 사실 학살(massacre)이란 일반적으로 ‘가혹하게 마구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단 엄밀한 정의, 학문적 정의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고 한다. 이것은 학살이고, 저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긴 어렵다는 뜻인데, 대충 합의된 것은 국가나 국가기관 같은 정치적 주체에 의해 상대적으로 무력한 이들이 의도적으로 무차별 집단 살해하는 상황을 뜻한다. 인종청소 등도 모두 대충 그런 뜻이다. 그럼 이 기준에 비춰 40년 전 광주사태를 냉정하게 다시 판단해보자.

과연 국가나 국가기관 같은 정치적 주체에 의해 상대적으로 무력한 이들이 의도적으로 무차별 집단 살해하는 상황이 벌어졌던가? 아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니다.

반면 소설가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경우 폭동 초기에 공수부대원들이 “쇠심이 박힌 살상용 특수 곤봉”을 휘둘렀고(36쪽), 이 장면을 본 어느 할아버지가 “저놈들은 국군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쓴 악귀들이야”라며 통곡을 했다(51쪽)고 떠들어댔다. 그래서 광주의 “온 거리는 피의 강, 울음의 바다가 되었다”고 호들갑 떨지만,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건 대남선동용으로 평양이 펴냈던 책을 베끼다시피한 결과일 뿐이다.

오늘 얘기를 종합하자면, 40년 전 그날 광주에서 이른바 학살은 일어난 바 없다. 있었다면 무장폭동을 했던 사람들의 과잉 시위가 문제였고, 계엄군에 의한 선제적 발포를 포함한 과잉진압은 없었다. 때문에 학살행위가 발생한 바도 없다. 광주학살 광주학살을 떠들어왔다. 그래서 전두환을 광주학살의 주범이니 살인마라고 말해오지 않았느냐? 저는 그것 자체가 거대한 허구라는 걸 재확인한다.

40년 전 광주 사건의 이런 진실에 대해 그동안 누구 하나 언급하지 않았다는 게 정말 두려운 일일 뿐이다. 그점을 지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진실을 말하자는 제안이다. 다음 회에는 광주사태에서 왜 공권력에 의한 발포 명령 따위만을 떠들어대지 도심에서 무장 폭동이 일어났을 경우 국가는 왜 총을 아예 쏠 수 없는 것으로 전제를 하는지를 따져보겠다. 폭도를 제압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게 보다 큰 정의이고, 국가의 임무가 아니냐는 당당한 제안이다.

※ 이 글은 30일 오전에 방송된 "166명 사망에 학살? 그것부터 터무니 없다"란 제목의 조우석 칼럼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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