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의 부재(不在)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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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의 부재(不在)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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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흥함을 부러워하지 마라.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곧 스러질 것이요.’

▲ 김 인호(金寅鎬, KIM In-Ho Stephen, Ph.D) 한양대 명예교수/연구소장/학장/대학원장/Dynamic Management Society 회장 ⓒ뉴스타운

필자가 항상 되새기는 경구(警句) 가운데 하나는, ‘이 세상에 의(義)로운 사람, 선(善)한 사람, 단 한명도 없다.

모두가 비뚤어져 쓸모없게 되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며, 그들의 혀는 거짓을 말하고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흐르니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하다. 그들의 발은 피 흘리는 일에 날쌔며 가는 곳 마다 파괴와 비참만을 남긴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눈에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라는 것이다.

내가 이 경구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졸업 후 공군소위로 임관한지 얼마 지난 어느 날 내가 타고 있던 공군장교버스가 서울발 하행선 열차에 박치기 당한 사고에서 필자가 입었던 상처를 치유하기위해 잠시 쉬고 있을 무렵 그 후유증이 거의 가시어 가던 때였다.

필자가 위의 경구를 처음 접하는 순간, 아무리 그래도 이 세상에 의로운 사람, 선한 사람이 단 한명도 과연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라는 반문(反問)이었다. 

그러다 차츰 세상을 살아가면서‘어떤 이는 순조로운 삶을 사는 반면에 또 다른 이는 가시밭 고난의 삶을 살고 있다.’는 터득이었는데 이때 필자에게 비쳐진 두부류간의 차이는 만드신 분의 법을 따르는 이에게는 보이진 않지만 어떤 은총이 따르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만드신 분의 법이 있는지 조차도 아예 모르고 있다는 인식이었다.

그래서 만드신 분의 법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이라면 의로운 사람 선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깨달음이 점점 명확하고도 명쾌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런 깨달음 속에서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그리고 옳고 그름과 관련한 성찰의 계기가 필자에게 생겼는데 이를 잠시 얘기해 보고자 한다.

2000년대 초반 필자와 집사람이 같이 겸임교수로 있는 중국 연변의 한 대학교에 특강 차 갔을 때 일이다. 강의 일정이 끝나고 비교적 한가로운 시간을 맞아 근처 관광지 몇 곳을 돌아보고 그곳 안내하던 사람의 제안으로 북한에서 운영한다는 식당엘 가게 되었다. 손님들이 식사하는 중에, 마치 우리나라 5-60년대 초등학교 학예회를 연상케 하는 노래와 춤으로 식욕을 돋으려는 그곳 식당의 여종업원들은, 사실여부는 모르겠지만 그곳 설명으로는, 평양 어느 여자대학교에서 선발되어 왔단다.

필자와 집사람은 그날이 금요일이라 특별한 지향이 있어서 육류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를 몇 번이나 확인하며 주문하였고 또 주문 받는 여종업원도 절대로 고기가 안들아 가는 거라며 여러 번 확인해 주었는데 얼마 후 우리 앞에 갔다 논 음식에는 버젓이 고기가 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문받은 여종업원을 불러 여기 고기가 들어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만 고기가 안 들어있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젓갈로 들어 보이며 이게 고기 아니고 뭐냐니까 ‘그거 고기 아닙네다’ 한다.

그래서 재차 아니 이거 고기 아니고 뭐냐, 하니까 천연덕스럽게 ‘아아 그거 고기 아닙네다, 하면서 끝내 고기가 안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임자를 좀 불러달라고 했더니 별별 말을 다하며 이리저리 빼길 래 직접 책임자인가하는 한 남자를 불러 자초지종 얘길 했더니만 그 역시도 고기가 안 들어간 거란다. 뻔히 눈으로 보면서도 계속 아니라고 우겨대는 그 막무가내를 보면서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뻔히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저렇게 해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니 저들이 과연 인간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끔찍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저들이 저럴 정도로 진실과 정직과 먼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일삼는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랴?

그래서 우릴 안내한 사람에게 왜 이런 델 데리고 왔느냐니까, 그는 저런 거짓말정도는 당시 연변지역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란다. 왜 사람들이 저렇게 되었느냐고 하니까 개방 전 공산당 시절엔 거짓말을 전술적・예술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학습 받곤 한 게 몸에 베인 것 같다는 얘기다. 살아보진 않았지만 공산당 치하 생활이 어떠했을까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그곳 교수에게 거짓말을 전술적・예술적으로 하라고 배웠는지를 확인하였더니 구공산당 치하에서는 수도 없이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그걸 학습 받았단다.

필자는 참으로 기가 막혔다. 공산당 치하란 참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기막힌 곳이었음에 틀림없었구나. 온통 거짓말들이 넘쳐나니 거짓말에 익숙해지든가 둔감해지지 않으면 진실과 정직을 큰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살 수 없는 생지옥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었던 기억이 난다.

계속 거짓말로 속이고 속는 세상일 테니 그야말로 속이는 자(deceiver)라는 뜻을 지닌 사탄(Satan)이 지배하는 곳임이 분명했고 상호신뢰란 찾아볼 길이 없는 그야말로 불신의 심연 속에 푹 잠긴 참으로 생지옥(生地獄)이었을 것으로 인식되었다.

연변 북한식당에서 황당한 경우를 체험한 그 다음날 필자는 연변 중소(中小)기업 CEO 약 100여분을 상대로 ‘전환기 시대의 기업 CEO, 그 역할과 사명’이란 제목의 특별강의를 하였다.

강의요지는 공산권 치하의 통제된 사회에서 글로벌 개방경제로 편입되는 상황에서‘기업은 거짓이 아닌 진실을 바탕으로 고객의 선(善)한 니즈를 혁신을 통해 옳은(right) 방법으로 충족시켜야한다’는 것이었다.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데 악(惡)한 니즈까지도 충족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또한 설령 선한 니즈일지라도 이를 옳지 않은 그릇된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것은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회에는 해악을 주는 일이므로 그런 기업은 결코 오래갈 수 없을 것임을 강조하는 강의였다.

그러면서 ‘옳은’이란 말의 의미부터 이해해 보자며 다음의 질문을 던졌다.

‘10 위안과 100 위안을 빚진 두 사람이 빚을 갚으려고 애를 써도 갚을 수가 없음을 알고 돈을 빌려준 사람이 그 두 사람의 빚을 모두 탕감시켜주었다면 두 사람 중 누가 더 감사해 할까요?’

이 물음에

-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다, 
- 더 적게 탕감 받은 사람이다, 
- 둘 다 모두 똑같이 감사할 것이다, 
- 금액의 크기에 대한 각자의 인식의 차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 감사할 필요가 뭐 있느냐? 누가 탕감시켜 달라고 했느냐? 
등등의 답변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탕감시킨 하나의 사실(fact)을 놓고서 앞의 질문에 이렇게 여러 의견이 나오니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

우선, 지금 나온 여러 의견 중에는 옳은 의견이 아예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니까 모두 수긍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만약 그 여러 의견 중에 옳은 의견이 있다면 나머지는 무엇이겠는가를 물으니 그른(wrong) 의견들이라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 했다.

그렇다면 이들 중에 과연 옳은 것이 있으며, 만약 있다면 어느 것이 옳은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를 물으니 여기저기서 각기 자기가 주장한 의견만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장내는 갑자기 어수선한 혼재(混在)의 장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계신대로 각자의 의견을 모두 존중해 주어야 한다면, 과연 옳은 의견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지 않겠느냐, 하니까 모두 그렇다고 동감을 표하는 것이었다.

옳고 그름에 관한 한, 이와 같이 각자의 의견을 모두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이른 바 다원주의(pluralism)를 따라서는 결코 옳은 답을 얻을 수 없고 또한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절대적으로 그른 것도 없다는 식의 상대주의(relativism)를 따라서도 역시 옳은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도 보여주는 장면이 연출되는 대목이었다.

따라서 옳은 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원주의나 상대주의가 아닌 절대적 관점의 가치판단기준이 필요할 것 아니겠는가, 라고 하니까 모두 그렇다고 동감을 나타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옳고 그름에 관한 절대적 가치판단기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앞의 두 사람의 빚 탕감 이야기는 예수라는 분이 당신 제자들에게 물으신 성서의 한 대목임을 밝히며, 베드로라는 제자가 나서서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더 감사할 것이다,’라고 답하자 옳은(right) 생각이다, 라는 답을 예수라는 분이 주심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옳음에 대한 절대적 가치판단기준을 얻을 수 있음을 전했다. (물론 이 대목은 하느님의 존재와 하느님의 육화(incarnation)에 대해 견해를 달리 하는 독자일지라도 논리적으로는 쉽게 이해가 될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요컨대 일단 탕감 받은 두 사람은 모두 다 감사하지만,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더 감사할 것이라는 게 옳은 의견임을 예수라는 분이 확정해 주었다는 설명에, 처음에 다른 의견을 답했던 사람들도 모두 명쾌하다며 공감을 내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내친 김에 하나만 더 생각해 보자며 ‘여러분이 만약 10 위안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할 때, 100 위안 탕감 받은 다른 사람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에 대해 솔직하게 답해 달라며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 화난다, 억울하다, 라고 답하는 많은 사람들과 
- 아무렇지도 않다는 소수 사람들과 
- 딴 사람이 더 탕감 받은 게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런데도 괜히 자기마음도 흐뭇해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로, 갈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각 부류별로 나누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아주 극소수이긴 하지만 남이 잘되니 자기 맘도 기쁘다는 사람들로 이 세상이 가득 차 있다면 그곳은 어떤 곳일까요, 를 물으니 일제히 천국(天國)이요 한다.

둘째, 남이 얼마를 탕감 받든 자기는 상관 않는다는 사람들로만 이 세상이 가득 차 있다면 어떨까요, 물으니 너무 이기적인 세상이다, 자기만 아는 세상이다, 라는 등의 의견이 나오길레, 그렇다면 그들 간에 시기 질투 분쟁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재차 물으니, ‘아니오.’하며 일제히 큰소리로 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천국에서도 시기 질투 분쟁이 있을까요 하고 물으니, 아니오, 한다. 그렇다면 남이 얼마를 탕감 받든 자기는 상관 않는다는 사람들은 천국의 가장자리에는 속할 것 아닌가요, 하니까, 예, 라고 답한다.

셋째, 자기도 탕감 받았으므로 감사해야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가 더 탕감 받은 걸 보니 화난다, 억울하다, 라고 느끼는 사람들로만 차있는 세상은 과연 어떤 곳일까요, 하고 물으니 모두 지옥(地獄)이요, 한다.

탕감 받은 것은 탕감금액의 다과(多寡)에 관계없이 모두 자비(charity)를 입었으므로 모두 감사할 일이지만 더 많이 탕감 받으면 더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설령 다른 사람이 더 탕감 받았을 경우 함께 기뻐해주질 못할지언정 억울하다 화난다, 라고 하는 것은 남 잘되는 걸 보고 배 아파하는 아주 못된 불의(injustice)한 악한 마음 아닌가요, 라며 요약하는 대목에서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경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이 얼마를 탕감 받든 상관 않는 사람들과 남이 더 많이 탕감 받으니 자기도 기쁘다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며, 자기도 탕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이 더 탕감 받으니 억울하고 화나서 못살겠다는 사람들이 갈 곳은 지옥이라고 정리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며 강의를 끝내자 일제히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 라고 외치던 그네들로부터 그들이 얼마나 옳고 그름에 대해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지가 필자에게 강하게 전달되어 왔다.

오랜 동안 전술적・예술적으로 거짓말을 하도록 학습되어 온 사람들에게 진실(truth)을 강조하며, 옳고 그름에 대해 그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필자의 선입견과는 달리 인간은 누구나 옳음과 진실의 가치를 갈구하는 열망을 내면에 갖고 있으며 이를 논리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지적역량도 다 하늘로부터 부여받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구 공산권 하에서 진실이라든가 옳음이라든가 와는 관계없이 거짓과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면서 살아오다가 중국경제가 뜨기 시작하자 거의가 오직 돈만 벌기에 혈안이 되어 아무 가치관도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 있던 터인데, 갑자기 옳은 이란 말이 들리니 너무 감격했다며 감사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도 19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란 말의 등장과 때를 같이하여 ‘짜가(가짜를 거꾸로 표현한 말임)’라는 노래가 나와서 한 때 냉소적으로 불리어지다 어느덧 슬그머니 사라지더니 생전에 거짓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나온 이후부터는 급속도로 우리나라가 거짓과 거짓말의 대국(大國)으로 치달아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권의 등장 1년 수개월여를 지나면서 문정권이 보여 온 키워드는 그간 여러 정황과 정보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드루킹 수사에서 보여주듯이 거짓, 허위, 날조, 조작에 의한 문정권의 대선무효와 국권찬탈음모가 점점 드러나고 있는 형상이다. 한마디로 ‘그거 고기 아닙네다.’로 대변되는 악한 무리들의 역적 여적 이적 범죄임이 폭로되고 있는 형상이다.

거짓과 거짓말은 불완전한 인간이 지닌 악한 심성의 산물이지만 자유의지로 악을 누르고 선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기에 ‘하느님의 법을 (자유의지로) 따르는 이에게는 만사(萬事)가 순조롭다는 말씀과 함께,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계명과 ‘악인의 흥함을 부러워하지 마라.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곧 스러질 것이요.’ 라는 계명들이 하늘로부터 주어져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만드신 분의 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삶이 순조롭듯이, 이 땅의 참 주인인 애국국민들이 작금의 화급한 안보위기상황에서 각자자신의 잘못과 죄를 회개하며 전능하신 하느님의 권능과 정의의 칼끝에 모든 것을 맡기고 진실과 정직과 정의로 무장하고 거짓과 허위와 불의와 악을 일삼는 도둑놈들을 쳐내는 선악전쟁에 임할 때 태극애국세력은 반드시 승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드신 분의 법을 따를 때에는 항상 전능하신 그 분께서 함께 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김 인호(金寅鎬, KIM In-Ho Stephen, Ph.D)
한양대 명예교수/연구소장/학장/대학원장//Dynamic Management Society 회장

지난 50여 (1965-2015) 년간의 대한민국 산업화 경험을 이론화한 Dynamic Management View 이론의 주창자. Dynamic Management View 이론과 실용방법은 현재 중국 북경대와 천진 난까이(Nankai) 경영대 석・박사과정에서 정규과목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Dynamic Management View관점의 한국대기업인 재벌구조(Chaebol Structure)의 진화논리가 세계유수출판사인 영국 Wiley 경영백과사전 (3판, 2015)에 실려 현재 전 세계로 보급중임.

주요논문으로는 Dynamic Management View: Logic of Profit Seeking based on the Adaptation to Technological change and Needs Evolution through Needs-Focused Innovation, Technology Analysis & Strategic Management (SSCI, 2017)와 Direct Causal Mechanism of Profit: Dominant Paradigm of Profit Seeking, Technology Analysis & Strategic Management (SSCI, 2018)가 있음.
주요저서로는 Dynamic Enterprise Strategy (Peking Univ. Press, 2013), Why Industrial Hegemony Shifts (Lambert Academy Publishing, 2010), Dynamic Management Theory (Hanyang Univ. Press, 2008), 다이나믹 매니지먼트과 기업일반이론 (비봉출판사, 우수학술도서), 세계 산업주도권 이동원리(한국경제신문사, 1995), 기업파워는 어디에서 오는가? (한국경제신문사, 제7회 전경련 자유경제출판문화상, 1996)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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