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KBS 명예,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자막 방송 사고에 대한 조합의 요구는 단순 명확하다. KBS의 명예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KBS를 삼류 방송사로 전락시킨 외주 제작사를 일벌백계해 타 외주사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고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보도 건과 길환영 사장 건 등으로 KBS의 국민 신뢰도가 추락한 상황에서 금번 자막사고는 KBS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이것을 과연 일반적인 방송사고로 덮고 갈 수 있겠는가.

조대현 사장은 취임사에서 ‘국민이 원하는 방송’을 만들겠다고 공언하였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공정성이 가장 우선일 것이다. 또한 공영방송으로서의 기본과 원칙에 충실히 지키는 것을 바랄 것이다. 이번 사고는 단순한 자막실수가 아니라 시청자를 바보로 만들고 우롱하는 처사였으며 ‘국민이 원망하는 방송’의 본보기로 꼽을 만한, 대단히 우려스러운 사고였다.

오늘 오후 교양문화국에서 해당 제작사 징계와 관련해 운영위원회가 열린다고 한다. 사태의 파장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는 교양국 차원이 아니라 범KBS 차원에서 징계와 후속 조치가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조사장은 현 사태를 가벼이 보지 말고 국민의 신뢰가 걸린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바란다.

심의실은 대체 무엇을 하는 조직인가?

KBS내에는 방송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단계의 프로세스가 존재한다. 외주 제작사 자체검토와 KBS 담당PD의 사전 모니터, 그리고 심의실의 사전 심의 기능이다. 모든 단계의 검증절차가 무너졌지만, 무엇보다 마지막 거름장치인 심의실의 사전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걸•세>는 평소에도 인기 프로그램이었지만, 문제의 방송편의 경우 교황 방문을 맞아 특집으로 제작한 것으로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았다. 그런데 심의실은 이런 엄청난 방송사고가 발생한 과정에서 전혀 스크린 기능을 하지 못했다. KBS의 명예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데에 심의실 역시 방조한 꼴이 된 것이다.

심의실은 평소 방송사고의 발생 시, 심의평정회의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징계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사고의 경우처럼 심의실의 실책도 명백한 상황에서 과연 심의실이 어떤 징계절차를 밟을지 사뭇 궁금할 뿐이다. 심판과 징계의 잣대가 사고 관련자에게만 향할지, 더욱 확장된 잣대로 자기반성의 기회로 삼을지 두고 볼 일이다.

‘한건주의식 허위날조’, 교양국 공식의견인가?

인터넷 찌라시나 정규 언론매체들이 어떻게 폭로했던 간에 조합이 근거로 삼은 것은 <걸세>홈페이지에 게재된 함형진 교양국장의 사과문이다. 정기윤 CP가 밝힌 것처럼 교양국장은 ‘해당 외주사에 대해 <걸어서 세계속으로> 제작 금지 조치....... 내부 책임자에 대해서 사규에 따라 적법한 조치를 내릴 방침입니다’ 라는 사과내용을 밝혔다. 대외에 공표된 국장의 사과문을 근거로 성명서를 작성한 것이 무슨 허위날조란 말이며, 한건 해보자는 막가파식이란 말인가. 외부에 공표된 교양문화국장의 사과문은 곧 KBS의 공식적인 의견 아닌가. 추가적인 프로세스가 있다는 것을 일반 시청자와 국민들이 어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하물며 이번 사고에 대해 고개를 들지 못하는 KBS구성원들조차 추가 징계 프로세스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교양문화국의 공식 사과문에는 추가적인 징계 프로세스에 대한 한 치의 언급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섣부른 사과문 게재가 논란의 출발점이다. 차후에 어떤 모범적인 수습책을 준비하고 실행할지 모르지만, 사태를 수습할 첫 단추가 엉성하게 끼워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KBS노동조합은 이번 방송사고가 KBS의 명예를 심대히 훼손하였으며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는 것이기에 해당 제작사를 중징계해야 마땅하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KBS가 공정성과 공영성의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본 역할이다. 부디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역할 수행을 곡해하지 말라. 오히려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은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고장 난 부분을 신고하고 고치려고 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 본 노동조합은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고의 책임을 명확히 부과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징계를 기대하는 바이다.

2014.8.18

교섭대표노조 KBS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