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의 곡학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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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의 곡학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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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무현씨는 지난 대선 유세에서 “남북대화만 잘 되면 다른 건 다 깽판 쳐도 괜찮다”는, 경박한 막말을 했습니다. 지금 남북대화가 잘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나라가 깽판 되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IMF때보다 경제가 어렵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고,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며, 신용불량자가 300만 명을 넘어서서 400만 명을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공교육 현장처럼 제조업도 붕괴조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노무현씨는 대선 유세와 선거홍보책자에서 ‘매년 경제성장률 7%’를 달성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지금은 3%대 달성도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하여 공무원 2만여 명이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한 시점에서, 대통령은 뮤지컬 관람으로, 경제부총리는 골프라운딩으로 희희낙락이었습니다. 청와대는 예약이었다, TV를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하고, 경제부총리는 기사화하겠다는 언론사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하기까지 했는데, 천박한 철부지 노릇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상부의 명령을 받고 비상근무 중이었던 공무원들은 뭡니까? 노 대통령은 그 동안 뭣 하러 바쁜 공무원들을 불러놓고 특강을 했습니까? ‘직무에 충실하지 않은 공무원들은 개XX들’이라는 말까지 인용하며 질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제대로 이끌어보겠다는 애국의 모범을 나타내고 있었다면 경제부총리가 그렇게 방심하고 안일한 자세를 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사명의식이 있는 리더들이라면, 비상근무 중이었던 부하 공무원들을 찾아가서 동고동락했을 것입니다. TV를 보든 연극을 보든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연극을 보는 것과 공무원들을 찾아가서 격려하는 것은 다릅니다. 골프치기와 연극관람과 산해진미에 소비할 돈으로, 김밥이라도 주문하여 재해대책본부를 방문했더라면 공무원들이 훨씬 의욕적으로 야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실천이, 천 번의 특강보다 분위기 쇄신에 효과적일 것입니다. 과연, 그 시간에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겠습니까?

지난 몇 개월 동안, 한 부서에서 옳다며 발표한 정책을 다른 부서에서 말도 안 된다며 부정하는 짓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외교통상부와 문화부, 문화부와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와 교육부, 교육부와 문화부, 보건복지부와 재정경제부, 산자부와 청와대 참모 등이 사전협의도 없이 서로 대립되는 목소리를 내며 좌충우돌했습니다. 송두율 교수 문제와 관련해서도, 국정원은 혐의가 인정되어 출국 정지를 요청하고, 법무부 장관은 송 교수가 ‘김철수’라고 해도 처벌은 곤란하다고 시사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지혜롭고 창조적인 리더십이 요청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건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 각료들이 갈팡질팡하며 정신 나간 아마추어리즘을 나타내고 있기에 수많은 국민들이 헷갈리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던 중, 이민열풍의 대열에 들어서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만으로도 이 나라가 깽판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요즈음 ‘친북’세력들이 ‘민주진보개혁’이라는 탈을 쓰고 의인행세를 하며 할보하는 판이니, 어찌 이 나라가 깽판이 되었다고 아니 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친북’이란 것이 ‘민주진보개혁’과 공존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유유상종이란 말도 있듯이, 심각하게 반인륜적인 체제와 불협화음 없이 어우어질 수 있다면 ‘과격분란야만’세력입니다! 부정해야 할 것을 긍정하고, 거짓을 진실이라고 우기고, 악이 선의 탈을 쓰고 목소리를 당당하게 높일 수 있는 세상이라면, 이미 비참한 깽판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적화통일이 궁극적인 목적인 북한 체제와 적대적으로 다퉈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싸우는 것은, 피차에 최악의 피해를 주는 것이니, 싸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가급적이면 교류하며 화해를 넓혀나가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그러나, 긍정할 수 없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지언정, 긍정하는 짓은 반드시 삼가야 할 것입니다. 적화통일의 본질을 강화시켜주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기에, 북한의 적화통일 역량, 다시 말해 군사력을 강화시켜주는 멍청한 오류는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2. 독일 뮌스터 대학의 송두율 교수가 입국하는데, ‘해외민주인사’가 들어왔다고 난리법석이었습니다. 송 교수는, 유신 체제와 전두환 체제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민주인사’라고 불리는 모양인데, 문제는 1987년 이후의 행적입니다. 송 교수가 북한 노동당의 고위 간부인 ‘김철수’냐 아니냐, 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북한의 초청을 받고 여러 차례 북한을 드나들 수 있었던 ‘친북인사’라는 점입니다.

1987년 이전이든 이후든, 남한과 북한을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처참한 독재체제입니까? 독일에 있었으며 북한을 드나들었으니,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텐데, 박정희와 전두환을 경멸했던 학자가 어떻게 김일성-김정일 체제와 그처럼 우호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까? 박정희와 전두환을 경멸했다면, 그 수백 배 수천 배 이상으로 북한 독재체제를 경멸하고 북한 민주화에 헌신했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랬다면, ‘민주인사’라는 칭호가 어울릴 것입니다!

송두율씨는 “내가 (한국을) 떠날 때는 한강 다리가 하나였는데 지금은 몇 개나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리들이 어떻게 건설되었습니까? 어떤 리더십이 있었기에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바로, 송두율씨가 타도하고자 했던, 박정희였습니다! 박정희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훨씬 오랜 세월 동안 처참한 보릿고개를 넘나들며 수많은 국민들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으며 목숨을 잃어야 했을 것입니다.

민주화에 헌신했다는 YS와 김대중씨가 정권을 잡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YS가 정권을 잡았을 때, IMF사태가 터져서 대한민국 전체가 처참한 혼돈에 빠져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으며 수많은 가정이 해체되었습니다. 김대중씨는 국민연금, 의약분업, 교육, 공적자금 집행 등에서 졸속정책을 오기로 밀어붙이며 국정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으며,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자살과 타살 사태가 속출하게 만들었습니다. 졸속 대북정책에 현대를 끌어들여 경영인이 자살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YS나 김대중씨의 핵심측근이나 아들들은 부정부패와 결탁하여 구린 돈을 먹었다가 숱하게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차라리 독재라고 비판받았던 세력은 경제살리기에 역량을 집중했고 생산성의 획기적인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대북정책에서 북한의 적화통일 역량을 강화시켜주는 자살행위를 철저히 경계하였습니다.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무리들과 달리, 이른 바 북괴의 남조선 혁명역량을 강화시켜주는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민주화에 헌신했다는 세력이,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독재세력보다 무엇이 잘났습니까?

김대중씨는, 국민의 돈 ‘5억 달러+알파’를 도둑질하여 김정일에게 상납함으로써, 김정일이 신형전투기를 구입하고 핵개발을 하고 미사일 생산을 하는데 박차를 가할 수 있게 해준, 반역적인 대북정책을 펼쳤는데 당당하게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큰소리치면서 아방궁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씨와 그 끄나풀들은 졸속 대북정책을 오직 대북화해의 잣대로 재단해야 한다고 하는데, 적화통일이 궁극적인 목적인 체제를 그처럼 따뜻하게 포용하는 것이 진실한 인격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도 돌려댈 정도’로 성숙한 성자의 포용력일 것입니다.

그런데, 김대중씨와 그 끄나풀들이 집권 5년 동안 국정 수행을 어떻게 했습니까? 비판자들을 모조리 ‘보수반동, 수구꼴통, 반개혁세력’이라고 욕하며 배척했습니다. 저급한 안티 운동이 준동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김대중씨의 민주당이 합심하여 비판자들을 규탄했는데, 요즈음 민주당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정치적 이해관계가 조금 틀어지자, 같은 민주당원들이 윗도리를 벗어 제치고 머리채를 잡고 삿대질하는 싸움판을 벌였습니다! 수준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정치적 이해관계가 대한민국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북한을 무슨 수로 포용한다는 것이었습니까? 착각이며 환상이며 기만이며 반역이었을 뿐입니다!

3. 송두율 교수는, ‘내재적 접근’이라는, 해괴한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북한 체제가 설정해놓은 이념과 논리를 기준으로 북한의 사회현상을 분석해야 한다는 이론인데,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이해해주지 못할 체제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방법론을 왜 박정희 체제나 전두환 체제에 적용하지는 않았습니까? 박정희나 전두환이 독재를 했다고 할지언정, 김일성-김정일 독재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것입니다.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도, 히틀러가 설정해놓은 이념과 논리로 분석한다면, 비판할 건더기를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내재적 접근법’은 분석의 대상이 어떤 몰상식한 꼬라지를 하고 있든 간에, 그 대상을 결국 미화하고 옹호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재적 접근법’이란 것은, 긍정하기 힘든 북한의 철권 독재체제를, 긍정하게 만들기 위한, 황당한 궤변이며 지극히 교활한 곡학아세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내재적 접근법’을 김일성과 김정일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겠지요. 그러나, 김일성-김정일의 반인륜적 독재체제에 억압되어 총살을 당하고 탄광에서 얼어 죽고 굶어죽은, 수많은 북한 동포들은, 처절하게 경멸할 것입니다. 북한을 이해하는 시각으로 보자는 송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을, 김일성-김정일의 탄압에 의해 목숨을 잃어버린 시체들이 들을 수 있다면, 시체들이 모조리 분기탱천하여 들고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인간들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내재적 접근법’이 아니라 ‘인간적 접근법’을 먼저 사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첫째, 살아 있는 인간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나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배가 고프면 철학이고 민주주의이고 나발이고 고상한 가치를 탐색할 여유를 가질 수 없는 게 일반적인 인간의 성정입니다. 먹고 살되 이왕이면 잘 먹으며 사는 게 바람직하겠지요. 각 개인은 합리적인 방법-근면, 성실한 노동-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방향으로 진보하려 해야 하며, 자신만 잘 먹고 잘 살려하지 말고 합리적인 노동의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길을 찾지 못해 밥을 굶고 있는 이웃이 있다면, 그 이웃이 최소한 밥은 먹고 살 수 있도록 도와야 마땅할 것입니다.

정책 결정권을 지닌 지도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그 사회 구성원들 최대 다수가 먹고 사는 동물적 욕구를 생산적으로 충족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겠습니다. 그걸 이루지 못할수록 지도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어떻습니까? 김정일과 평양 시민은 주지육림 속에서 희희덕거리지만, 평양에서 떨어진 곳의 수백 만 명이 굶주림으로 처참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김대중씨가 ‘5억 달러+알파’를 상납한 돈이면, 얼마든지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굶주림은 여전합니다. 밥 먹고 생존해보겠다고 두만강을 건너다가 국경 수비대에 걸리면 혹독한 처벌을 받습니다. 피골이 상접하여 죽음을 기다리는 어린이들이 수십 만 명입니다. 진정한 인권운동가인 폴러첸씨가 증언했으며 유엔 인권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을 정도인데 어찌 모르는 척 할 수 있습니까?

송두율씨는 그처럼 처참한 인권상황을 정말 모릅니까? 아니면, 북한으로부터 얻어먹은 것이 있고 약점 잡힌 것이 있어서,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입니까? 처참한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주민들의 모습을 목격한다면, 아니 직접 목격하지 않고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된다면, 최소한의 인간적인 지성과 양심만 있어도 일단 폴러첸씨처럼 울분을 금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신성한 인격체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 속에는 거룩한 영적 실재, 아트만(Atman)의 씨앗이 있습니다. 마음의 정점(頂點)에는, 신성한 신적 불티, 불꽃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찰라보다 짧고 바늘끝보다 좁은, 지금 여기, 모든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높고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 시대국적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의식 깊은 곳에는 태고시절부터 있어온 골짜기 신이 잠재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골짜기 신을 만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주체가 되어야 할 천부적 본능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은 마치 신이라도 된다는 듯이 고도로 높은 주체로 존중되고 있을지언정, 나머지 백성들은 그 주체에 철저하게 종속된 객체로 전락되어 있습니다. 김정일 사진이 낮게 걸렸다고 해서 통곡하고 분노하며 예천 주민들을 비난했던 북한 응원단을 보십시오! 북한이 자랑스럽게 찍어서 광고하고 있는, 북한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유치원 아이가 두 팔을 요상하게 쳐들고 “위대하신 김정일 장군님 어쩌고 저쩌고”를 격정적인 어조로 암송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타인을 객체로 전락시키는 김일성-김정일의 주체, 그것은 결코 신성하지 못합니다. 그런 주체는 진정한 주체일 수 없으며, 주체로 보일 뿐인 환각입니다. 자신의 동상을 1000만 개를 만들어 세워놓고 숭배를 강요해도 아트만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듭니다. 자신을 타인의 우상으로 설정하는 짓을 철저히 버릴 때, 높고 푸른 내면의 하늘을 가린 구름은 사라지며 신적인 주체가 부상할 수 있습니다.

송 교수는 평양을 방문했을 때 무엇을 보았습니까? 김일성 동상을 보지 못했습니까?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통찰하지 못했습니까? 김일성은 신적인 주체로 숭상되고, 김일성을 숭배하지 않으면 정치범 수용소나 아오지 탄광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죽어야 하는 현실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분석하는 게, 인간적인 지성과 양심을 지닌 인간이라면 할 수 있는 짓이겠습니까?

제대로 된 민주인사라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세운 김일성 동상-그 동상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김일성 자신이 세운 것입니다-의 모습과 김정일 사진이 낮게 걸렸다고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북한체제의 반인간적인 본질을 뼈저리게 읽어냈을 것입니다. 천박한 이기주의와 교활한 권력욕으로 오염된 이념에 물들어 지성과 양심이 천박하게 삐뚤어지지 않았다면, ‘내재적 접근법’ 같은 논리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고독과 고난이 있지만, 폴러첸씨가 걷는, 인간적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4. 저는, 송두율 교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결단코 민주인사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땅에 과격분란야만의 파장을 퍼트리지 말 것이며, 당신이 타도하고자 했던 군사독재가 일군 경제발전 상황을 똑똑히 보십시오. 당신의 지성과 양심을, ‘내재적으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반성해보십시오. 인간적인 진실과 평화를 좀 더 사랑하십시오. 최소한, 박정희나 전두환에게 들이댔던, 예리한 잣대를 당신 자신과 북한에 들이대는 작업을 하십시오. 그게 굳이 싫다면, 차라리 박정희와 전두환도 ‘자기 안의 타자’로 바라보며 분석해보십시오.

국민을 비참한 굶주림의 구렁텅이에서 상당히 밥 먹고 사는 세상으로 건져냈던 대한민국의 군부정권이, 당신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옹호해마지 않는 김일성-김정일 독재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훌륭한 정권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북한 정권보다 훌륭한 정권을 타도하고자 했으되, 군사정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주민의 주체를 훨씬 더 처참하게 억압하고 있는 북한 독재에 아첨을 바친 행위는, 앞뒤가 완전히 모순되는 짓이며 반인간적인 죄악이었다고 자백하십시오. 북한 독재를 옹호하는 활동을 한다는 것은, 과거 민주화 운동이 참된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권력에의 의지였을 뿐이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친북’은 결코 ‘민주진보개혁’일 수 없다고 증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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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시원타 2003-09-25 22:55:53
속이 시원타 이상한 논리 이상 색깔 자꾸 그러면 정말 잘난 사람 아무도 대한민국
에 없고 쭉정이들끼리 물고 뜩고 하겠지 그러다가 바람에 흩어져 유대인처럼
나라없는 나라 경제식민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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