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상한 사실 하나
아무래도 이상한 사실 하나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0.10.0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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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바람 잡이에 직접 나섰던 대통령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폭침됐고, 이 폭침 사실은 합참 실무진에서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청와대에 직보됐다. 청와대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가장 먼저 북한을 감싸면서 북한을 옹호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북한이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적을 향해 분출돼야 할 분노에 대통령이 초장에서부터 앞장서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천안함 사고 시점 전후를 통해 북한의 특이동향이 없었다. 북한의 소형잠수정이 우리의 감시망을 뚫고 NLL 5km 남쪽에 까지 침투하기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북한의 개입 가능성은 일체 없다"

대통령의 뜻이라면 맹목적으로 따르는 군 수뇌부

이러한 청와대의 기류를 감지한 국방장관은 청와대가 바라는 말들만 했다.

"북한은 과거 6ㆍ25 전쟁 당시 4,000여기의 기뢰를 구소련으로부터 수입해 3,000여기는 동해와 서해에 설치했다. 기뢰가 흘러들어와 우리 지역에 있을 수 있다"

60년 된 기뢰가 바닷물과 조류를 견디면서 폭발가능 상태로 기능을 유지했다는 국방장관의 말에 전문가들은 경악했지만 일반국민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수긍해 버렸다. 그 후 청와대는 ‘암초’다, ‘피로 파괴’다 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분위기를 만들려 노력했다. 드디어는 VIP메모라는 전대미문의 쪽지사건까지 발생했다. 4월 4일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에 나선 국방장관이 어뢰의 가능성을 내비치자 청와대가 갑자기 VIP 지시라며 ‘어뢰 쪽으로 기울지 말라’ 지시하는 메모 쪽지를 설명에 나섰던 국방장관에 전달했다. 있을 수 없는 파행이었다.

천안함 규명, 오바마 없었으면 안 됐을 것

사고가 나자마자 진실규명에 가장 먼저 앞장 선 사람은 미국의 오바마였다. 오바마가 이명박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이 전문가를 보내겠다고 제의했다. 즉답을 피한 이명박은 생각 끝에 그 다음 날에야 오바마에게 전화를 걸어 전문가를 보내달라고 수락했다. 오바마는 미국 전문가 15명을 포함하여 영국, 호주, 핀란드 등에서 총 24명이나 되는 잠수함 기술자들을 파견해 주었다. 오바마가 이렇게 발 빠르게 앞장 서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1인 돌출 쇼

이명박 대통령은 왜 이랬을까? 그 역시 김대중 및 노무현이나 마찬가지로 남북정상회담에 목을 매고 북한에 가서 김정일을 만난다는 꿈에 들떠 있었기 때문에 북한과 각을 세우는 국면을 회피하려 했다.

2010년 1월 29일, 그는 스위스 다보스 포럼으로 날아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욕구를 드러냈다. 발표했다. 단순한 희망표시가 아니라 구체적인 시기까지 발표했다. 조건 없이 금년 내로 김정일을 북한으로 찾아가 만나겠다는 발언이었다.

"양측 간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사전에 만나는 데 조건이 없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BBC)

"나는 김 위원장을 만날 준비가 항상 돼 있다. 북한은 마지막으로 핵을 포기할 것인지 아닌지를 답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CNN)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는 있을 수 없다는 대전제 하에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한다"

"원칙에 맞고 북한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때까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개방에 나서지 않는 한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는 미국의 원칙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북 양측이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데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오히려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보도들은 일제히 남북정상 회담이 곧 열리는 것처럼 분위기를 띄웠고 날짜까지 점을 찍었다. 6자회담은 간 데 없고, 그 자리에 남북정상회담이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됐다.

이때가 어느 때였는가? 북한이 2010년 1월 25일부터 3월 29일까지 2개월 이상에 걸쳐 백령도와 대청도 동부지역 NLL 인근 해상을 해상사격구역으로 설정한다고 공표했고 여러 차례에 걸쳐 포 사격을 했을 때였다. 그 결과 어선들이 이 지역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

북은 공격준비하는데 대통령은 화해 분위기 만들어 북 도와 준 꼴

이렇게 기분 나쁜 도전을 받고 있을 때 이 나라의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북한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군에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철저히 연구시키고 준비태세를 강화하라 지시했어야 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 같이 안보회의를 통해 북이 도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지혜를 짜내게 했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어떻게 했는가? 역으로 미국과 의논 한마디 없이 참모는 물론 유관 장관들과 는 회의 한번 없이 돌출적으로 김정일을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나자 했다.

너무나 놀란 미국이 당장 동아태 차관보를 급파하여 ‘정상회담을 하려거든 반드시 김정일을 6자 회담으로 끌고 오라. 그럴 자신이 없으면 공연히 대북 봉쇄와 압박 분위기에 재 뿌리지 말라’는 취지의 단호한 경고를 했다. 이에 당황한 청와대는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을 미국으로 급파했다. 2월 3일-5일에 걸쳐 제프리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등을 만났지만 허사였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다.

이명박의 느닷없는 돌출행동은 순간의 착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의도된 해프닝이었을까? 북한이 천안함 폭침 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을 바로 그 시기에,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나라 대통령이 안보로 집중됐던 국민들의 관심을 느닷없이 돌출적으로 다른 데로 돌려 천안함 폭침을 당하게 했던 것이다. 국방장관고 합참의장이 해이해 진 것도 대통령의 탓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곧 연다는 데 무슨 도발을 하겠나?"

북한 축구가 진다고 마음 아파하던 대통령, 북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 해놓고도 "지금도 나의 중도실용주의는 유효하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천안함 사건 직후에도 끝없이 북을 감사고. .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남북이 짜고 한국군의 경각심을 허문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심이 간다.

1인 돌출쇼가 천안함폭침 불러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곧 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았을 때 그는 청와대의 그 누구와도 국무위원의 그 누구와도 사전에 의논 한 적이 없었다. 당시는 북한이 성전을 공표하고 서해에 마구 포를 쏘고 부산가지 진군하는 탱크 훈련도 했다. 살벌한 시기였다. 대통령이 나서서 군의 대비를 독려해야 하는 그런 시기였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대신 무엇을 했는가?

스스로 나서서 택도 없고, 분위기에도 맞지 않는 "1인 돌출 쇼"를 벌여 화해분위기를 급조해냈다. 그 "1인 돌출 쇼"는 군화 끈을 조여야 할 군 수뇌부의 긴장감을 누그려 트리고 결과적으로는 천암한 피격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으로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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