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일기장 보다 '핵 密約'부터 공개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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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일기장 보다 '핵 密約'부터 공개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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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우라늄 농축 성공' 自白, 북 핵개발 미국 탓이라던 DJ 망발 입증

 
   
     
 

3일 UN주재 북한대표가 안보리 의장에게 "유엔안보리가 지금의 사태를 지속시킨다면 또 다른 자위적인 강경대응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는 협박장을 보냈다.

北은 서한에서 "우라늄 농축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결속(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으며, 추출한 플루토늄이 무기화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서 한국과 미국은 물론 UN 등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는 가운데 北의 '우라늄 농축 기술수준과 우라늄 핵탄두 위협' 및 '北의 의도'에 대한 추정과 향후 전망에 대한 분석 등 논란이 분분하다.

그런데 北은 2기 부시 행정부 출범 초인 2005년 2월 10일에도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서 6자회담불참과 '핵무기 보유' 폭탄선언을 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적대정책 철회와 북을 겨냥한 '폭정종식 발언취소'를 요구하면서 '미.북 직접담판'을 주장한 전력이 있다.

이는 北이 핵 및 군사. 외교에서도 일면 '벼랑 끝 압박', 일면 '직접 담판' 요구라는 전형적인 담담타타(談談打打) 전술을 사용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북은 이미 핵보유선언(2005.2.10)에 이어 1차 핵실험(2006.10.9)으로 핵의 실재를 입증 하였으며 대포동 2포 발사(2009.4.5)로 핵 운반체 보유를 입증하고 제2차 핵실험(2009.5.25)에서 핵보유를 확인시켜 UN 등 국제사회와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이를 토대로 미.북 직접담판에서 평화협정과 미군철수를 관철하려는 것이다.

미국과 평화협정이 이루어지면 1953년 이래 '한반도 안정을 유지해 준 휴전협정의 틀'이 해체 되면서 한반도에서는 핵을 가진 북이 형식적이나마 '불가침선언'이라는 카드를 가지고 핵이 없는 대한민국을 압박하여 종국적으로는 '연방제를 거쳐서 全 한반도 적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野慾과 妄想'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北이 3일자 '우라늄 농축성공과 플루토늄 무기화' 自白에 이은 후속조치가 무엇이 될지는 명확치 않다. 다만 북의 핵 협박과 앵벌이 수법이 고도화 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미국은 물론 UN 등 국제사회도 김정일의 '벼랑 끝 깽판치기 전술'에 나름의 면역과 내성이 생겼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북의 이런 태도를 직 간접적으로 추임새를 넣는 역할은 의외로 남한 내 친북세력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8월 21일 김대중 장례기간 중 박지원은 북 미사릴 발사 및 2차 핵실험 관련 DJ의 생각이 적힌 일기장 일부를 '서둘러서 공개'하였다.

4월 5일 미사일발사로 채택 된 UN안보리의장성명에 반발하여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한 4월14일자 일기에서는 "예상했던 일"이라며 "6자회담을 복구하되 그 사이 미국과 1대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라며 김정일이 집요하게 추구하는 '미.북 직접담판'에 희망적 기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정일이 2차 핵실험을 한 5월 25일 일기에서는 "북한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에 대외정책을 주력하고 이란과 쿠바에게는 관계개선 의지를 비치면서도 북을 외면하여 '북의 기대를 저버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고 푸념을 했다.

그런데 이번 북 UN대표부 서한에서 주장이 김대중의 일기장과 妙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더구나 지난 4월 법원에서 '이적단체'로 판명이 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가 4일 발표한 성명에서도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자업자득"이라고 맞장구를 치고 나선 것은 우연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여기에서 2006년 10월 9일 김정일이 자행한 1차 핵실험 직후인 11일, DJ가 광주로 달려가 "북 핵실험 미국(네오콘) 탓"이라면서 70억 달러나 퍼주어 핵개발 뒷돈을 대준 "햇볕정책과 무관함"을 강변하면서도 정작 김정일 핵실험에 대하여서는 단 한마디 비판이나 추궁은커녕 '찍소리'도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 당시 DJ가 감히 "핵실험 미국(네오콘) 탓"이라고 했던 논거는 네오콘을 중심으로 한 미국에서 '김정일의 우라늄 탄두개발 의혹제기와 압박'은 근거 없는 악의적 모략이라는 역선전 술책에 기초하고 있음이 이번 북 UN대표 서한에서 북이 7년 이상 우라늄 핵탄두개발을 교묘하게 숨겨왔다는 사실을 自白함으로서 백일하에 드러나고 만 것이다.

생전에 DJ가 북과 어떤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앞으로 반드시 철저하게 규명해내야 할 국가적 과제이자 최대의 국민적 관심사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2000년 6월 15일 DJ가 "저는 이번에 북측에 대해서 서로 하고 싶은 얘기를 다하자고 했고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를 문서'로 만들어서 전달해 주었습니다. '핵 이야기도 했고 미사일 이야기도 했습니다.' 주한미군 문제도 나왔고 국가보안법 문제도 나왔습니다."라고 한 사실검증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장례기간 중 '북 핵에 대한 입장을 담은 김대중 일기'를 서둘러서 공개한 박지원이 DJ를 수행해서 평양에 다녀온 다음날인 2000년 6월 16일 문화관광부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과 김정일이 核관련 문서를 교환'했다는 사실을 언급 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박지원은 김대중 일기 공개에 앞서서 핵 관련 문서부터 공개 했어야 옳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박지원의 '自白'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이명박 정부도 '김대중-김정일 핵문서'의 실체를 확인하고 이를 공개해야 한다. 그 문서에 어떤 내용이 포함 돼 있건 간에 2005년 2월 10일 외무성 핵보유 성명과 2006년 7월 5일 미사일 발사, 10월 9일 1차 핵실험으로 이미 휴지 쪽이 된 문서이다.

더욱이 2009년 4월 5일 ICBM발사에 이은 5월 25일 2차 핵실험은 '金 .金 核 密約'의혹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도록 만들었으며 이번 북 UN대표의 '우라늄 농축성공과 플루토늄 무기화' 自白으로 김.김 핵 밀약문서의 공개가 불가피 해 졌다.

만약 박지원이나 이명박 정부가 남북 간 신뢰 어쩌고 대북정책에 악 영향 운운해가면서 문서공개를 거부 또는 회피한다면 그로 인한 국민의 대정부 신뢰와 지지는 밑바닥이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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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2009-09-05 15:28:43
어이 친구 ! 세상을 자네 입맛대로 재단하지 말란 말이야 !

익명 2009-09-05 15:40:03
당신이나 세상에 대고 자백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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