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종족민족주의’의 역효과
몬테네그로, ‘종족민족주의’의 역효과
  • 김상욱 대기자
  • 승인 2020.09.0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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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카노비치는 다른 발칸 지도자들이 자주 하는 것처럼, 자신의 부패 스캔들과 권위주의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하고 종족민족주의 카드를 사용했다. 이로써 종족민족주의가 부활하게 됐다.
주카노비치는 다른 발칸 지도자들이 자주 하는 것처럼, 자신의 부패 스캔들과 권위주의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하고 종족민족주의 카드를 사용했다. 이로써 종족민족주의가 부활하게 됐다.

몬테네그로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은 부패 스캔들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인종 간 긴장(ethnic tensions)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선거에서 졌다.

몬테네그로의 집권당인 사회민주당(DPS)30년 동안 집권한 후 치열한 접전을 벌인 선거에서 패배했다. ‘평화는 우리나라’, ‘흑백 연합’, ‘몬테네그로 동맹의 미래를 위하여라는 3개의 야당 연합이 총 81석 가운데 41석을 확보(50.6%)해 새 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권위주의적으로 인식돼 온 밀로 주카노비치(Milo Djukanovic) 대통령이 이끄는 DPS의 패배가 반가운 발전이 됐어야 했지만, 그의 반대세력이 집권하는 것을 훨씬 더 위험한 발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몬테네그로의 미래를 위하여는 친()세르비안 및 친()러시아당으로 종족민주주의 정서( ethnonationalist sentiments)”를 불태우며 유권자들을 동원할 수 있었다. 지난 830(현지시각) 승리한 27석은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세르비아의 많은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승리하는 것으로 보여졌으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 주도 단체인 스릅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의 세르비아인들에 의해 축하를 받게 됐다.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몬테네그로의 무슬림 소수민족들은 위협을 느꼈다. 몬테네그로의 북쪽에 위치한 플레블라 시(city of Pljevlja)에서는 이슬람 공동체 건물이 공격을 당했고, 보스니아크(Bosniak, 보스니아 지역의 토착 거주민)는 언어적, 육체적 폭행을 당했다. 다른 마을에서도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공격이 보고됐다.

이러한 사태 발전은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쿠데타 시도에 직면한 지 불과 4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선거 결과가 친()러시아 반()서방 연합을 집권시켜, 국가의 안정과 민족 평화, 유럽 통합과 독립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주카노비치 대통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몬테네그로의 정치 현장을 교묘하게 조종해 왔다. 처음 총리가 된 1990년대 초에는 세르비아의 강자인 슬로보단 밀로세비치(Slobodan Milosevic)와 친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점점 더 베오그라드와 거리를 두면서 친()독립 정책(pro-independence policies)을 채택, 2006년 독립 국민투표에 앞장섰고, 이로 인해 몬테네그로는 유고슬라비아에 남아 있던 곳에서 갈라지게 됐다.

이어 2012년 유럽연합 가입 협상을 개시하고, 2017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등 유로-대서양 통합(Euro-Atlantic integration)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나토의 폭격으로 인구의 상당 부분, 특히 세르비아계의 반대에 부딪혔다.

2016년 쿠데타 시도는 NATO 가입을 막기 위해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회민주당(DPS) 정부는 이를 무산시키고 통합 절차를 진행했다.

서방의 지지를 얻은 친서방 외교정책을 견지하면서도 밀로 주카노비치의 DPS 정부는 부패 스캔들과 점점 더 커지는 권위주의 공포로 인해 점점 더 흔들렸다. 2015년 주카노비치 자신이 조직범죄 및 부패신고 프로젝트(OCCPR, Organized Crime and Corruption Reporting Project)에 의해 '조직범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규모 비리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커지자 2019년 민중들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주카노비치가 종교의 자유와 소신에 관한 법률 초안과 종교 공동체의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초안을 배포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이 법은 1993년 세르비아 정교회에서 분리돼 201912월 통과된 몬테네그로 정교회의 자치독립교회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세르비아계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 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주카노비치는 다른 발칸 지도자들이 자주 하는 것처럼, 자신의 부패 스캔들과 권위주의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하고 종족민족주의 카드를 사용했다. 이로써 종족민족주의가 부활하게 됐다.

법의 통과는 의도된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더 큰 인종적 양극화를 부추겨 부패 스캔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DPS와 그 파트너들은 몬테네그로가 1918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왕국에 독립을 잃고 결국 유고슬라비아로 전락한 이후, 몬테네그로로부터 빼앗긴 교회 재산의 정당한 환수를 한다는 것으로 이 법을 묘사했다. 독립된 교회를 설립하는 것은 몬테네그로의 주권을 다시 위임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세르비아 정교회는 이를 몬테네그로 정부가 소유권이 정당하다고 믿었던 재산을 빼앗으려는 시도로 보았다. 세르비아계는 당연히 이 법을 거부했다. 현재 몬테네그로의 미래를 위한 동맹의 일부인 민주전선(Democratic Front)의 안드리아 만디치(Andrija Mandic) 대표는 의회에서 이 법안을 논의하면서 20세기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난 이슬람교도의 대량학살을 언급하며 매설된 무기들을 파내라고 위협했다.

그는 국회에서 DPS 다수를 유지하는 데 지지가 결정적이었던 무슬림 하원의원들에게 우리 교회를 쫓아오면, 우리가 너희 집을 찾아갈 것이라며 법을 지지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웃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공식 이슬람 공동체는 또 다른 대량학살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고 강력히 항의했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 지도부에 의한 인종청소 및 집단학살 운동 이후, 특히 유죄판결을 받은 전범인 라도반 카라지치(Radovan Karadzic)와 보지슬라브 세젤지의(Vojislav Seselj) 지지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만디치(Mandic)의 발언은 가볍게 볼 수 없다.

이러한 반()무슬림정서는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클 셀스(Michael Sells)그리스도슬라브주의(Christoslavism)”라고 부른 것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는 슬라브계 무슬림들을 반역자로 보는 남슬라브 민족주의의 독특한 혼합이다. 이 팽창주의 민족주의 이념에서 슬라브 이슬람교도들은 기독교로부터 배교자로 간주되고 있다.

세르비아 정교회의 공식 성명서와 함께 만디치의 미사여구는 세르비아 인구를 자극했고, 세르비아 인들은 정부에 법 철폐를 요구했다.

세르비아 정교회 성직자들이 이끄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몇 달 동안 몬테네그로의 주요 도시에서 이 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대체로 평화적이었지만 1990년대 갈등의 고조로 동원된 유사 전술을 연상케 하는 도로 봉쇄도 연출했다.

공식적으로 세르비아 정부도 이 법에 반대하고, DPS에 이를 무효화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세르비아 인권 및 반전 운동가인 베스나 페시치(Vesna Pesic)가 지적했듯이, 주카노비치와 그의 세르비아의 상대인 알렉스 산다르 부치치치(Alexsandar Vucic) 둘 다 긴장으로부터 이익을 얻었으며,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합의를 보았다.

주카노비치에게 있어서 그가 추구하고 있던 정치적 이득은 그의 통치에 반대해 온 세르비아 정교회를 소외시킴으로써 몬테네그로의 직접 세르비아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부치치에게 게임의 끝은 코소보의 민족분단이며, 결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를 세르비아의 궤도로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런 중대한 계산 착오가 있었다.

종교자유법은 부패한 종족민족주의 엘리트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민족주의 의제를 계속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주카노비치의 중대한 오산이었다.

세르비아 정교회와 대()세르비아(Greater Serbia) 지지자들은 이번 권력 쟁탈전에서 승자로 떠올랐다. 성직자들은 세르비아 인구를 동원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했고, 세르비아 인들의 역사적 희생양에 대한 생각을 활용했다. 결국 야당에게 유리하게 표를 흔들었던 것은 바로 이 유권자 동원이었다.

주카노비치는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몬테네그로에서 진정한 시민 정체성을 만들어낼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 그는 종족민족주의에 눈을 돌림으로써 불행히도 이 지역을 분열적인 민족주의라는 그럴듯한 미사여구만 읊어대는 대다수의 지도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3당이 결성한 정부는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알바니아계 민족이자 통합개혁행동과 블랙 온 화이트(United Reform Action and Black on White) 플랫폼의 리더인 드리탄 아바조빅(Dritan Abazoviq)은 예상 밖의 킹메이커로 떠올랐다. 개혁 공약과 주카노비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그는 다수당을 형성하고 잠재적으로 주카노비치의 30여년을 웃도는 기간의 권력 장악을 끝낼 수 있는 충분한 의석을 제공했다.

동시에, 그는 NATO 반대, ()서구, 친 러시아, ()소수민족 언사로 인해 '몬테네그로의 미래를 위하여'라는 당이 내각을 구성하려는 노력에 동참한 것에 대해 심한 비판을 받고 있다.

새 집권연대가 기존 국제조약과 유럽통합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음에도 선거 운동 중 나토 깃발 불태우기, 소수민족에 대한 위협과 어떻게 화해할지는 미지수다. 드리탄 아바조빅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부 구성을 주장하고, 만약 새로 부상하는 연합군이 강력한 친세르비안 노선을 취할 경우 지지를 유보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모든 것이 제안된 연립여당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통합개혁행동 등 새 연립여당의 작은 정당들이 떠나도록 유인할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연합의 구성을 촉발하거나 새로운 선거로 이어질 것이다. 주카노비치의 부패는 잘 입증되어 있지만, 그 대안이 몬테네그로를 러시아의 궤도로 밀어 넣을 것이기 때문에, 주카노비치는 여전히 더 나은 선택이다.

그의 정부 참여는 몬테네그로의 유로-대서양 통합을 보장하고, 서방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또한 주카노비치에게 반부패 개혁에 전념하고, 어쩌면 사임하도록 강한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 또 다른 가능한 시나리오는 소규모 정당들이 두 연합 중 어느 한 곳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헌법상의 위기를 초래하거나 불확실한 결과를 초래하는 새로운 선거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유로-대서양 통합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 부패한 지도자가 이끄는 연합과 현재 몬테네그로의 조약을 준수하지만 주요 구성 요소가 친세르비아, 친러시아, 반민주의 성향이 강한 연합 사이의 선택이다. 최근 몬테네그로의 이슬람 소수민족에 대한 폭력을 보면, 두 번째 선택지는 몬테네그로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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