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59년 대한민국 역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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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1959년 대한민국 역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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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정객 진보당 조봉암 사형

1959년 1월 27일 오전 11시 12분 소련의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평양 주재 기자이며 한국 사람인 이동준이 판문점에서 제 96차 정전회담을 취재하기 위하여 파견 중 극적인 탈출에 성공, 자유 대한의 품에 돌아왔다. 이동준 기자는 이북의 남로당에 대하여 심사를 받았고 체포되어 처형을 당할듣한 신변의 위험을 느껴 기회만 있으면 남한에 탈출할 기회를 노렸다는 것이다.

1956년부터 프라우다 평양 특파원으로 근무한 후 판문점에는 단 세 번밖에 나오지 못했으며 판문점에 나타날 적마다 월남할 기회를 노렸다. 인상은 얌전한 편이고 중키인 이동준 기자는 평북 영변 출신이며 학교는 평양에서 김일성 대학 노어과를 나왔다, 그는 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프라우다에서 4년째 근무했다고 한다.

그가 월남에 성공하기 까지 판문점 공동관리 구역을 벗어나기까지 시종 공포에 떨고 있었음은 공산 감시원에게 발견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는데 이렇듯 극적인 탈출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한국일보에 위자료 소송

1959년 3월 8일자 한국일보 제 2967호 문화면은 “몰염치한 각본 작가군” 이라는 기사를 보도 했는데 이 기사 중 일부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오보로 말미암아 한국일보사를 상대하여 명예 훼손으로 1천만환 청구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신문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만큼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하겠으나 실수를 아무리 호의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가끔 묵살하기 어려운 일이 있는 것은 정말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오보는 정정기사로 해결하기 마련이지만 오보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이름있는 사람일 경우 문제는 좀 달라진다.

이런 것을 일컬어 저널리즘의 횡포라고 하는 것이지만, 5.16 이후에는 각 언론인 대표들이 자율적으로 제재를 강구하기 위하여 신문윤리를 바로잡고 있는 형편인 바, 그 전에는 얼마나 언론인들의 횡포가 심했는가를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시나리오 작가인 오영진의 경우다. 1959년 3월 8일자 한국일보 문화면에 “몰염치한 각본작가군”이라는 타이틀의 영화계 이야기가 게재되었다. 당시 “조춘”이란 영화가 상영될 무렵인데 이 영화 내용이 일본의 목하혜개의 작품을 표절했다해서 영화계에 물의가 분분했으므로 이것을 계기로 하여 한국일보 문화부에서 영화작품 표절 문제를 다루었던 것이다.

사실 그 당시의 영화란 대부분이 외국 것의 번안 아니면 표절이었기 때문에 한국일보 편집계획은 시의를 적절히 얻은 것으로 평가되어 크게 문제시 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상영되었던 “잃어버린 청춘”, “오해 마세요”, “종말없는 비극”, “그대는 돌아왔건만”, “서울의 휴일”, “애모”, “내 사랑 영원히”, “나비 부인”, “오 내 고향”과 미개봉된 “인천춘”등이 표절 및 번안 시비 등으로 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것이다.

경향신문 폐간

“뱀이 우는 개구리를 먹었다”
1959년 4월 30일 여당지로 알려져온 경향신문이 폐간되고 말았다. 항상 자유당이 눈에 가시처럼 별러 오던 경향신문을 전격적으로 폐간 조처하고 만 것이다. 이것은 당시 공보실장이었던 전성천 한 개인의 힘으로 된 것이라고만 볼 수 없고 당시 자유당 정권이 얼마나 언론인들의 탄압에 힘을 쏟아 왔던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사실 개구리는 뱀을 싫어 하고 무서워했다. 그러면서도 뱀을 만나면 개구리는 개골댄다. 독재자는 정롱을 펴는 필봉을 싫어함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정권 연장 요구에 거의 미치광이가 되었던 당시 자유당 정권 속속들이 그 추잡함을 밝혀내는 언론계를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폐간의 이유가 된 내용은 경향신문이 4월 30일자로 폐간 처분된 이유 중 당시 신문에 계재되어 필화가 된 부분의 내용을 밝혀 보면 1월 11일자 사설의 제목:정부와 여당의 지리멸렬상 부제:책임져야 할 사람은 깨끗이 책임져라 2.4폭력국회 파동이 근 2순을 지난 오늘까지의 경과를 주시하면서 근본적인 불법과 권력남용의 병근은 잠시 논외로 하고 정부와 여당의 지리멸렬상은 한편 가소롭기도 하나 또 한편 국운의 전도를 위하여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야화 필화사건

하와이 근성 시비 - “야담과 실화” 잡지는 “서울의 숫쳐녀는 불과 60%도 못된다” 이런 기사를 실어 서울 시민의 말썽을 일으켰다. 서민들의 왈가 왈부함은 물론 젊은 처녀들을 모독하는 기사라하여 비난을 받았으며 이에 공보부 “야담과 실화”를 폐간처분하였던것인데, 그 뒤에 이어서 5개월 후 “야화”라는 잡지가 나오게 되었다.

“하와이 근성 시비”는 원래 시인 조영암과 유엽 두 시인에 의하여 집필되었다. 조영암은 전창근이라는 필명으로 하와이 근성의“시”에 대한 부분을 집필했고 후자인 “비” 는 전라도 태생인 유엽에 의해 집필되었다. 이러한 제목으로 동 “야화” 7월호가 시중에 나가자 전라남북 도민을 제외한 타도 사람들은 무표정 아닌 웃음을 EL었지만 전라도 태생인 당사자들은 아연 분노할 수 밖에...

그렇지 않아도 타도 사람들로부터 흰옷에 티 하나 쯤 있는 것으로 늘 간주당해 왔던 바인데 이렇게 공공연히 전라도민들을 힐난하는 글을 보고 분노가 솟지 않을수 없었다. 이리하여 “야화”잡지가 시중에 나가고 완전히 지방보급이 되어가자 그 반응은 노도처럼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전라도 태생인 서울 시민은 끼리 흥분을 했고, 지방인 전라남북도에서는 고함소리가 일개 잡지사에 까지 들리도록 노하고 말았다. 성급한 사람은 잡지사에 찾아와 주먹질을 퍼붓고 전라도의 출신의 학생들이 날마다 떼를 지어 몰려들어 항의를 했다. 호남 출신 민의원들은 자기네들의 명예에 관한 중대 문제라고 결의하고 이를 국회에까지 들고 나왔다. 이렇게 큰 반발이 있을 줄이야 차마 몰랐던“야화”잡지사는 참으로 예상할 수 없는 위기 일발의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조봉암 사형

1959년 2월 17일 대법원의 최종 심리에서 사형이 확정되자 그의 구명을 위한 길은 하나, 재심이라는 좁은 구멍이 남았을 뿐이다. 죽산 조봉암, 그의 죄과가 어떻든 그는 해방이후 풍운을 겪었던 정객으로서 매력있는 인간이라는 평판이 돌았던 인물이었다.

해방 직후 좌우익 투쟁이 격심할 당시 20년간의 공산당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공산당과 몌별선언을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이어 이박사에 의해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기용되어 또 한번 관심을 모았었다. 이어 국회의원생활로 정계에 발판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던 만큼 그는 무능하지는 않았다. 조직적이거나 그가 부식한 뚜렷한 세력이 있는것도 아닌데 국회에서 부의장까지 지냈다. 조봉암은 그 자신의 당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당을 만들었다. 빈약한 정치자금으로 짧은 시일안에 조직을 강화하고 두차례나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여 200만표라는 적지 않은 표를 얻은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이 누구 못지 않게 컸다고 평가될 것이다.

진보당이 불법단체로 규정받은 것은 경제적 민주주의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당을 운영하는 자금이 간첩으로부터 공여된 것이고, 조봉암이 괴뢰에 부수하여 당을 창립하였기 때문에 불법인 것이다. 1959년 7월 31일 아침 조봉암은 61세를 일기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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