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년간 공포정치를 주도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그의 처형은 암울한 이라크 역사에 전환점이 될 것인가? ⓒ AP | ||
23년간 이라크를 독재와 공포정치로 국민을 압박해왔던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69)이 현지시각 30일 오전 5시 30분에서 6시 30분(한국시각 12시 5분)사이에 예상을 깬 조기 사형집행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사담 후세인의 딸 라가드는 “이라크가 해방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예멘에 묻고 싶어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1982년 집권 당시 자신의 암살을 기도했다는 명분으로 두자일 마을 시아파 주민 148명을 학살한 혐의로 기소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이라크 최고항소법원으로부터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지 4일 만에 전격적으로 교수형이 집행됐다. 그의 처형 모습 전체는 녹화됐다고 외신은 전했다.
형 집행 직전 미군으로부터 신병을 인수받은 이라크 정부는 이날 처형은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이전으로 서둘러 처형한 것으로 보인다. 사담 후세인은 개인숭배와 공포정치로 부시 행정부의 주적으로 지목돼 왔으나, 일부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그는 미국의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이슬람의 자존심’을 일깨워준 인물로 추앙받기도 했다.
'에이피(AP), 에이에프피(AFP),로이터(Reuters) 등 외신은 일제히 사담 후세인의 처형 소식을 긴급으로 타전했다. AFP통신은 사담의 처형으로 ‘과거 이라크의 암울한 역사에 전환점을 맞게 됐다’고 썼다.
사담 후세인은 1937년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양부모를 잃고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를 숭배하는 삼촌에 의해 양육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8세 때 수도 바그다드로 올라와 학생운동 등에 가담했고, 1957년 바트당에 입당, 그의 파란만장의 정치생활이 시작됐다.
1959년 압델 카림 카셈 대통령의 암살 시도 후 다리 부상을 입고 4년여 동안 해외도피생활을 거친 후 1964년 수감됐으나, 2년 후 출감, 바트당의 첩보원 활동을 개시했으며, 1968년에 바트당에 의한 정권탈취 쿠데타를 성공시킨 후 혁명평의회 부의장으로 임명되었고 11년 뒤인 1979년에 이라크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다.
사담 후세인은 80년대 들어 이란-이라크 전쟁, 1990년 쿠웨이트 침공 등을 이끌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로부터 독재자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사담은 중동의 영웅인가, 아니면 이라크의 독재자인가? 그의 처형은 정의 심판인가, 아니면 미국의 보복인가? 이러한 질문을 남기며 그는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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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대기자의 기사
" 타이틀" 이 좀 이상하네
이라크 후세인 처형
"정의의 심판인가 미국의 보복인가?"
즁 범죄자를 그나라의 법도에따라 시행한것을 꼭 우방국의 이름을 끌어 넣어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