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3.1 집회의 총성
1947년 3.1 집회의 총성
  • 김동일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3.0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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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불러오는 대통령 때문에 한반도에는 유사 이래의 재앙이 다가오고 있음

▲ ⓒ뉴스타운

2018년 3월 1일 서울은 태극기로 뒤덮이었다. 우파가 주최한 서울의 3.1절 집회는 총 5군데에서 열렸다고 한다. 애국시민들과 애국단체들이 총출동하여 태극기를 들고 서울대로를 행진한 인원이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문재인 정권의 횡포에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은 참을 수 없는 한계치에 이르렀다고 느낀 것이다.

서울에서 열린 3.1집회는 성조기와 한반도기로 두 동강났다고 어느 언론은 전하고 있다. 우파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좌파는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모양이다. 성조기는 자유와 혈맹을 상징한다면 한반도기는 종북과 민족을 상징한다.

성조기와 한반도기로 서울을 두 동강냈다고 하니, 한반도에서 종북 세력은 어느덧 자유진영과 서울을 양분할 정도로 세력이 성장한 모양이다. 음침한 지하의 음지에서 활동하던 세력들이 대명천지에 대로로 튀어나와 대한민국의 건국 세력과 대등하게 맞서서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겠다고 할 때까지 자유 세력은 무얼 했더란 말인가.

2018년의 상황은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 자유 세력과 공산 세력이 치열한 사상 대결을 벌이던 해방정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1947년의 3.1집회도 좌우익이 벌이는 집회로 전국이 두 동강 났었다. 각각 자기들의 나라를 꿈꾸던 좌우익은 47년의 3.1집회에서 자기들의 주장을 표출했고, 전국 각지에서 거리 행진을 벌이다가 마주친 두 세력은 충돌했다.

1947년 서울의 3.1 기념식은 두 군데에서 거행되었다. 우익 측은 서울운동장에서, 좌익 측은 남산공원에서 3.1기념 대회를 열었다. 양측에서는 집회가 끝난 후 시가행진에 들어갔고, 남대문에서 조우한 양측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양측 간에 투석전이 벌어지고 경찰이 제지하는 가운데 요란스런 총소리가 연발했다. 이 발포로 수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피해자는 모두 우익 측이었다. 발포는 좌익 쪽에서 한 것으로 경찰에서는 발표했다.

부산의 3.1 대회에서도 발포가 있었다. 좌익 측 대회에서 연사가 이승만을 공격하자 우익청년단원 3명이 연단으로 뛰어올라 그를 구타했다. 경찰이 이 청년들을 체포하자 좌익 측 대회 군중들이 청년들에게 직접 보복하겠다고 경찰에게 청년들의 인도를 요구하다가 좌절되자 난동을 일으켰다. 여기에서는 경찰의 발포로 사망 7명, 중상 10명, 그 외에도 많은 경상자가 발생했다.

제주에서는 북국민학교 교정에서 불법으로 3.1집회를 열었던 남로당원들이 시가지로 뛰쳐나와 경찰서 정문까지 진출하여 경찰을 위협하며 시위를 벌였다. 기마경찰이 폭력 시위대의 공격을 받자 위협을 느낀 경찰들의 발포로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1947년의 3.1 기념식에는 전국에서 우익과 좌익, 경찰과 좌익단체들 간에 수많은 충돌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사망자 16명, 부상자 22명 등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47년의 3.1집회에서 좌익들의 중요한 주장은 결렬되었던 '미소공동위원회를 재개'하라는 요구였다.

미소공위가 결렬된 이유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했던 단체들을 한반도 통일 임시정부 구성 문제에서 제외할 것인가, 포함할 것인가의 문제 때문이었다. 소련은 이런 단체들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주장은 임시정부 구성에서 우익단체들을 참가시키면 안된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었다. 좌익은 신탁통치 찬성을 했고 신탁통치 반대를 했던 것은 우익이었기 때문이다.

미소공위를 통한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서 임시정부를 구성하는 것만이 남로당에게 집권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남로당 좌익 세력은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3.1 기념집회를 개최하여 미소공위 재개 촉구에 나선 것이었다. 미소공위는 결국 열리지 않았고, 남로당의 집권 기회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결국 남로당은 대한민국 건국에 훼방을 놓기 위한 것이 제주4.3폭동이었던 것이다.

1947년 3.1집회의 상황과 2018년 3.1집회의 상황은 비슷한 면이 많다. 그때 1947년에 오매불망 소련의 손길을 기다리던 좌익들은 이제 한반도기를 들고 북한의 은총을 갈구하고 있다. 6.25를 거치며 좌익은 빨갱이로 인식되며 멸종이 되었건만 그들은 잡초처럼 되살아나 대한민국을 괴롭히고 있다.

1947년의 좌우익의 치열한 대결은 민족의 최대 비극이었던 6.25를 불러왔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었던 사상 대결의 종착지는 전쟁이었다. 2018년의 좌우익의 치열한 대결도 어느 한쪽이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이다. 양보하거나 패배하는 쪽은 불태워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일성이라는 인간을 이웃으로 두었던 불운 때문에 유혈의 비극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결국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불운 때문에 한반도에는 다시 한 번 피할 수 없는 유혈의 비극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재앙을 불러오는 대통령 때문에 한반도에는 유사 이래의 재앙이 다가오고 있음을 3.1절 집회는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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