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찌 잊으랴, 한번걸레 영원한 걸레인 것을!
스크롤 이동 상태바
아 어찌 잊으랴, 한번걸레 영원한 걸레인 것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향한 빨갱이, 45년만에 다시 보니 더 빨개졌다

 
   
  ▲ 6.25 피비린내 나는 공산당의 만행  
 

6.25 모든 도로가 비 포장되었던 그 때, 도로의 좌측에는 군인들이 북으로 행군하고 우측에는 겨울 누더기 옷에 피난 짐을 지고 끝도 없이 긴 행렬로 늘어서 남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스크린에 비친다.

6.25 세대라면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온갖 피비린내 나던 비극과 공산당의 만행에 치를 떤다. 아 아 어찌 잊으랴.

전향한 빨갱이, 45년만에 다시 보니 더 빨개졌다

77세의 우씨, 그는 6·25 때 북한 의용군에 입대한 후 월북했다. 인민군 복무 후 남파 간첩 교육을 받고 1961년 전북 부안 부근으로 침투했다. 고향으로 가서 친척들을 포섭하려다 호송원 2명이 사살 당하자 친척들의 신고로 검거됐다. 검거 직후 전향서를 쓰고 이듬해 공소보류 판정을 받고 풀려났다.

32세에 전향서를 쓰고 남한에서 새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까지 두고 45년간을 남한에서 살았다. 그리고 인생을 마감할 준비를 해야 하는 80 노인이 됐다. 그런 그가 이번 광주 6.15 대축제때 ‘충성 맹세’가 담긴 CD 3개를 북측 참가자에게 전달하려다 검거됐다.

거기에는 노동당에 가입했을 때의 ‘기쁨’과 ‘환희’를 표현한 내용도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한다. “나는 전향한 게 아니라 장군님의 전사로 살아왔다. 장군님에게 헌신할 무장이 돼 있는 만큼 활동할 기회를 주십시오. 사상적으로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한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라는 사실이 이 77세의 노인에게서 명확하게 증명됐다. 북에서 월남한 실향민들, 그리고 간첩 수사를 해온 수사관들, 모두가 한결같이 말하는 이론이 있다. “사상에 한번 병들면 죽기 전엔 못 지운다”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다”

6.25 직전, 수십만의 보도연맹이라는 게 있었다. 이들은 빨치산이었지만 스스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이었다. 6.25가 나서 인민군이 서울에 들어조자 바로 이렇게 전향했던 빨치산들이 완장을 차고 인민군을 데리고 다니며 애국지사, 동네 유지 사냥에 나섰다.

이 사실에 놀란 피난 정부는 여타의 지역에 보호하고 있던 보도연맹들을 닥치는 대로 사실해 버렸다. 이렇게 죽은 빨치산들은 수만이라고도 하고 십여만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빨갱이들 중 상당수가 이들의 후예일 것이다. 이들이 지금 과거사를 규명한다며 완장찼던 아버지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러 나선 것이다. 

 
   
  ▲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에서 지워지지 않는 좌파 사상

노무현의 장인 권오석이 동네 유지 11명을 죽인 악랄한 빨갱이라는 기록이 2004년에 집중적으로 노출되어 우리를 분노케 했다. 그 때에 극히 일부의 소식통들이 노무현의 아버지 노판석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이런 정보는 철저히 차단 당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금년도에는 인터넷에 노판석을 검색하면 노무현 집안의 내력이 우후죽순 식으로 많이뜬다. 이제는 지우지도 않는다. 인터넷 내용들에는 대개 이런 것들이 포함돼 있다.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은 6.25 당시 인민군의 앞잡이 역할을 했었습니다, 노무현의 고향 전라남도 강진(1953년 5살 때까지 그 곳서 살았음)에서 약 20~30명 가량의 사람들을 무고하게 살해를 했지요, 이후 노판석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됩니다,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노무현의 조부 즉, 노판석의 부친이 일제시대 때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 입니다.”

“일제시대 때 노무현의 조부가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해방이 되자 동네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괄세와 무시를 당하게 되지요, 이에 대하여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은 동네 사람들에게 큰 앙심을 갖고 있다가 6.25가 터지고 나서 인민군이 전남 강진을 점령하자, 인민군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철저한 앙갚음을 하게 됩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노판석은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됩니다”

“1953년 들어서 국군이 북한군을 격퇴하고 남한 전역에 치안과 질서를 확립해 나가자 노판석은 자기 고향에 돌아와서 당시 5살 되던 노무현과 노건평을 데리고 야밤에 도망을 갑니다, 왜냐하면 고향에 그대로 눌러 잇다간 동네사람들에게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 한 것이지요. 그래서 야간에 목포항(목포 바로 옆이 영광 그리고 그 바로 옆이 강진 입니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편을 타고 도주를 하게 됩니다,(자기네 동네 사람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배편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족을 데리고 부산항에 도착한 노판석은 산골 오지인 경남 진영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리고 그곳서 호적을 새로 만들지요(당시에는 전란 직후였으므로 호적을 새로 만들기가 매우 쉬웠습니다) 그리곤 다시 김해로 도주를 합니다(김해는 진영 바로 옆에 있습니다) 이후부터 노무현네 집안은 경상도 출신 행세를 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경남 김해에서 역시 6.25 당시 인민군 앞잡이 노릇을 하던 권오석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권오석은 6.25당시 인민군 앞잡이로서 지역주민 11명을 살해한 경력의 소유자 입니다, 이후 노무현은 고시를 패스하고 판사직을 채 1년이 못되게 하고 난후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됩니다,”

이상이 인터넷에 범람하는 노무현 집안의 내력의 골자다.

노무현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늘 자신을 진보라고 말해왔다. 그러다가 그에 대한 색깔 의혹이 자꾸만 불거지니까, 그는 스스로를 좌파라고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좌파들은 유럽의 좌파를 내세우며 좌익이라는 주홍글씨를 위장하려 든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좌파는 유럽좌파와는 성격이 다른 빨갱이를 의미한다.

인터넷에 떠 있는 노판석에 관한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노무현의 아버지와 장인은 우리 사회에서 멸시와 증오를 받는 빨갱이였고, 따라서 노무현은 대한민국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래서인지 그는 솔직하게 스스로를 좌파라고 고백했다. 이 나라에서는 진보는 곧 좌파요, 좌파는 곧 빨갱이라는 등식이 상식화돼 있다.

노무현은 지금 몇 살인가? 1946년생이면 61세, 금년이 환갑이다. 한국 땅에서 60년ㅡ이상을 한국사회에서 살았는데 어째서 대한민국에 대해 증오심을 가지고 있을까?

대통령이 돼서도 국가를 파괴하고, 부자를 증오하고, 많이 배운 사람을 증오하고, 미국을 증오하고, 세계가 버러지 보듯 징그러워하는 김정일만 싸고도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현상은 오직 하나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상은 유전인자 즉 DNA라고!

육사출신 장군도 유전된 빨갱이, 동기생 아무도 몰랐다!

오늘 아침 여러 장군 출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빨치산의 사상은 자식에게 유전된다는 데 대한 의견들이 일치했다. 빨치산 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반미-친북 행동을 보여 온 수많은 사람들, 이들의 대부분은 빨치산의 후예들이었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들이었다.

오늘 아침 예비역들의 입에 오른 빨치산의 후예들 숫자는 잠시 동안에만 해도 20명이 넘었다.

이런 주제는 표명렬에 대한 이야기가 촉발시킨 것이었다.

표명렬은 정규 육사 18기 생, 아버지가 남노당 빨치산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전두환 시대에 정훈감까지 한 사람이다. “역시! 빨갱이 피는 못 속여”.

빨치산 연좌제는 부활돼야 한다

빨치산 사상이 피로 유전된다는 것이 모두의 일치된 견해였다. 그렇다면 연좌제를 폐지한 것에는 문제가 많다. 연좌제를 폐지한 이유는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나는 나대로의 별개 인격체라는 것을 근본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사상에 관해서는 아버지 객체, 아들 객체가 독립돼 있지 않다는 것이 수많은 사례로 입증돼 있다. 사상에 관한 한, 연좌제 해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못 된 것 같다. 연좌제 해제는 누구의 작품이었나?

빨갱이들은 친절하게 다가와

필자는 1990년대 초, 저서와 칼럼 등에 의해 사회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어쩌다 발표회 등에 나가면 사회적 인사들이 살갑게 다가왔다. 친형 정도의 은근한 애정을 보이며 손을 꼬옥 잡고 식당 등을 향해 걸었다. 다정하게 말을 나누며.

리영희, 한환상, 강만길, 김남식, 김낙중이 그랬다. 그리고 김근태와 김대중과 황장엽도 그랬다. 김대중은 별로 알지도 못하던 시기에 꿀항아리도 보내주었다.

자기와 친한 사람을 필자가 빨갱이 의혹을 제기하면 필자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한동안 친했던 사람도 아니다 싶으면 곧바로 떠난다. 국가가 먼저인 것이다.

새겨야 할 교훈과 각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 한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라는 사실

2) 빨갱이는 유전된다는 사실

요사이 뜨는 정치인들, 사회운동으로 뜨는 사람들, 뜨는 언론인들, 거의가 다 "한번 빨갱이"들이다. 이들은 지금 우익의 무늬와 우익을 표방하면서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중이다.

김대중도 찍고나서야 좌익이라는 걸 알았고, 노무현도 찍고 나서야 좌파라는 것을 알았다.

내년의 대선, 후년초의 총선, 여기에서 속지 않을 자신 있다 할 사람 없을 것이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한번 빨갱이"는 무조건 배척하는 길이다. 우리는 이를 위한 적극적인 캠페인에 나서야 할 것이다. 내년에도 속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호언 2006-06-27 12:28:23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빨갱들아 한 번 말해봐라 요기도 있는데 빨갱이.

절대믿음 2006-06-27 13:45:31
아하 그렇군요!

시스템클럽 2006-06-27 17:51:49
빨갱이들 천국

한나라당 안에서 드러난 사람들은 박근혜 말고는 빨갱이었거나 빨갱이 성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당 안에서는 원희룡과 같은 소위 소장파라는 사람들이 그들을 옹호하고 있고, 당 밖에서는 노무현 정권에서 소화하지 못한 제2진의 주사파들이 뉴라이트라는 우산 아래 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제1차로는 한나라당 주자를 대통령으로 세우고, 제2차로는 2008년 4월 총선에서 그들 스스로가 대거 입성하려고 조선-동아 일보의 세까지 규합하고, 기존 우익들까지 흡수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세몰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스템2 2006-06-27 17:53:20
변하지 않는 빨갱이들

빨갱이를 경험한 모든 국민과 수사관들은 한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느 선까지는 노무현 정부나 김정일 정권, 한총련, 전교조 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지만 주사파, 김정일, 노무현 등 중요한 대목에 대해서는 함구합니다. 그리고 은근히 빨갱이 정신을 주입합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념논쟁을 하느냐,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왜 과거의 잣대로만 보려 하느냐", "이념논쟁하면 좌익에 진다, 정책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6.15는 평화정신, 6.25는 자유정신, 두 개 다 중요하다.” “노무현의 개혁 중에도 잘 하는 게 많이 있어서 노무현에 반대는 하지 않는다”, “김구의 애국정신과 장준하의 민족주의 정신을 받들어 나가자” . .

노걸레 2006-06-27 21:17:09
이놈은 양쪽다 빨아도 걸레 아니여?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