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35) 산업혁명(産業革命, Industrial Revolution)(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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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35) 산업혁명(産業革命, Industrial Revolution)(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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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철공업과 기계공업의 발전

면공업의 급속한 발전은 관련된 모든 산업의 발전을 촉진시켰으며 특히 생산재부문에서는 철공업, 석탄업과 기계공업이 현저하게 발전하여 석탄과 철의 생산이 급속하게 증대되었다. 제철업자인 윌킨슨(J. Wilkinson)은 1775년경 실린더천공기를 발명함으로서 와트의 증기기관이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또 양질의 선철(銑鐵)을 대규모로 생산할 때에는 숯(목탄/木炭, charcoal) 대신 석탄으로 만든 코크스(cokes)를 사용하는 로(爐)가 더 우수함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그는 1777년에 영국에서는 최초로 철로만 된 교량(철교/鐵橋, all-iron bridge)을 슈롭셔(Shropshire) 콜브룩데일(Coalbrookdale) 근처의 세번(Severn)강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1779년에 이를 완공하였다. 이 교량은 본래 건축기사인 프리트차드(F. Pritchard)가 설계에 착수했던 것이나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그 지역 제철업자인 다비(A. Darby) 3세가 설계를 완성하여 윌킨슨과 공동으로 부재(部材, member)를 주조(鑄造, cast)하고 교량을 건설하게 된 것이다. 윌킨슨은 또 세번강에서 그의 철제품을 수송하기 위하여 최초의 철제 바지(barge)선을 건조하기도 하였다.

▲ 윌킨슨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실린더천공기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세번강을 가로 지르는 세계 최초의 철교

산업혁명을 무엇보다 더욱 가속시킨 것은 바로 기계를 만들기 위한 공작기계(工作機械, machine tool)분야의 발전이었다. 17세기 후반부터 시계공업이나 과학기구제조업에서는 나무가 아니라 강철을 가공할 수 있는 선반(旋盤, lathe)을 필요로 하기 시작하였다.

기계공업의 아버지라고 하는 모즐리(H. Maudslay)는 1,800년에 매우 정밀도(精密度, accuracy)가 높은 자동선반을 제작하였으며 그의 제자들은 평삭기(平削機, planing machine), 톱니바퀴절삭기(切削機, gear cutting machine), 천공기(穿孔機, punching machine), 플레이즈반(milling machine), 형삭반(形削盤, shaper) 등 여러 가지 공작기계들을 개발하였다. 1830년 이후에는 기계에 의한 기계의 대량생산체제가 확립되었으며 기계는 자본재생산을 지탱하는 자립적인 체계를 갖추기에 이르렀다.

▲ 모즐리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자동선반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휘트워즈의 평삭기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톱니바퀴절삭기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천공기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플레이즈반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형삭반 ⓒ뉴스타운

증기기관차(蒸氣機關車, steam locomotive)와 증기선(蒸氣船, Steamboat)의 등장

1800년에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의 특허기간이 만료되자 몇몇 사람이 이에 눈독을 들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트레비딕(R. Trevithick)이었다.

콘월(Cornwall: 영국의 남서부에 있는 주 이름임)의 광산에서 증기기관을 경험한 그는 1801년에 원통형 보일러와 고압증기기관을 설치한 차량을 몇 대 만들어 도로상을 주행시켰으며 뒤이어 증기기관차를 만들어 광산에서 석탄과 광석을 운반하는데 사용하였다. 영국에는 2세기 전부터 광산에서 가장 가까운 수로까지 석탄을 실은 마차가 다니던 목제 궤도가 있었는데 철이 개량되자 목제궤도는 철로로 대체되었다.

막상 증기기관을 발명한 와트와 같은 사람들은 증기기관으로 차량을 달리게 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였지만 트레비딕이나 스티븐슨(G. Stephenson)과 같은 사람들이 증기기관차를 만들어냄으로서 불가능해보이던 일을 성취시켰다. 스티븐슨이 발명한 증기기관차로 달리는 최초의 공공철도가 1825년에 스톡턴(Stockton)과 달링턴(Darlington) 사이에 개통되었고 1830년에는 맨체스터-리버풀(Liverpool) 철도가 개통되어 상업적인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성공에 자극되어 철도망은 급격하게 영국 전토로 확대되면서 산업혁명을 더욱 가속화하였는데 18세기 중엽에는 국민소득의 불과 5%가 생산적 투자에 충당되었으나 철도 붐이 일어난 1840년대에는 10%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농업인구의 비율은 18세기 중엽의 약 70%에서 급격하게 감소하여 1850년에는 22%로 줄어들었다. 영국의 증기기관차는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나라로 수출되어 수송혁명을 선도하였다.

▲ 트레비딕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세계 최초인 트레비딕의 도로차량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트레비딕의 기관차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트레비딕의 기관차가 달리는 모습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스티븐슨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스티븐슨의 기관차 로켓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최초의 공공철도 개통식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자동차나 기차뿐만 아니고 배도 증기기관으로 움직여보려는 시도도 여러 번 이루어졌는데 최초의 실용적인 증기선은 1801년에 시밍턴(W. Symington)이 스코틀랜드에서 건조한 것이었다. 그 후 1807년에는 미국인 풀턴(R. Fulton)이 와트의 엔진을 장착한 ‘클레몬트(Clermont)'호를 건조하여 허드슨(Hudson)강에서 유료승객을 수송함으로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로부터 10년도 지나기 전에 증기선이 대서양을 횡단하면서 국가 간의 교역을 훨씬 더 원활하게 만들었다.

▲ 풀턴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 최초의 증기선 클레몬트호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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