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33) 산업혁명(産業革命, Industrial Revolutio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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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33) 산업혁명(産業革命, Industrial Revolutio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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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산업혁명의 태동

4대문명 이후에도 지구상에는 그리스문명, 로마문명, 티베트(Tibet)문명, 잉카(Inca)문명, 마야(Maya)문명 등 여러 문명이 있었고 또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어왔으나 이 모든 것들은 다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었으며 도구(道具, tool)나 간단한 원리의 기구(器具, apparatus)들만 있었을 뿐 기계(機械, machine)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18세기까지도 유럽의 경제는 농업경제(農業經濟, agricultural economy)로서 토지는 거의 모두를 돈 많고 대부분은 귀족(貴族, aristocrat)인 지주(地主, landowner)들이 소유하고 있었으며 소작인(小作人, tenant)들은 땅을 빌려 농사를 지은 후 작물이나 다른 생산품으로 소작료를 냈다. 수레바퀴와 같은 비(非)농산물 제품들은 일단의 전문화된 기술을 가진 개인가정에서 생산되었다. 그런데 농업혁명이 일어난 지 약 1만년이 지난 17세기 중엽에 영국에서는 또 하나의 거대한 혁명인 산업혁명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중세(中世, medieval times)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중앙집권적인 절대주의(絶對主義, absolutism) 왕권이 확립되어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양모(羊毛, wool)가격이 등귀하여 양을 대규모로 사육하기 위한 인클로저(enclosure: 미개간지, 공유지(公有地, public land) 등 공동이용이 가능한 토지에 담이나 울타리 등의 경계선을 쳐서 남의 이용을 막고 사유지(私有地, private land)로 만드는 일임)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는데 이로 인하여 농민의 실업과 이농(離農, rural exodus)현상 그리고 빈곤이 증대하여 수차례 금지령을 내렸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1558년에 즉위한 엘리자베스(Elizabeth) 1세는 인클로저 등으로 발생한 빈민들을 구원하기 위한 구빈법(救貧法, Poor Law)과 도제조례(徒弟條例, Statute of Apprentices: 1563년 제정한 영국의 산업규제법으로서 당시 크게 변모하고 있던 농촌에서 노동력을 확보하고 도시의 공업 노동력을 재편성하기 위하여 고용에 관한 각종 조건들을 규정한 것임)를 제정하는 등 국내정치에 힘쓰는 한편 식민지(植民地, colony)를 개척하고 러시아회사, 레반트(Levant)회사(1581년에 설립되어 19세기 초까지 영국의 지중해무역을 독점한 무역 상인조합임),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 East India Company: 17세기 초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동양에 대한 독점무역권을 부여받아 동인도에 설립한 여러 회사임)의 독점권을 설정하는 등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ism)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에스파냐(Espana) 함대를 격파함으로서 영국의 절대왕정을 정점에 올려놓았다.

▲ 엘리자베스 1세 ⓒ뉴스타운
▲ 런던의 동인도회사 본사 건물 ⓒ뉴스타운
▲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 ⓒPhilip James de Loutherbourg(1796) ⓒ뉴스타운

그러나 여왕의 사후 절대왕권은 쇠퇴하기 시작하여 의회(議會, Parliament)와 팽팽히 맞서게 되었으며 여기에 시민들까지 가세하여 1648년과 1688년의 두 차례에 걸친 시민혁명(市民革命 또는 부르주아혁명, bourgeois revolution)을 겪게 되었고 결국1689년에 권리장전(權利章典, Bill of Right)이 의회를 통과함으로서 영국 민주주의(民主主義, democracy)의 초석이 마련되었다. 한편 농촌에서는 제2차 인클로저운동이 일어나 농장이 대단위화 되면서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농업생산이 가능하게 되어 또다시 많은 인력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거나 모직물공업(毛織物工業, wool textile industry) 등에 종사하게 됨으로서 초기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적 생산관계가 다른 유럽 여러 나라보다 먼저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 자본은 대부분 생산 활동보다는 상업 활동에 몰렸지만 상업 활동이 왕성해짐에 따라 제조업도 성장하였으며 이렇게 하여 상인과 자본가계급(資本家階級, capitalist class)이 형성되고 산업자본(産業資本, industrial capital)이 축적되었다.

영국의회는 상인 및 자본가계급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앞장섰으며 따라서 귀족계급이 쇠퇴한 후에는 사회의 가치 중심이 중산층(中産層, (petite) bourgeoisie/ middle class)이자 시민계급(市民階級, bourgeoisie)인 이들에게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여전히 귀족중심의 사회였으며 건전한 시민계급이 형성되지 못하여 귀족계급과 타협하거나 귀족이 오히려 그들을 후원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먼저 일어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 영국의 권리장전(1689) ⓒ뉴스타운

산업혁명이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진행된 것은 인구증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인구증가로 인하여 산업혁명이 촉발되었는지 또는 산업혁명 때문에 인구가 증가하였는지는 역사적으로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노동을 위해 더 많은 인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가족경제(家族經濟, family economy)와 가족생산은 그 목표가 가족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반으로 한 국가경제는 다소간에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생계(生計, subsistence)형 경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에 공업경제(工業經濟, manufacturing economy)는 잉여(剩餘, surplus)경제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생산노동력은 그가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생산하게 됨으로서 이 잉여생산이 제조업체소유자의 이윤(利潤, profit)이 되는 한편 인구성장을 촉진해 줌과 동시에 또 그것을 필요로 하게도 해 준다.

한편 영국은 16세기 중엽 이후 목재자원의 고갈로 연료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석탄(石炭, coal)을 체계적으로 이용하게 됨으로서 석탄 산업을 중심으로 한 여러 관련 산업의 발전이 촉진되어 산업혁명에 못지않을 정도의 생산 확대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이것을 초기산업혁명(初期産業革命, early industrial revolution)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석탄에 대한 수요와 생산이 증대함에 따라 수갱(竪坑, mine shaft: 지각의 내부에 수직으로 들어가는 갱도를 말함)의 배수(排水, drainage)문제, 석탄의 수송문제, 철광석 용해에 있어서의 기술개발 등이 당면과제로 제기되었으며 이러한 과제들이 사회적, 기술적으로 해결되어 가는 가운데 산업혁명의 조건도 정비되어 갔다.

탄갱의 배수처리를 위해서 세이버리(T. Savery)는 증기펌프(蒸氣-, steam pump)를 개발하였고 그의 동업자인 뉴커먼(T. Newcomen)은 대기압기관(大氣壓機關, atmospheric engine)을 발명하여 1712년에 처음으로 물이 차는 수갱에 설치하였는데 이들은 느리고 비효율적이었으나 당시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 세이버리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뉴스타운
▲ 세이버리의 증기펌프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뉴스타운
▲ 초기의 뉴커먼엔진 ⓒScience Museum,Science & Society Picture Library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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