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기습 제3의 암살기도 철저대비 해야
스크롤 이동 상태바
제2의 기습 제3의 암살기도 철저대비 해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15 복원 실패, 북한인권사무소 개소 반발 극단적 도발 우려

▲ ⓒ뉴스타운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피비린내 나는 남북대결 보다는 잘 살기 경쟁을 제안하는 8.15 선언을 발표 하고, 1972년 10월 17일 유신(維新)을 선포한 후 해방 이래 30여 년 간을 북한에 뒤쳐져 있던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 단숨에 국력을 추월해 버렸다.

해방 직후 지하자원과 광공업 및 동력원 편중이라는 이점을 안고 경제적 우위를 즐기던 남침전범집단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민주화'라는 짝퉁 인민해방 놀음이 아니라 해방 이후 1975년 까지 김일성이 만든 사회주의공화국 이라는 30년 공든 탑을 단 한방에 무너트린 유신이었다.

박정희 특유의 리더십과 유신의 효율성이 "근면 자조 자립"이라는 새마을운동 정신과 결합되면서 폭발적인 국민에너지 결집효과로 군사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국민 정신과 정통성 측면에서도 우위를 확보함으로서 국력(國力)의 전 분야에 걸친 체제경쟁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이에 대하여 남침전범집단 수괴 김일성은 소위 '대남적화혁명3대역량강화'라는 노선을 채택(1964.2.25~27) 끊임없는 도발과 위협으로 일관하는 어리석음과 1.21 사태(1968.1.21)와 6.25 전쟁 20주년 기념행사 3일 전인 1970년 6월 22일 새벽에 발생한 현충문폭파사건을 비롯하여 陸 여사 저격사건(1974.8.15)에 이르기 까지 "유신의 심장부"를 직접노린 폭력 도발을 일삼는 것 외엔 뾰족한 수단이 없었다.

뜻밖에 발생한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1979.10.26)으로 남한 내부가 극도의 혼란에 달하자 김일성은 태백에서 발생한 사북사태(1980.4.21~24)와 호남에서 일어 난 광주사태(1980.5.18~27)에 기대를 걸었다가 두 개 사태가 전두환 군부에 의해 수습이 되고 질서를 회복하자, 이번에는 전두환정권의 수뇌부 17명을 몰살시킨 아웅산묘소폭파(1983.10.9)사건을 일으키는 등 잔혹한 국제테러로 일관해 왔다.

박정희가 날린 유신의 강펀치를 맞고 크로키가 된 김일성이 판세 만회에 끝내 실패하고 죽자 후계자가 된 김정일이 남북 아태(아태재단/아태위원회)를 이용, 6.15 공동선언(2000.6.15)을 통한 '평화적 이행(移行)'전략이 점차 결실을 맺어 가던 차에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가 '4대악법저지투쟁'으로 이를 가로막고 나서자 '유신부활반대 박근혜 제거'로 대남투쟁방향을 전환하였다.

실제로 김정일은 2006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서 "겨레의 지향과 민족의 운명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당파적리익추구에 만 미쳐 날뛰는 반역의 무리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남조선에서 유신독재시기와 같은 중세기적인 암흑시대가 재현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조국통일운동의 전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김정일은 2007년 대선의 전초전인 2006년 지방선거를 의식하여 "유신의 독초(毒草)는 제때에 뿌리 뽑아 제거해 버려야 한다. 남조선의 각계 각층 인민들은 신보수의 결탁과 도전을 진보의 대연합으로 짓 부셔 버리고 매국반역집단에 종국적 파멸을 안겨야 한다."고 박근혜 타도 및 암살 지령을 하달하면서 "제 아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고 노골적인 살해 위협을 가하였다.

그 후 박근혜(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우연찮게 2006년 5월 20일 오후 7시 30분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한나라당 서울시장후보 오세훈 지원연설차 연단에 오르는 순간, 술 한 방울 안 먹고 정신이 멀쩡한 암살범 지충호로부터 카터칼로 피습을 당하여 60여 바늘이나 꿰매는 대 수술 끝에 겨우 살아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2007년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패한 후 평의원으로 물러났던 박근혜가 2012년 대선에서 강력한 여당후보로 재등장하게 되자 이에 겁을 먹은 김정은이 2012년 1월 1일에 2007년 1월 1일 김정일의 신년사와 동일한 내용을 담은 '대남명령 1호'를 하달하여 박근혜의 당선을 저지하려 했으나 위기를 느낀 우익애국세력의 총 단결로 이 또한 실패 맛 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김정은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극단적인 증오와 적대감으로 전이 되면서 "박근혜와 같은 역적무리들을 단호히 청산해 버려야 한다.(2014.9.27 국방위정책국)", "박근혜는 짧은 혀 때문에 긴 목이 날아난다는 것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2014.10.2, 국방위정책국)"고 노골적인 위협과 적대감을 계속해서 드러냈다.

김정은은 최근에도 "박근혜를 그대로두면 사회가 망한다.(2015.5.12 노동신문)"면서, "최악의 사대매국노를 고발한다.(2015,6.4 노동신문)", "인권사무소 개소로 가장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2015.6.4 조선중앙통신)"라고 하는 등 대화를 전면포기하고 박근혜 대통령 위해 및 도발을 획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북괴 선전선동공작에 의해 남북한과 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反박근혜 정치선전공세의 일환으로 동어반복(同語反覆)과 증삼살인(曾參殺人)효과를 빌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 실추와 호감도 저하를 노리고 악의적 유언비어 유포와 함께 수만 장에서 수십만 장에 이르는 불온 삐라 대량살포가 자행되고 있다.

한편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도륙(2013.12.12) 한데 이어 군부원로격인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을 처형(2015.5.8)함으로 인한 내부적 충격과 반발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 대남도발 필요성이 대두 된 데에다가 6.15 복원 실패, 북한인권사무소 개설 등 견딜 수없는 상황이 전개 되면서 강력한 돌파구 마련이 절실 해 진 것이다.

이런 저런 징후와 단서를 종합해 볼 때, 대남공작실패 책임을 뒤집어쓰고 숙청 위기에 내 몰린 대남담당비서 김양건과 정찰총국 김영철이 실점(失點)을 만회하고 숙청을 모면키 위해 극단적인 모험을 감행할 여지 또한 매우 크다고 볼 때, 군사적 도발뿐만 아니라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암살미수사건 교훈이 말 해 주듯이, 대통령 및 요인에 대한 물샐틈 없는 경호경비강화로 김정은의 흉포한 암살기도를 사전에 차단 봉쇄하는 데 철저를 기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